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 더 오늘 깨달았다. 역사에 보면 혼사를 통해 끈끈한 동지 관계를 유지하는 방법이 정말 효과적이었다는걸
아는 형이 처형을 소개시켜준 사실에 적지않이 감동했다. 그 여자분이 매력적이거나 말거나 말이다
같지만 다른
푸념을 늘어놓는 자리가 모두 같지는 않다.
좋아하는 사람에게 늘어놓는 푸념은 한결 가볍다.
그때 그 독서실
정확하게 셀 수는 없지만 거의 10년만이라고 해두자. 그 독서실은 그대로였다. 구에서 운영하는 독서실이 집 근처에 있다. “청소년 독서실”이라는 그 때와 똑같은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이 독서실의 매력은 500원으로 하루종일 이용 가능하다는거다. 그때도 500원이었는데, 변하지 않소 그대로다.
오늘 아주 오랜만에 독서실을 이용했다. 중고등학생들이 웬 아저씨야 하는 눈으로 쳐다보지 않을까 몸에 힘이 들어갔다. 문을 열고 보니 바로 앞에 앉은 사람도 아저씨다.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의자는 삐그덕대고, 조명은 웅웅 고주파음을 내지만 마음이 편해진다. 10년 전 감촉이 온 몸에 퍼진다. 여기는 그대로인데, 시간이 참 많이 흘렀구나. 마음이 아려온다. 반갑다 독서실아. 그대로 있어줘서 고마워
O2O(Online to Offline)
온라인에서 같은 목적을 갖고 활동하던 사람들을 실제로 처음 만났다. 사회적인 명사인 사람도 있고, 이제 막 사회생활을 시작한 사람도 있고 다양한 조합이었다.
모임 중 던져진 “당신을 동기부여하는건 어떤건가”라는 질문에 요즘 빠져있는 진정성에 대한 의문과 말초적인 나를 알고 싶다는 욕구를 섞어 적절히 염세주의적인 의견을 펼쳤다. 그러면서 생각도 좀 더 정리되었고.
몇년 전에도 트위터를 통해 알게된 인연이 실제까지 이어져 소중해진 기억이 있다. 이 인연도 그러하길.
갈고 닦기
방금 또 들었다. 사고를 갈고 닦아야겠다는 생각이.
교복 통일화 논쟁에 대한 입장을 정리하다보니, 무상급식을 찬성하던 것과는 전혀 반대의 논리로 접근하고 있었다.
변화 없음
“너네랑 꽤 오래간만에 보는건데, 셋 모두 달라진 게 없네. 한 명은 여자친구랑 헤어지고 싶다고 이야기하고, 한 명은백수고, 한 명은 여자친구가 없고”
몇 달 만에 만난 친구 2명과 점심 먹고 커피 한잔 하고 헤어질 때쯤 이런 이야기가 나왔다. 달라진데 없다는 점에서 느껴지는 익숙함과 친근함이 좋지만은 않다.
다음에 만났을 때는 모두가 달라지길 고대한다.
나르코스
지난달 미국 여행 가면서 보려다, 아이패드에서 소리가 안 나오는 불행한 결함으로 한국에 돌아와서야 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침내 오늘 시즌 1 끝.
상상 이상의 이야기가 계속 이어지기에 대부분 실화에 근거했다는 걸 자꾸만 받아들이기 힘들어진다.
가족을 끔찍이 아끼면서 이외의 사람에게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잔인한 파블로 에스코바르. 정의를 구현하기 위해 발생하는 유혈사태는 당연하다고 여기는 추격자들. 합의된 사기가 가져다준 평화.
스페인어 대사가 대부분인 이 미드에서 기억에 남는 대사는 딱 두개.
“돈 받을래, 총 맞을래?(plato o plomo?)”
그리고
“네 보스(Si patron)”
[책] 이기적 섹스
어느 프로그램이었는지 기억나진 않지만 딸에게 통금을 적용하는 부모님께 외쳤었다. 어머니가 상상하는 그거, 낮에도 할 수 있다고. 가끔 딸이 남자친구랑 여행 간다고 하면 환하게 웃으며 피임은 꼭 하라고 말한다는 부모님의 이야기를 듣곤 하지만, 내가 느끼기에 우리나라는 성, 특히 여성의 성에 대해 보수적이다. 여자친구랑 여행 간다는 아들을 보며 정말 못 들을 걸 들었다는 눈빛을 보내는 우리 부모님 같은 분은 말할 것도 없다.
여러 여자와 잠자리를 함께한 남자는 그 사실을 떠벌리며 어깨를 으쓱하지만, 여러 남자와 잠자리를 함께한 여자는 그 사실을 드러내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그런 남자를 칭하는 용어는 없지만, 그런 여자를 칭하는 용어는 지금 당장 떠오르는 것만 해도 하나가 아니다. 이상하지 않은가. 섹스는 혼자 할 수 있는 게 아니고, 둘이어야만 가능한 것인데.
최근 나의 화두인 스스로를 인정하기, 일환으로 자신의 욕망을 인정해보자는 생각 중에 그럼 여자의 적나라한 욕망은 어떤 것일까 궁금한 마음에 이 책을 구입했다. 섹스 그 자체가 정말 좋고, 자기는 그런 사실에 부끄럼이 없다는 저자. 그러나 직설적인 화법으로 섹스 사랑을 입이 마르도록 외치지만, 저자도 결국 남자들에게 대놓고 하지 못하던 이야기를 용기 내어 책으로 옮긴 거다.
주제가 섹스 자체에 초점이 맞춰지다 보니 그와 연관된 사랑에 대한 이야기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다. 한국에서는 데이트-공식적 연인관계 확인-손잡기-키스-섹스의 과정이 일반적이지만, 브라질이나 독일에서는 연인관계 확인 전 섹스가 더 자연스럽다고 한다. 문화에서 정한 규범에 따라 차이가 존재한다. 하긴 이상할게 전혀 없는 게 뭐가 되었든 서로의 마음을 확인할 수 있다면 되는 게 아닌가.
아직까지 나에게 섹스는 스쳐가는 사람이 아닌 결혼도 생각할 수 있는 사람과만 허락된 행위이다. 그리고 사랑은 신뢰와 연결되는 개념이기에 상대방을 실망시키고 싶지는 않다. 그래서 저자가 밝힌 연애 중이면서 다른 사람과도 관계를 갖는 건 내키지 않는다. 물론 내키지 않는다가 상상해본 적 없다와 연결되는 건 아니다. 하지만 나를 둘러싼 문화와 규범이 바뀌지 않는 한은 내 방식을 바꿀 생각은 없다.
[책] 욕망해도 괜찮아
“저 역시 욕망을 극복의 대상으로 생각하고 끝없이 통제하는 문화 속에서 평생을 보냈습니다. 욕망을 잘 통제하는 사람만이 성공적인 학교, 직장, 가정, 종교 생활을 영위하는 게 우리 사회입니다…. 성공의 사다리를 오른다는 것은 남의 눈에 띄지 않는 깊숙한 방에 자신의 욕망을 감추어두고 반복하여 자물쇠를 채워나가는 과정입니다…. 그러나 자물쇠로 채워놓은 욕망은 완전히 사라진 것이 아니어서 언젠가는 반드시 치명적 역습에 나섭니다.”
예전 여자친구가 짜증 섞인 목소리로 나를 평한 적이 있다. 오빠는 수도승 같다고. 유혹에 미온적인 반응을 보였던 때인 거 같다. 그 친구의 목소리는 감정을 드러내듯 상당히 날카로웠는데, 사실 그 이야기를 듣고 내심 좋아했었다. 왜냐하면 자극과 유혹에 대한 반응을 통제하고, 정진하는 것이 추구해야 할 목표라고 생각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어릴 때부터 모범생, 착한 아들이라는 잣대로 나를 옭아매고,.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내 기준에서 자유분방한-적절한 표현인지 확실할 순 없지만-생활을 하면서 성취는 비슷하게 이뤄내는 사람들을 볼 때면 부러움과 시기심이 나를 사로잡았다. 그런 부러움과 시기심에 대한 반작용으로 ‘도덕적 우월성’을 자신하며 스스로를 위안했다.
최근 몇 주간 아주 빠른 속도로 휘몰아치던 감정의 소용돌이는 스스로에 대해 생각해보는 시간을 마련해주었다. 우연히 만난 이 책 저자의 모습은 나와 닮은 점이 많았다.(모범생, 자랑하고 싶은 욕망이 가득 차 있다는 점) 하지만 나와는 다르게 스스로를 잘 이해하고 받아들이고 있었다.
책에서 선을 넘는다고 표현했던 사건, 스스로 쳐놓았지만 다른 사람에게는 별 것도 아닌 그 경계를 조금씩 넘을 때마다 삶과 세상에 대한 인식이 풍요로워짐을 느꼈다. 선을 넘는다고 악마가 득실거리고 삐뚤어진 삶이 존재하는 게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다. 물론 경계 저 편에는 사파의 세계가 존재하겠지만, 걱정하던 것과는 완전히 달랐다.
책을 덮고 내린 결론은 스스로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게 필요하다는 거다. 그리고 계속해서 경계를 넓혀가며 일종의 실험을 계속해야겠다. 그래야 나에 대해서도 더 잘 알 수 있고, 내 삶이 풍성 해질 테니까.
내 자리
내 자리가 거기라서 서있는 사람은 되고 싶지 않다
물길을 막고 서있어 흐름을 더디게 하는 사람은 되고 싶지 않다
나이기에 그 자리가 내 자리인 사람이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