그들의 표현에 의하면 나는 고지식한 혹은 요령 없는 사람 같다. 저녁 회식에서 콜키지 와인 요금을 덜 내기위해 빈 병을 몰래 숨기고, 새 병을 꺼내는걸 보면서 마음이 계속 편치 않았다. 거짓말을 아예 안 하는건 아니지만, 그래도 가능한한 정당한 돈은 지불하고 싶은건데. 고지식하고 요령 없는 사람은 오늘도 한숨 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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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더 속물이 되어도 괜찮아
도덕적 무결성을 추구하던 노력과 얼마간은 이별을 고하려한다. 행여나 구멍으로 셀까봐 새어나갈까 촘촘한 그물을 쳐놓고 가둬놓는걸 점점 피하려한다. 깊은 곳에서 꿈틀꿈틀 움찔움찔거리는 욕망의 불씨와 더 자주 마주하려한다.
마음을 달리 결심한다고 곧바로 바뀌지는 않을거다. 하지만 지난 며칠간, 특히 어제 오늘 들여다본 내 속마음은 겹겹히 쌓여진 장막 속에 갖혀있었다.
좀 더 솔직해지고, 좀 더 스스로를 챙기자.
다 너를 위해서 그러는 거야
자기 잇속 챙기려는 거 뻔히 보이는데, 나를 위하는 거라 그러는 사람도 싫지만
그러는 척이 아닌, 정말로 나를 위해서 그러는 거라 생각하며 자기 잇속도 챙기는 사람은 피하고 싶다
붙들어 매기
6시에 맞춰놓은 알람이 울리기 무섭게 침대에서 나온다. 항상 준비되어있는 아침 식사를 먹고, 간단하게 씻은 후 집을 나선다. 걸어서 2분 거리 정류장에 가면 이미 몇 명이 줄을 만들었다. 멀찍이서 다가오는 버스에 몸을 싣는다. 6시 35분. 그리고 회사에 도착하는 7시 15분부터 지하 피트니스 클럽에서 운동을 시작한다. 운동을 마치고 사무실에 올라가면 9시.
당연히 최근의 모습은 아니다. 2년 반 전까지 평일을 이렇게 시작됐다. 항상 규칙적인 시간에 일어나 운동을 한 덕분일까 몸이 참 개운했던 걸로 기억한다. (정확하지 않다. 그때는 하루하루 늙어가는 게 힘들다고 징징되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요즘은 운동은커녕 8시 전에 일어나는 것조차 힘들어한다. 알람이 울리고도 일어나지 않을 때마다 1만 원씩 부모님께 드리기로 한 약속도 5만 원 정도를 드린 후에야 없던 걸로 했다. 지출이 커질까 두려웠기 때문이다.
요즘 정신이 나간 것 같다는 느낌이 종종 든다. 사람 눈을 보면 총기나 생기가 느껴진다고 하는데, 요즘 내 눈에는 그런 걸 찾아보기 쉽지 않다. 뜻한 대로 흘러가지 않고, 할 일은 많아지고, 마음은 다급해져서 그런 거라고 변명거리를 찾지만 마음이 개운한 건 아니다.
그러다 어제 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만약 지금 바람대로 이뤄지더라도, 비슷한 고민과 상황에 처할 수 있는 가능성은 아주 크다는 거. 그러니까 마음을 편하게 먹어야겠다는 생각이 머리를 때렸다. 그리고는 거짓말처럼 마음이 가벼워졌다.
붙들어 매자. 파도가 심하더라도, 안개가 자욱하더라도 일단 정신만큼은 붙들어 매자. 그리고 주위를 찬찬히 둘러보자. 마음이 흔들리면 세상이 탁하게 보이기 때문에 빛을 볼 수 없다. 어렴풋한 빛줄기를 찾아보고, 그쪽으로 한 발씩 내딛자.
그래 마음을 붙들어 매야겠다. 그리고 붙들어 주소서.
어디론가 들어가고 싶은 때
과거 어느 순간으로 돌아간다는 상상이 무의미하다는 건 익히 알고 있지만, 돌아갈 수 있다면 그 ‘짓’만은 하지 말아야지 후회되는 순간들이 있다. 주로 연애 혹은 그와 비슷한 범주의 것들이다.
스스로가 한심했거나, 다른 사람 귀에 절대 들어가지 않고 그 사람의 의아함과 어이없음으로 제한되었으면 하는 순간들. 가끔씩 불쑥불쑥 떠오른다.
오늘 밤 나는 홀로 침천한다.
마음만
잘 해야겠다는
잘 하고싶다는
도돌이표처럼 삼키지만
마음처럼 잘 안된다
가족 여행이 남긴 것
10박 11일간 가족 여행에서 어제 돌아왔다. 라스베가스, 그랜드캐년 그리고 샌프란시스코에 머물던 시간은 평생 간직하고 싶다. 이번 여행을 간단히 정리해본다.
- 서로가 다름을 인정한 시간
- 한 가족이라는 것, 그리고 서로 닮았다는 것만 제외하면 모든 면에서 다르다는걸 눈으로 확인했다. 먹고 싶은 음식부터 흥미로워하는 경험까지 모두 달랐다.
- 갈등을 줄이는 방법
- 여행을 준비하면서, 그리고 끌고 다니면서 상상하고 기대했던 반응이 있었다. 그러나 예상과는 다른 반응이 많아 짜증과 서운함이 툭툭 생겨났다. 특히 힘들게 예매한 공연을 보고 나서 이게 도대체 뭐냐는 반응이 돌아왔을 때, 고생한걸 몰라준다는 생각에 서운함이 커졌다. 그때 우리는 가족이지만 서로 다른 사람이라는걸 다시 한번 곱씹었다. 그래서일까 큰 갈등 없이 여행을 마무리할 수 있었다.
- 응답하라 1985
- 가난한 유학생이던 20 여년 전 (아무 기억 없는) 나를 데리고 라스베가스와 그랜드캐년을 다녀오신 부모님은 기억을 계속 곱씹으셨다. 고생고생해서 번 700달러를 아끼고 써도 늘 80달러 정도가 적자였다며 쓴웃음을 지으며 이야기하는 부모님에게 왜 자꾸 숙연하게 만드냐며 타박했지만, 마음 속에서는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 살고 싶은 도시 샌프란시스코
- 최첨단과 옛모습이 절묘하게 공존하는 도시의 느낌이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언젠가 한번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떠나질 않는다. 물론 비싼 집값을 감당하기 어려우니, 샌프란시스코 권역으로 확장해야겠지만 말이다.
가까움의 모순
통틀어서 함께 보낸 시간도, 이야기를 깊게 나눠본 적도 거의 없는 사람에게 살갑게 대하고, 한번 만나자는 이야기에 달력을 확인한다.
거의 매일 얼굴을 보며, 수십수백 마디 말을 교환하는 사람에게는 시큰둥하며, 굳이 뭘이라며 따로 시간을 정하지 않는다.
왜일까.
No Problem
아무 문제없다고 말하면서, 속 안에 가득 찬 문제를 황급히 감추고 있는듯한 노래. 눈발 휘날리는 겨울에 가장 잘 어울리는 노래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매서운 눈보라가 내려앉은 4년 전 하코다테 전망대. 옥상에 올라가자 기다렸다는 듯이 흘러나온 이 노래. 심장이 멎는듯한 느낌이 생생하다. 내 옆에는 사진에 미친 동갑내기 남자애가 있었다는 게 함정.
더는 라이타가 무섭지 않다
불을 붙여야 하는 상황이 오면 늘 두려웠다. 불이 무섭다기보다는 라이터나 성냥을 사용하는 게 싫었다. 특히 라이터로 불을 붙일 때면 엄지 손가락이 늘 뜨거웠다. 하루에도 수차례 라이터를 사용하면서도 “앗 뜨거워”를 내지르는 법이 없는 흡연자들을 보면 신기할 따름이었다.
이번 설날에 향을 피우기 위해 라이터를 사용해야만 했다. 엄지손가락 끝 느껴지는 뜨거운 기운을 참아내며 향에 불을 붙이고 투덜댔다. 매번 불길이 손에 닿는다고. 듣고 있던 사촌동생이 말했다. 라이터 위아래를 반대로 잡으라고.
그랬다. 나는 불길이 솟구치는 방향에 엄지손가락이 위치한 채 라이터를 써왔던 것이다. 그러면서도 반대로 잡아야겠다는 생각이나,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잡는지를 관찰할 생각은 하지 않았다. 습관처럼 잘못된 방식을 썼던 것이다.
방금 전 향초를 피우기 위해 라이터를 찾았다. 이번에는 라이터의 위아래를 반대로 잡았다. 성공. 그동안 주인을 잘 못 만난 엄지손가락이 이번엔 무사했다. 32년 만에 라이터를 제대로 사용하는 법을 알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