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 회사에서 맺어준 언어교환 프로그램. 그때 파트너였던 미국인 친구가 한국 사람과 결혼하게되어, 서울에 왔다길래 2년만에 만났다.
어떻게 보면 별거 아닐 수도, 의미 있을 수도 있는 인연. 그 인연을 소중히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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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격 살해 피해자 1호
카톡방에 보이는 소위 “찌라시 “에 대처할 때 나만의 원칙이 있다. 바로 연예인이나 유명인이 아닌 사람들이 거론되는 찌라시는 읽어보지도, 다른 사람에게 이야기하지 않는다는 것. 대단한 도덕 윤리는 아니지만, 크게 2가지 이유가 있다. 하나는 설령 찌라시 속 그들이 거기 적힌 것 같은 행위(혹은 잘못)를 했더라도, 죄를 묻는 사람은 내가 아니라는 것. 나머지 하나는 혹시라도 사실이 아니거나 엉뚱한 사람이 포함된 거라면 그들의 삶에 피해를 주고 싶지 않아서이다.
아주 오랜만에 TED에 들어갔다가 모니카 르윈스키의 이야기를 보았다. 인생에서 두 번 다시 겪고 싶지 않았던 22살 시절에 대한 농담으로 강연은 시작되었다. 그녀가 농담조로 그 사건을 언급할 수 있게 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고통과 번민에 시달렸을까. 어쨌거나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한눈팔 세도 없이 몰입되는 이야기였다. 현장에 있던 대다수 청중들이 기립 손뼉을 치는 걸 보면 가슴으로 이야기를 받아들인 사람은 나뿐만이 아닐 거다.
인터넷 시대에 미디어와 대중이 만들어낸 인격 살해 피해자 1호(patient zero of losing a personal reputation)라고 자기 자신을 지칭하며, 비슷한 피해자들이 더 이상 늘어나지 않도록 용기를 냈다고 한다. 물론 그 사건에 대해서 그녀는 잘한 게 없는 사람이지만, 온갖 추잡스러운 욕설과 신상털기는 인간의 존엄에 대한 폭력적인 처사였다. 자극적인 내용이 점점 더 빨리 공유되는 요즘, 그것으로 돈을 만들어내는 산업, 그리고 별생각 없이 한 개씩 돌을 더하는 우리. 경각심이 필요하다.
이 글의 결론은 그래서.
나쁜 짓 하지 말고 착하게 살아야겠다.
정복과 승리의 논리
중앙선데이에 드 라클로의 ‘위험한 관계’아 프라고나르의 ‘그네’를 연결하는 글이 실렸다.
유명인과의 염문을 자발적으로 소문내기, 데이트 폭력, 헤어진 연인의 동영상 유포 같은 인격살해적 행위들은 우리 시대의 사랑 역시 게임으로 전락학 있음을 말해준다. 어떤 일이든 오직 정복과 승리만이 목표가 될 때, 그 일이 가지는 인간적인 측면은 모두 희생되고 만다. 돈 버는 일이나 정치도 마찬가지다. 정복과 승리 자체가 목표가 되는 게임이 되어버리면 안 된다. 돈을 벌기 위해 돈을 버는 것, 오로지 자신의 권력을 잡기 위해서만 하는 정치, 상대방을 정복하기 위해서 하는 사랑은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을까.
가치를 타락시키는 목표. 그런 목표를 피하는건 쉽지 않은 일이다.
Inner peace
예측이 빗나갔을 때
2년 전 이맘때, 그때 다니고 있던 회사 인트라넷으로 메일이 왔다. 수신인은 5분 후 회의실로 모이라고. 회의실에서 애써 침착한 목소리로 안내된 내용은 여기 모인 사람은 새로운 부서로 발령되었다고, 이제 강남이 아닌 수원에서 근무할 거라는 이야기였다. 침통한 와중에 올 것이 왔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전부터 강남 사무실 사람들이 수원으로 내려갈 거라는 소문은 팽배했다. 내가 시발점이구나. 그렇게 마음을 정리한 채 수 안으려 내려가서는 재빨리 회사 앞 원룸을 전세로 계약했다. 계속 수원에 있겠지 하는 마음에 말이다. 그랬던 수원 생활은 5개월 만에 끝났고, 나는 강남으로 다시 올라왔다. 오늘 오랜만에 만난 옛 동료들은 수원은커녕 런던과 양재 새 사무실로 출근한다. 그리고 수원 원룸은 에어비앤비에서 다른 사람의 보금자리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다, 얼마 전 다른 사람의 전셋집이 되었다.
영어와 트렌드 공부 차원에서 주기적으로 영문 기사를 번역 요약해 게시하고 있다. 평일과 주말 하루씩 할애하는데, 평일은 점심시간 1시간을 쪼개 쓰기에 이미 잘 알고 있고, 번역과 요약이 쉬운 기사를 선택해 작업한다. 오늘 점심도 그런 날이었다. 어떤 기사를 작업할지 빠르게 선택하고, 후다닥 게시했다. 기사 반응을 신경 안 써야지 생각하면서도 궁금하지만, 사실 이번 기사는 기대가 없었다. 그랬던 그 기사가 최고의 반응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너 기사 쓰니?”라는 연락도 몇 개 받고 말이다. 둘 다 내 예측이 틀렸지만 기분은 좋다. 이런 기분 좋은 오류는 두 팔 벌려 환영한다.
식자와 허영심
그런 느낌을 특히 좋아한다. 보통 사람들은 읽거나 접하지 않는, 고급스러운 지식을 향유한다는 느낌을. 아는 건 습자지처럼 얄팍하고, 행동은 제멋대로 들썩들썩 가볍고, 생각은 겉만 그럴싸한 사람이지만, 기품 있고 깊이 있는글을 찾아다닌다. 설령 풍미를 다 소화할 수 없을지언정, 향을 맡고 있다는 느낌 자체가 좋다.
방금 결제했다. 10만 원짜리 책 아르스 비테(ARS VITAE). 잘 사는 건 어떤 걸까. 어떻게 사는 게 좋은 삶일까. 답을 찾는 열쇠가 되기를.
진심은 진심이기에 전해진다?
중앙선데이에 김영하 작가의 인터뷰가 실렸다. 이름과 얼굴만 알고, 정작 책은 읽어본 적 없었는데, 인터뷰 내용이 인상적이라 오후에 급하게 책을 사와 읽기 시작했다. 지금 읽고 있는 ‘보다’에 멋진 구절이 눈에 들어왔다.
많은 사람들은 자신이 보고 겪은 일을 ‘진심’을 담아 전하기만 하면 상대에게 전달되리라는 믿음 속에서 살아간다. 호메로스는 이미 이천팔백여 년 전에 그런 믿음이 얼마나 헛된 것인가를 알고 있었다. 안타깝게도 진심은 진심으로 전달되지 않는다. 진심 역시 ‘잘 설계된 우회로’를 통해 가장 설득력 있게
전달된다. 그게 이 세상에 아직도 이야기가, 그리고 작가가 필요한 이유일 것이다.
진심을 전달하는 데에도 정교한 기술이 필요하다.
영화 “시카리오”
너무 바빠서
사실 그렇지 않다. 너무 바빠서 시간이 없는 경우는 많지 않다. 대부분은 집중하고 몰두하는 시간이 없는 경우다. 오늘도 스스로의 박약함과 산만함을 반성하며 하루를 마무리한다.
딱지 붙이기
사람에게 자주 딱지를 붙인다. ‘이 사람은 이렇구나, 저 사람은 저렇구나’ 그게 누가 되었든지 말이다. 특히나 일상을, 나아가 인생의 상당 부분을 함께 해온 사람은 더 많은 딱지가 붙어있다. 처음 붙였던 건 남겨놓고 새로운 걸 붙일 때도, 혹은 잘못 붙였다는 걸 깨닫고 땔 때도 있다. 그게 모여 그 사람에 대한 평가가 된다.
다른 사람이 내 것과는 다른 딱지를 소중한 이에게 붙일 거라는 예감. 그 딱지는 좋지 않은 딱지일 거라는 느낌. 그 느낌이 현실이 되는 순간. 그 순간을 두 눈으로 마주하는 게 두렵다. 그 이는 그렇지 않은데. 더 나은 평가를 받을 자격이 충분한데.
울적하다 울적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