뜬금없는 2년 전 몽골 여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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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상 옆 책꽂이에는 수첩 몇 권이 꽂혀있다. 일기를 쓰겠다고, 읽은 책에 대해 기록하겠다고 구입한 것도 있고, 어디선가 받아서 연습장처럼 사용하는 수첩도 있다. 그 중 몇 개를 꺼내 새로운 용도를 모색하던 중, 2년 전 몽골 여행 중 썼던 글을 보게 되었다.

그렇다 그때 나는 몽골에 갔었다. 어떻게 하다가 행선지를 몽골로 정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그 여행이 참 인상적이었던 건 아직도 기억난다. 머리 속에 남아있던 기억과 수첩 속에서 묘사된 기억들을 버무려 아주 뒤늦은 몽골 후기를 적어보려고 한다.

정말 “말도 안 되는” 여행이었다. 아무런 계획 없이(혹은 계획을 세울 수 없이) 울란바토르의 게스트하우스를 찾아가, 항공편 일정에 맞는 투어 프로그램을 고른다. 몇 박 몇 일 고비 사막, 몇 박 몇 일 초원, 몇 박 몇 일 테를지 공원 등의 프로그램에 대해 설명을 듣고, 게스트하우스에 있거나 들른 사람들끼리 팀을 짠다. 내가 고른 프로그램은 한국인 2명, 일본인 2명, 태국인 1명으로 보기 드물게 아시아인끼리 뭉쳤는데, 심지어 나머지 한국인 1명은 고등학교 선배였다.

투어 가이드와 운전기사가 90년도에 나온 현대 봉고를 몰고 숙소 앞에서 기다린다. 울란바토르를 벗어나서 하루에 8시간씩 비포장 도로를 달리다가, 가이드가 만들어준 음식으로 끼니를 때우고 몽골 전통 천막인 게르에서 매일 밤을 보낸다. 네비게이션은 물론 지도조차 없는 상황에서 머리 속 길을 냅다 달리는 운전기사를 보면서 경이로움을 여러 차례 느꼈다.

초원과 지평선이 끝도 없이 펼쳐지는, 주변에 그 누구도 살고 있지 않는 곳이라 화장실도 없다. 그냥 적당한 곳에 가서 적당한 방법으로 볼일을 처리하면 되는 법. 볼일을 보고 있으면, 우주의 모든 기운이 나에게 모이는 느낌이다. 샤워 시설과 물도 없어서 물티슈로 몇 일 동안 물티슈로 얼굴과 머리를 닦다보니 찝찝한 게 흠이다.

은하수가 가로지르는 밤하늘에는 별이 쏟아질 것처럼 많이 떠있다. 별똥별은 5분마다 하나씩 떨어지고, 너무 많은 별들 사이에서 북두칠성을 찾는 것도 쉽지가 않다. 별이 가득한 밤하늘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기 위해 광량을 높이려 휴대폰을 들고 몇차례 주위를 뛰어다니던 형 덕분에 위에 있는 멋진 사진이 탄생했다.

한국 돈으로 5천원 정도를 내면 말을 타고 초원을 달릴 수 있다. 용기를 내어 말의 속도를 올리면 어느 순간 말의 네다리가 공중에 떠있는 순간과 마주하는데, 정말로 하늘을 나는 것 같은 짜릿한 기분이다.

한 가지 조심해야할 점은 몽골 사람은 술을 정말 잘 마신다. 한국 사람 술 잘 마신다면서 보드카를 계속해서 들이마시다가, 다음 날 한 8번은 토한 기억이 있다. 속에 들은 게 없으니 마지막에는 계속 초록물이 나오더라. 그 상태로 누워 봉고차로 8시간 동안 꼼짝 못하고 있었다.

죽도록 고생했지만, 죽을 때까지 기억날 것 같은 그 곳 몽골. 떠있는 별을 손가락으로도 샐 수 있을 것 같은 서울의 밤하늘을 보고 있자니 더욱 그리워진다. 경이롭고 비현실적인 느낌들.

타인의 개꿈 속 주연 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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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 쯤 전이었다. 출근해서 자리에 앉으니 맞은편 자리의 동료가 생글생글 웃으며 말을 건넨다. 어젯밤 그녀의 꿈에 내가 ‘또’ 나타났었다고. 또 라고 강조한건, 한 주 전에도 꿈에 나타났었다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가끔씩 주변 사람이 등장하는 꿈을 꾸기도 하지만, 이렇게 연달아 등장하는 경우는 또 드물어서 호기심이 일었다. 그녀에게 물었다. 어떤 꿈이었냐고.

동료가 전해준 꿈 이야기는 이런 내용이었다. 길을 가던 중에 나와 마주쳤다고 한다. 나는 어떤 여자와 데이트 중 이었다. 데이트녀는 굉장한 몸매의 소유자란다. 어허. 심지어 데이트녀가 적극적으로 호감을 표시했지만, 나는 동료에게 별로 마음이 동하지 않는다고 이야기했다고 한다. 오호라. 흥미로웠다.

꿈 이야기는 여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꿈에서 내가 동료에게 9월 중에 중대한 발표를 할 것이라 말했다고 한다. 중대한 발표라고? ‘중대한’이라는 수식어를 붙일 정도라면 요즘 시기에는 몇 가지 선택지 안에서 후보를 고를 수 있다. 그러나 아무 것도 해당되는 게 없었다.

우리는 곧 합의에 이르렀다. 어젯밤 동료의 꿈이 개꿈이라는 사실에 합의했다. 아쉬웠다. 내가 주연 배우를 맡았던 동료의 꿈이 개꿈이라는 게. 가능하면 작품성 높은 영화에 출연하고 싶은 게 배우들의 욕심이 아닐까. 하지만 어젯밤 꿈은 영화 “클레멘타인”에 버금가는 작품성을 지닌 영화였다.

어느덧 그녀의 꿈이 점찍어둔 9월이 코앞이다. 꿈의 내용과 연관성이 있는 건 아니지만, 9월은 좀 특별한 시기일거라는 느낌이 온다. 아니 특별해야한다. 가을 밤의 망작이 아닌, 흥행과 작품성을 동시에 거머쥔 황금종려상 수상작이 되었으면 좋겠다. 중대한 발표의 후보 선택지는 이번에도 등장하지 않지만, 시간이 흘러 돌이켜봤을 때 2015년 9월이 중대한 시기로 남길 바란다.

나의 9월은 “인사이드 아웃” 일까 혹은 “클레멘타인” 일까.

알아서 잘라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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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은 미용실을 찾는다는 건 상당히 어려운 일이다. 일단 마음에 드는 선생님을 만나기 쉽지 않다. “알아서 잘라주세요” 라고 말해도 알아서 마음에 드는 머리 스타일을 만들어주는 사람은 잘 없다. 믿음이 가는 선생님을 알게 되어도 문제는 남아있다. 어느 날 가보면 선생님이 다른 곳으로 옮겨갔다고 한다. 대체로 주된 활동 반경 내에 속한 미용실을 가기에 그 선생님이 내 영역이 아닌 곳으로 옮기면 다시 새로운 사람과 공감대를 형성해야한다.

친구가 소개해준 미용실에 다니던 작년 이맘 때 쯤 이었다. 옆머리를 눌러주는 다운 펌을 커트와 함께 저렴한 가격에 해주는 미용실이었다. 거기서 친구가 소개해준 선생님에게 몇 달 째 머리를 맡겼는데, 몇 번 가고나니 여러 가지 이야기도 나누면서 가까워졌다. 한창 머리를 자르던 중, 어쩌다 나이 이야기가 나왔다. 그리고 선생님이 물었다. 자기가 몇 살 같아 보이냐고 .

또래보다 빨리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익힌 처세술을 써먹을 때였다. 상대방의 나이를 짐작하여 이야기할 때는 약간 낮은 숫자를 부르는 게 좋다. 속으로 계산을 시작했다. 일단 얼굴을 다시 한 번 살펴봤다. 나보다 누나라는 걸 확신했다. 일을 시작한지 상당히 오래되었다고 말했던 적도 있으니 결론은 쉬웠다. 나보다 한 2살 정도는 많겠구나. 그러면 2살 정도 낮춰서 나랑 동갑 정도로 답하는 게 좋겠군. 진심을 담은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30?”

표정이 이상하다. 활짝 웃으면서 그것보다는 많다는 반응을 기대했는데 그게 아니다. 슬그머니 불안감이 감돈다. 잠깐 머뭇거리더니 선생님이 대답한다. 그거보다 2살 어리다고. “아 그렇구나…” 내가 할 수 있는 반응은 요정도 뿐이었다. 알고 보니 나만 그렇게 생각하는 건 아니었다. 내 친구도, 심지어 미용실 보조 선생님도 선생님의 나이가 그럴 줄은 몰랐다고 했다.

그런 불의의 사건이 있었지만, 그 후에도 계속 선생님을 찾았다. 시간이 흘러 선생님은 승진했고, 오늘 그 미용실에서는 처음으로 펌을 했다. 펌을 하고 나면 어색하지 않을까 망설이는 나를 강하게 안심시키는 모습에 알아서 해달라고 부탁했다. 결과는 생각보다 괜찮았고, 머리를 세팅해주면서 잘 어울린다며 선생님은 환하게 웃었다. 정말 걱정 없이 그냥 믿고 맡길 수 있는 사람을 찾았다. 외모와 실력을 맞바꾼 우리 선생님을.

[책]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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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랐다. 대부분의 여성들이 그랬다는 것을 몰랐다. 스스로를 성폭력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늘 경계하고, 세상에 대한 접근을 제한하고, 사전에 조심하며, 기본적으로 아주 자주 성폭력에 대해 생각한다는 것을 몰랐다. 그리고 세계 최고 선진국이라는 미국의 유명 정치인들 중에 강간을 옹호하는 헛소리를 숱하게 내뱉는 상당수의 사람들이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집에 가는 길이 무섭다고 함께 가달라는 이야기가 투정만은 아니었던 거다.

이 책의 저자는 ‘맨스플레인(mansplain: man+explain)’ 이라는 신조어 탄생에 큰 영향을 미친 사람이다. 남자들이 무턱대고 여자들에게 아는 척 설명하려 드는 현상을 가리키는데, 우리말로는 “이 오빠가 설명해줄게” 정도로 번역하자는 의견이 있다고 한다. 저자는 여성들이 사회에서 받는 불합리한 차별에 관한 사례를 모아놓았다. 그리고 한발 더 나아가 전 사회적인 담론으로 이를 확장시키는 방법에 대해 다루고 있다. 쉽게 읽히는 내용은 아니었지만, 꾸역꾸역 읽고 나니 마음이 후련하기보다 무거워진다.

평소에도 여러 가지 악조건 때문에 우리나라는 여자가 살기 힘든 곳이라는 생각을 해왔다.(그렇다고 남자가 살기 쉬운 곳은 아니다) 다른 이의 외모에 대해 전혀 아무렇지 않게 이러쿵저러쿵하고, 여성에게 불리한 성역할 관념이 강한 게 우리나라 사회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스스로는 더 신경 쓰고 조심해왔다고 자부했지만, 책을 읽고 나니 인식하지 못하던 지난 과오들이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걱정이 앞선다.

최근 영화 ‘암살’이 인기를 얻으면서, 독립운동에 몸 바쳤던 분들에 대한 관심이 늘어났다고 한다. 전지현이 열연한 안옥윤이라는 인물 같이 독립운동에 투신한 여성들이 상당수 존재하지만, 독립유공자로 인정받는 데에는 차별대우를 받고 있다는 소식을 들은 적이 있다. 사실 역사 속에서 찾아볼 수 있는 여성은 대체로 한 가지 유형으로 모아진다. 미모와 매력으로 그 시대 권력자들의 마음을 샀던 이들의 이름이 가장 많이 보인다. 이렇게 제한된 영역에서 눈에 보이지 않거나 혹은 보이는 장벽에 가로막힌 여성들의 사례를 줄여나가는 건 비단 한쪽 성의 과업이 아니라, 모두의 과업으로 존재해야한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나는 집까지 바래다주던 그런 사람은 아니었다. 하지만 두려움을 많이 느꼈을 거라는 걸 알고 나니 생각이 달라졌다. 그런 두려움을 불러일으킨 세상이 곱게 보이지는 않지만, 세상이 바뀌기 전까지 할 수 있는 건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데려다주긴 귀찮으니, 그냥 함께 사는 건 어떠냐고 물어봐야겠다. 다음에는.

섹시한 남자

ImTooSexy-36274섹시한 남자가 되고 싶다. 이 글을 읽는 사람들, 너무 큰 소리로 웃지는 않으면 좋겠다. 섹시하다는 이야기를 태어나서 몇 번 들은 적 없고, 섹시와는 상당한 간극이 존재한다는 걸 안다. 그래도 난 섹시한 남자가 되고 싶다. 운이 좋다면 모르고 있던 섹시함이 깊숙한 곳에 감춰져 있을 수 있다. 그렇다면 난 본디부터 섹시한 남자였던거다!

무 자르듯 딱 떨어지는 건 아니지만 크게 두 종류의 섹시한 남자가 있다고 생각한다. 첫째는 그냥 겉으로 보기에도 섹시한 남자다. 얼굴, 몸, 행동에서 뚝뚝 떨어진다. 그런 측면에서 대표적으로 부러운 사람은 박재범이다. 그의 찢어진 눈은 날카로운 느낌을 주고, 묘하게 매력적이다. 작은 키지만 비율이 좋고, 운동과 춤으로 다져진 몸이 괜찮다. 그리고 몸짓 하나하나가 예사롭지 않다.

내 여건은 상당히 불리하다. 짙은 쌍꺼풀을 가진 눈이 이쁘다는 소리는 들어봤지만, 섹시함에는 별 도움이 안 된다. 웃을 때는 아이처럼 낄낄대고 웃다보니 진중한 맛도 없다. 게다가 특징적인 나만의 몸짓이 있는데, 주변에서는 이를 제발 하지 말라며 흉내 낼 정도로 느낌이 별로이다. 열심히 운동한 덕분에 자신감 충만한 채 반팔티를 입던 때도 있었지만, 지금은 얼른 긴팔의 계절이 오길 바라는 몸뚱아리를 갖고 있다. 겉보기에도 섹시함을 뿜어내기는 매우 어렵다.

두 번째는 일을 할 때 섹시함이 느껴지는 유형이다. 평소에는 잘 모르겠지만, 자신이 맡은 일에 열중하는 상황에서는 완전히 다른 매력을 발산한다. Zion.T가 그런 유형이다. 무한도전 가요제를 준비하면서 파트너였던 하하는 그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한다. “정말 못생겼지만 노래만 부르면 정우성” 실제로 노래로 만나는 그는 같은 남자에게도 섹시함을 느끼게 한다.

나도 일 열심히 한다. 복잡하게 꼬여있는 상황을 아주 단순 명쾌하게 풀어내고 나면 “오 나 좀 괜찮은걸?”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이때가 일하면서 섹시함이 한껏 발산되는 시점이다. 아쉽게도 그때 내 곁에 있는 사람들은 전부 회사 사람들이다. “마리텔”처럼 회사 밖 사람들이 볼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만들지 않는 한, 나의 섹시한 순간을 널리 알릴 방법은 없다. 일에 열중하는 모습에서 뿜어져 나오는 섹시함을 보여주기 어렵다.

다시 태어나자. 그게 더 빠르겠다.

진실은 겹겹이 쌓여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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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문화 생활에 대한 정보를 얻는 주된 방법은 일주일에 한번씩 집으로 오는 잡지와 신문으로 좁혀졌다. 지난 주말 신문을 읽던 중, 흥미로운 소개 기사를 접했다. “왕세자 실종사건”이라는 좋은 평가를 받던 뮤지컬이 8월 중에 잠깐동안 공연된다는 기사였다. 확하는 끌림이 이어져서일까, 곧바로 예매 사이트에 들어갔더니 다행히 괜찮은 자리가 하나 남아있었다. 그리고 오늘 이 뮤지컬과 만났다.
비디오 테이프의 되감기 같은 연출로 같은 장면을 입체적으로 조망해나가면서 거대한 진실의 중앙부로 나아가는 연출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새로운 진실을 마주할 때마다 애써 못 본체 하거나, 자신의 입맛에 맞춰서 받아들이는 인물들의 모습 또한 일품이었다.
스스로는 진실을 알고 있다고 자신하지만, 정작 알고 있는 진실은 한쪽 면에서만 보이는 모습인 경우가 종종 있다. 한겹 한겹 껍질을 벗겨낼 때마다, 조금씩 속살을 드러내지만 정작 내가 알던 것과 달라서 부정하고 싶기도 하다. 그리고 한발짝 더 다가온 진실에 대한 배신감으로 몸서리친다.
내가 알고 있는게 과연 진짜일까 자신이 없어진다. 그때 그 일은, 그 사람은 정말 그랬던건지 잘 모르겠다. 만약에 다른 쪽 면을 볼 수 있다면 어떻게 해야할지, 그리고 한겹 벗겨진 진실이 알고 있던 것과 다르다면 받아들일 수 있을까. 늘 겸손하게 지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단 하나의 진실은 내가 틀릴 수 있다는 것, 그거 하나일지도 모른다.

P.S. 누구와 함께 봤는지에 대한 진실은 겹겹이 쌓여있지 않다. 경험하고 싶은게 있으면 혼자여도 부담스럽지 않다. 분명 이 글을 읽은 누군가 물어볼 법한 질문이기에 미리 답한다.

개똥철학에서 개똥벌레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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퀴즈를 하나 내보겠다. 누구나 이것을 갖고 있지만, 가급적이면 가슴 속에 숨겨놓고 있다.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장소는 술자리이다. 아직 잘 모르겠다고? 몸속을 따뜻하게 휘감은 술이 용기를 불어넣는다. 저 깊은 곳에서 꿈틀꿈틀 움직임이 느껴진다. 나올랑 말랑 나올랑 말랑. 말할까 말까 고민도 잠시, 술기운을 빌려서 남들 앞에 꺼내놓는다. 나의 개똥철학을.

대부분의 사람이 그러하듯 나에게는 개똥철학이 몇 가지 있다. “개똥”이라는 단어에서 속성을 파악할 수 있다. 흔히 개똥은 값어치가 낮거나, 쓸모가 없는 것을 일컬을 때 사용된다. 속담 중에 “개똥도 약에 쓰려면 없다”가 아주 정확한 예시이다. 나에게는 삶의 금과옥조와 같은 신념이지만, 다른 사람에게는 하찮게 들리는 것들을 이야기한다.

몇몇에게 들려주었을 때, 좋은 반응을 얻는 경우는 거의 없다.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욕을 안 먹으면 다행이다. 그러다 간혹 진지한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며, 고개를 끄덕이는 사람을 만나게 된다. 아주 좋은 생각이라며 어깨를 살짝 두드리기도 한다. 역시 세상은 넓고 사람은 많다.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이 있다니. 신이 난 채 다른 사람에게도 이야기해본다. 그러다보면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들을 꽤 만날 수 있다.

시작부터 모든 사람의 지지와 환호를 받는 생각은 거의 없다. 소싯적 위인전집을 읽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법칙이 하나 있다. 역사에 길이 남을 발견을 하거나, 업적을 남긴 사람들의 아이디어는 비난과 역경을 거쳤다. 심지어는 본인이 죽고 난 후에야 인정받은 경우도 찾아볼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은 개똥철학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렇게 개똥철학은 개똥벌레가 되었다. 별거 아니라 생각했던 내 아이디어가 누군가에게는 반짝이는 보석이 될 수 있다. 아이디어를 알리지 않는다면, 개똥철학은 개똥철학에서 변하지 않는다. 말하자, 적자, 그리자, 널리 알리자. 그러다보면 이 넓은 세상에서 나와 공명할 적어도 하나의 사람은 찾을 거라 믿는다.

“열심히” 보단 “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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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왓챠”라는 앱이 있다. 간단히 설명하면 영화에 대한 평가결과를 토대로 알맞은 영화를 추천해주거나 얼마나 좋아할지를 알려준다. 영화를 즐겨보는 편이라 그간 어떤 영화를 봤었는지 기록하는 용도와 새로 나온 영화를 선택할 때 정보를 얻거나 추천을 받으려는 목적에 즐겨 써왔다. 그리고 앱이 상당히 잘 만들어져 있어서, 업무를 하면서도 여러모로 자주 살펴보던 앱이었다.

그런 왓챠가 지난 주 나의 큰 화두였다. “왓챠 3.0″이라는 기치로 대대적인 업데이트를 진행했는데, 사용자들의 맹비난과 마주한 것이다. 아이폰 사용자들의 평가는 그나마 점잖지만, 안드로이드폰 사용자들의 평가는 말 그대로 살벌하다. 만약 내가 앱 담당자였더라면, 악평이 무서워서 앱 스토어에 들어가지 못하겠다 라는 생각이 들만큼 상황이 좋지 않았다. 왓챠를 만든 회사에 아는 사람은 없지만 측은한 마음이 들었다.

왓챠는 어떻게 해서 사용자의 마음을 잃은 것일까. 열심히 일하지 않아서? 오히려 다른 때보다 더 치열하게 고민하고, 늦게 퇴근했을 가능성이 높다. 사용자들에게 공개하기로 한 목표 일자가 다가올 수록 걱정과 불안도 컸겠지만, 한편으로는 굉장히 기대하고 있었을 거다. 이렇게 열심히 준비한 결과물을 빨리 보여줘야지 라는 생각에 말이다. 하지만 사용자들의 반응은 싸늘하다. 기획자/디자이너/개발자 모두가 합심해서 열심히 일했는데, 욕만 먹고 있는 상황이다.

이는 사용자가 생각하는 왓챠의 핵심과 왓챠에서 정의한 핵심이 다르기 때문에 발생한 문제라고 생각된다. 이번 업데이트에서 가장 큰 비난을 사고 있는 요소는 드라마와 책에 대한 평가/추천 시스템 도입이다. “영화”라는 서비스 핵심 속성이 흔들리면서 산만해졌다는 의견이 비판의 주를 이룬다. 왓챠에서는 스스로의 핵심을 “평가와 추천”이라고 정의했기 때문에 영화인지 드라마 혹은 책인지는 상대적으로 덜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왓챠에서 스스로를 정의한 “평가와 추천”이라는 핵심 대신 ,사용자들이 느끼는 “영화”라는 핵심에 좀 더 신경 썼어야했다.

사실 이유 없는 결정은 거의 없다. 남이 보기에는 도무지 이해 안 되고, 한심하다 생각되는 내용도 그렇게 될 수 밖에 없던 이유가 있는 경우가 많다. 아마 처음에는 왓챠에서도 스스로의 핵심을 “영화”로 정의했었지만, 더이상 영화 시간표/예매 시스템을 제공할 수 없게 된 상황 속에서 사업적인 고민 때문에 다른 영역으로의 서비스 확대라는 결정을 내리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결론은 아주 간단하다. 열심히 하는 게 중요한 게 아니다. 잘 하는게 중요하다. 열심히 준비해서 만들어낸 변화에 무조건 박수를 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잘 만들어진 변화에 환호성을 지르는 대다수의 사람이 있을 뿐. 왓챠 팀이 마음 잘 추스리고, 다시 사용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기를 기원한다.

*왓챠를 비판하기위해 이 글을 쓴게 아니라는 점을 명확하게 밝힙니다. 전 왓챠의 팬이고, 앞으로 더 좋은 방향으로 발전하길 기원합니다*

제 머리를 “제대로” 깎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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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신 상의 급격한 변화를 겪으면서 평일을 보내는 방식이 많이 달라졌다. 가장 두드러진 변화는 퇴근 후 약속이 늘었다는 점이다. 주어진 시간이 24시간인건 변함 없지만, 이전에는 늦게 퇴근하는게 기본이라 퇴근 후 약속 잡을 생각하기 힘들었다. 저녁 이후 시간이 내 것인듯 내 것이 아니었던 그 시절과 달리, 지금은 어느 정도 통제 가능해지면서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약속이 많이 생겼다.

약속이 많아진다는건 곧 점점 얇아지는 지갑, 존재감을 드러낼 기회를 엿보고 있는 술 배와 연결된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 시간 또한 늘어나고 있다. 만나는 이 중에는 오래 전부터 알고 지냈으나 자주 보지는 못했던 이도 있고, 최근에야 인연을 맺게된 이도 있다. 만남의 시작과 과정은 조금씩 다르지만 반가움은 같았다.

“행복한 가정은 모두 고만고만하지만 무릇 불행한 가정은 나름나름으로 불행하다.” 톨스토이의 통찰력 넘치는 절묘한 선언이다. 나 또한 그렇지만, 마주 앉은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삶이 마냥 행복하지는 않다. 그리고 행복하지 않은 이유가 있다. 덤덤한 표정으로 현재 주된 고통에 대해 이야기를 들려준다. 고통을 잠시 잊게해줄 술이 앞에 놓여있다. 짠 하고 잔이 부딪힌다. 술술 넘어간다.

이제 내가 이야기를 시작한다. 방금 들려준 고민에 대해 이리저리 분석하고 나름의 조언을 던진다. 상대방의 사정을 100% 이해하지 못했을 수 있다. 그래도 상관 없다. 그냥 생각나는대로 말의 조각을 이어 붙인다. 이어 붙이다보니 그럴 듯한 말들이 짜여진다. 슬쩍 살피니 얼굴이 조금은 환해진 것도 같다. 연신 고개도 끄덕끄덕거린다. “역시 난 통찰력 있어” 더 신나서 이야기한다.

그러다 퍼뜩 정신이 들었다. 분명 마주 앉은 사람에게 이야기하고 있지만, 내 스스로에게 던져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조언들이었다. 내 자신에게 해주고 싶은 말을 나와는 상관 없는 듯 다른 사람에게 하고 있었던 거였다. 그러면서 정작 나 자신은 별다른 변화나 노력없이 지금처럼 계속 살려는건 아닌가 생각이 들었다. 문제를 의식적으로 옆에 밀어둔채 말이다. 

중이 제 머리 못 깎는다는 말이 있다. 그런 중이 되기는 싫다. 다른 사람의 머리를 깎아주기 전에, 내 머리부터 먼저 깎고 싶다. 아니 내 머리는 물론 다른 사람의 머리도 깎는 그런 중이 되고 싶다. “제대로” 깎는 중 말이다.

취미의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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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미”라는 단어처럼 가벼우면서 동시에 무거움을 주는 단어도 잘 없는 것 같다. 경쾌한 발걸음이 옮겨질 듯한 이 단어가 특정한 뒷문장과 합쳐지면 마법처럼 짓누르는 무거움을 주기 시작한다. “취미가 뭐에요?” 라는 문장으로 바뀌면 말이다.
초등학교 때부터 이어져온 숙명적인 과제이다. 스스로에 대해 소개하는 자리에서 당당하고 말 끝을 흐리지 않고 자신의 취미를 이야기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오죽하면 자기소개서 중 가장 어려운 질문이 “특기”와 “취미”라는 말까지 들리겠는가.
그러다보니 취미를 가져본다, 취미로 할만한거를 찾는다는 개념으로 이어진다. 이건 “똑똑한 바보”처럼 모순의 극치이다. 좋아하기 때문에 시간이 생길 때마다 하고 싶은게 무엇인지를, 일부러 찾으려는 노력을 해야한다니! 일처럼 되어버린 취미가 과연 취미인가라는 의문이 생긴다.
대부분의 많은 사람이 취미라고 답하는 독서나 음악 감상을 자신의 취미라고 밝히기는 싫은걸까. 좀 더 그럴 듯해 보이는 걸 취미라고 말해야하는걸까. 다른 사람의 시선이 신경쓰여서일까. 혹은 남다른 취향을 갖기 어려운 사회라서일까.
그냥 좀 더 솔직해질 수 있으면 좋겠다. 특별히 좋아하는게 떠오르지 않는다면 당당하게 딱히 없다고 말하면 좋겠다. 누군가 독특한 취미를 이야기한다면 그저 존중해주면 좋겠다. 취미는 사랑이라고 노래 부르는 사람도 있다.
취미에는 높고 낮음이 있는게 아니다. 취향과 즐거움만 있는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