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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사 1주년 기념사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1년 전인 2015년 1월 15일. 딱 5년 12일간 몸 담았던 첫 직장과 작별을 고했다. 몇 달 후 같은 회사를 퇴사한 사람은 그 경험에 대한 블로깅하고 책도 내고 그러던데, 그만큼의 필력과 기억은 없더라도 오늘을 그냥 보내기는 아쉬웠다. 그래서 나름대로 퇴사 1주년을 기념해보려고 한다.

포스팅에 사용할 이미지를 찾으려 “quit job”이라 구글링 해보니 환희에 가득 차 있거나 당당한 태도로 “i quit”를 외치는 이미지가 대부분이다. 퇴사 당시 내 기분은 조금 더 복합적이었다. 사랑하지만 평생 함께 할 수 없는 연인에게 헤어짐을 고하는 심정이었다는 감성적인 표현으로 그 기분을 표현했었다.

그래서일까. 전 여자친구의 집 근처를 지나가는 느낌이라고 이야기하고 다녔다. 퇴사하고 한동안은 이전 회사 사무실 근처에 가지 않으려 노력했다. 행여나 근처를 꼭 지나가야 할 일이 생기면 일부러 바닥을 쳐다보며 걸었다. 하지만 그 우뚝 솟은 높은 빌딩은 야속하게도 시야에 잘 들어왔다.

퇴사하고 피부로 느낀 변화가 몇 가지 있다.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 자기소개를 할 때, 하는 일에 대해 굉장히 소상하게 설명해줘야 했다. 안타까운 건 긴 시간 설명에도 불구하고 상대방을 충분히 이해시키는 경우는 드물었다. 이 변화에 대해 미국인 친구에게 이야기했더니, 한국 사람들은 그런 걸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같다며 대수롭지 않게 대꾸해서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었다.

사파리에 있다가 초원에 나온 기분이라고 이야기해줬다. 이전 회사는 딱딱 나눠진 구역에 어느 정도 훈련된 동물들이 있는 사파리였다. 하지만 그 바깥은 온갖 동물들이 특별한 규칙과 훈련 없이 뒤엉켜 지내는 그런 초원 같다. 1년간 생활하면서 초원에도 나름의 질서와 체계가 존재한다는 걸 알게 되었지만 말이다.

1년간 마주했던 삶은 그동안 마주했던 것과 아주 달랐다. 이전 회사가 정말로 대단한 곳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비슷한 환경에 계속 머물러있으면 성장하기 힘들다는 게 내 지론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전 회사에서도 주기적으로 환경을 바꾸려 노력했고, 운이 좋게도 그럴 수 있었다. 지난 1년간 나는 분명 성장했지만, 환경에 적응하면서 성장 속도는 조금씩 느려지고 있었다.

얼마 전 친구가 카톡으로 물어왔다. “제대로” 살고 있느냐고. 평소에도 인상적인 표현을 즐겨 쓰는 아이였지만, 더 인상적으로 느껴졌다. “제대로”라는 말이. 몇 달 전이었다면 자신 있었겠지만, 최근이라면 그렇게 답할 자신이 없었다. 망설이다 겨우 답을 적었다. 제대로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대로” 살고 있다고.

다시 제대로 살 때다. 퇴사 2주년까지 다시 한번 제대로 살아보자.

여행은 귀족처럼

예전만큼 해외여행을 좋아하지 않는 것 같다는 판단이 정말일 가능성이 높아졌다. 큰 이모와 통화하면서 좀 더 확신에 가까워졌다. 다음 주에 출발하는 미국 서부 가족 여행을 어떻게 준비했는지를 이모에게 설명드리던 중, 4년 전 이모의 도움으로 다녀온 포르투갈 여행이 떠올랐다.
출발 전까지 이런저런 사전 정보를 모으고, 어떻게 시간을 보낼까 고민이 많았던 4년 전과는 다르게, 다음 주 여행은 큰 계획만 정해놓고 별다른 준비를 안 하고 있다. 정확하게는 준비 의욕이 안 생긴다일지도.
귀족들은 해외여행을 꺼려하고 귀찮아한다는 글을 본 적이 있다. 그리 길지도 않은 시간을 보내기 위해 짐을 챙기고 비행기를 타며 시차에 시달리는걸 고역이라고 여긴다고 한다. 그래서 그들은 짧은 여행이 아니라 일정 기간 그곳에서 사는 걸 선호한다고 한다. 여기가 아닌 다른 곳에서 꽤 긴 시간 동안 살아보고 싶다. 비록 귀족은 아닐지언정 말이다.

유부남 심리학

더이상 할 수 없는 것에 대한 아쉬움은 크다.

가끔은 편안한 익숙함보다 신선한 새로움이 끌린다.

내가 안 된다면 다른 사람이라도 잘 되면 좋겠다.

정말 그런가보다. 덤덤하게 소개팅한다 이야기하는 나보다 훨씬 더 많이 즐거워하는 유부남들을 보니 말이다.

스무 살은 몰랐다

내 출근길 동행자는 팟캐스트다. 여러 가지 팟캐스트 중 하나는 인터뷰 대상자에게 고정 질문을 던지며 코너를 마무리한다. 바로 스무 살로 돌아가면 스무 살의 자신에게 어떤 이야기를 해주고 싶냐는 질문이다.
스무 살의 나와 대화할 수 있다면 조금 더 유연하게 생각하고 생활하라는 말을 건네고 싶다. 그 시절의 나는 참 엄격한 녀석이었다. 생활 패턴이나 계획을 마음대로 짜놓고, 그걸 지키려고 안간힘을 썼었다. 술 마시고 흐트러지는 게 싫어서 술자리를 멀리했고, 새로움보다는 익숙함을 추구했었다.
빡빡한 일정의 여행이 아닌 즉흥적인 결정이 더 즐거운 여행을 만들어준다는 것을, 가볍게 기울이는 술잔이 맞은편 사람과 더 가까워질 수 있데 해준다는 것을, 익숙함을 떨치고 새로움과 마주칠 때 삶이 더 풍요로워진다는 걸 스무 살의 나는 몰랐다.스무 살의 내가 지금 서른두 살이 되어버린 나에게 어떤 이야기를 해줄까 궁금해졌다. 더 나은 사람이 되었다며 한잔 술을 건네줄까, 아니면 별 수 없는 꼰대가 되어간다며 호통칠까. 쌉싸름한 기운이 입안 가득 퍼진다.

코실리닷컴 오픈

어젯밤 korshlee.com이라는 도메인을 구입하기로 결정하고, 방금 전 드디어 세팅을 마쳤다. 블로그 글이 자동으로 페이스북에 공유될 때, 줄바꿈이 안되어 표시되는 문제점을 해결하려고 시작한 작업이 이런 결과로 이어졌다. 그동안 들어만 왔던 도메인, 호스팅이라는 걸 사용해보기도 하고, 모르는 것도 많았지만 어렵지는 않은 작업. 이제 남은 건 열심히 블로깅하는 일뿐이다.

런던 택시 기사의 해마는 지금도 클까

택시에 오르자마자 기사님이 물어보신다. “카카오 택시 부르신 거죠? 어떤 길로 갈까요?” 편하신 길로 가달라고 말씀드리면 이렇게 답하신다. “그러면내비게이션에서 안내하는 대로 갈게요”

집으로 향하는 택시 안에서 생각해보았다. 불과 몇 년 전 기억을 더듬어보면 택시 기사들은 내비게이션을 쳐다보지 않았다. 시내 구석구석을 운전하면서 머릿속에 그려진 지도를 더 신뢰했다. 혹은 어떤 기사는 내비게이션을사용하는 건 택시 기사의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는다고도 했던 것 같다.

몇 년 전으로 돌아가 보면, 길을 알고 있는 건 상당한 지식이었다. 종이 지도를 펼쳐놓고 새로운 길을 연구하시고, 택시를 타면서 알게 된 길을 서로에게 알려주시던 부모님의 모습이 떠오른다. 가본 적 없는 곳으로 차를 타고 가야 할 때는, 미리 지도를 보면서 어떻게 가야 할지 고민해야 했다.

언제부터 길을 알고 있을 필요성이 많이 줄어들었다. 내 경우를 살펴보면, 항상 내비게이션을 보며 운전하기 때문에 외우고 있는 길이 거의 없다. 하지만 운전을 하는데 아무런 불편함을 느끼지 못한다. 내비게이션이 시키는 대로 직진, 좌회전하다 보면 어느새 목적지이다.

택시가 언제 잡힐지 몰라서 발을 동동 구르고, 칼바람이 부는 길거리에서 지나가는 택시를 놓칠세라 목을 길게 빼는 일도 사라졌다. 야근을 마치고 카카오 택시 앱으로 택시를 부르고, 짐을 정리하고 나가 건물 앞에서 기다리던 택시에 올라타면 된다. 그리고 택시는내비게이션이 알려주는 가장 빠른 길로 집까지 데려다준다.

뇌 과학 분야의 유명한 연구 중 런던 택시 기사의 해마(hippocampus) 연구가 있다. 런던 시내 도로와 광장 등을 학습하는 동안 이들의 해마는 커진 반면, 정해진 노선만 다니는 버스기사들은 해마가 별로 늘어나지 않았다는 것. 뇌도 근육과 같다. 계속 쓰는 부위는 발달하고 안 쓰면 쪼그라든다.

그렇다면 이제 택시 기사가 지닌 가치는 어떤 것일까? 그만이 알고 있던 빠른 길도 이제는 소용없고, . 이전보다 작아졌을 것이 분명한 택시 기사의 해마는 어쩌면 그들의 운명을 대변하는 것일 수도 있다. 그리고 그건 비단 택시 기사에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자동화 무인화의 거센 물결과 마주할 대부분의 운명일 거라는 불길한 예감을 감출 수 없다.

성실한 기억

해가 지나면 지날수록 알고 지내는 사람들의 수가 늘어간다. 그중에 특히 마음이 가는 사람들이 있다. 기억하고 있으리라 생각하지 못 했던 개인적인 특성을 기억하고 말하는 사람들에 한번 더 마음이 간다. 모르긴 몰라도 나에게 좀 더 관심을 쏟는 게 아닌가 생각하게 된다. 내 경우는 띠동갑 동생이 대학교 갈 나이가 아니냐고 물어보는 사람들이 그에 해당한다.
반면 같은 질문을 여러 번 물어보는 사람은 건성으로 듣는 게 아닌가라는 의심이 들기도 한다. 아들딸을 가진 주변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는 시점. 아기 이름이 뭐였는지 여러 번 물어보지 않는 사람이 되어야겠다.

32살을 위한 다짐

새해가 시작되면 저마다 한 해를 어떻게 보내야겠다는 다짐을 한다. 거창하지 않은 굉장히 개인적인 목표를 몇가지 정해봤다.

나를 선명하게 인식하기

함께 살아온지 어느덧 32년째이지만 해가 지나도 나 자신에 대해 아는게 별로 없다는 기분을 떨쳐버릴 수 없다. 이러다가 육신과 영혼이 분리될 때까지 서로를 모르고 헤어질까 봐 두렵다. 답하기가 막막하고 머리가 지끈거리는 질문을 꾸준히 던져보고, 매일매일 일기를 쓰고 명상을 하면서 스스로를 선명하게 인식하고 싶다.

물질보다는 추억과 경험 남기기

최근 몇 달 동안은 이상하리만큼 뭔가를 사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았다. 이 여세를 몰아서 2016년은 물건을 사기보다는 추억과 경험을 얻는데 돈을 투자하려 한다. 매주 일요일은 하루를 일찍 시작할 겸 조조영화를 보고, 책도 꾸준히 읽는 게 목표다. 그리고 좋아하는 사람들과 보내는 시간, 새로운 곳에서 보내는 시간도 작년보다 늘리고 싶다.

팔팔하고 건강한 몸뚱어리로 돌아가기

한해 한해 시간이 지나갈 때마다 몸이예전 같지 않다는 게 느껴진다. 특히나 체중이 줄어들면서 체력도 딸리는 것 같고, 꾸준히 하던 운동도 게을리하게 되었다. 원상복구까지는 아니더라도 체중을 늘리고 체력을 키우는 방향으로 운동을 다시 시작하려 한다.

이미 만난 불안한 새해

나는 사주나 운세에 대해서 비판적 수용이라는 묘한(?) 입장을 취하고 있다. 과학적인 증거가 부족하고, 한자 이름 풀이 등 전 세계 사람에게 적용되기도 어려운 한국적인 내용이라는 게 비판적 입장의 이유이다. 그러다가도 좋은 사주를 타고났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면, 암 그렇고말고 하면서 믿고 싶어진다.

아버지께서 요즘의 답답함을 풀고자 정말 용하다는 분에게 다녀오셨다고 한다. 내년 우리 가족이 어떨지 물어보셨는데, 나는 힘든 한 해를 보내는 걸로 나왔단다.여태껏 좋을 거고, 잘 될 거라는 이야기만 들어왔는데, 힘들 거라는 이야기는 처음이다.

올 한 해도 나름대로는 쉽지 않았다고 자평하는데, 2016년은 힘들 거라고 미리듣고 나니 기분이 묘하다. 비판적 태도를강화해야 하나? 거칠게 괴롭히지는 말아라 2016년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