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크 로스코 “무제”

2014-10-06-markrothko

카카오톡 커버 이미지로 마크 로스코의 그림을 올려놨었다. 이름을 들어본 기억만 있을 뿐, 구체적으로 어떤 작가인지도 몰랐다. 전시회에 대한 기사를 신문에서 봤고, 기사에 있던 그림이 주는 느낌이 좋아서 골랐다. 어느날 누군가 물어봤다. 마크 로스코 좋아하냐고. 고민하다가 답했다. 자세히는 모르지만 좋아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결심했다. 전시회를 보러 가야겠다고.

2달 전쯤 마크 로스코 전시를 보러 예술의 전당에 갔었다. 가는 길에 검색해보니 마크 로스코의 대표작들이 포함된 훌륭한 전시라고 한다. 기대감이 더 커졌다. 다행히 사람은 많지 않았다. 설레는 마음으로 안으로 들어갔다. 대부분의 작가들이 그러하듯 초기 작품들은 별다른 특징이 없었다. 약간은 심드렁해졌다.

전시의 어느 지점부터 그의 그림이 급격하게 변했다. 카톡 커버 이미지와 비슷한 작품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사각형처럼 보이지만 명확하지 않고 뭉개져있는 형태들. 무한함을 담아내기 위해서 유한한 형태가 사라진 작품들. 직접 보지 않고 사진으로만 봤을 때는, 집에 걸어두면 멋지고 괜찮겠다 생각했던 작품들. 달랐다. 새벽 공기처럼 마음이 가라 앉았고, 침을 꼴깍 삼켰다.

전시 막바지에 이르자 온 몸이 쇠사슬에 묶인 듯 무거워졌다. 미국 휴스턴에 있는 로스코 채플을 본뜬 공간에서는 압도감 속에 가슴이 먹먹해졌다. 분명히 언젠가 경험한 적 있는 그런 압도감이었다. 기억의 미로를 더듬거리며 헤집다가 떠올랐다. 로마에서 만난 팡테온. 앉아있으면 천장이 내 쪽으로 쏟아질것 같던 그 느낌. 그러면서 황홀감이 귀를 간지럽혔던 그 곳. 팡테온에 압도된채 3시간 넘게 앉아있었다. 잠시 잊고 있던 그 기억과 마주했다.

20세기 초에 태어난 대계 러시아인 Ма́ркус Я́ковлевич Ротко́вич (나 러시아어 할 줄 아는 남자다. 마르쿠스 야코브레비치 롯코비치!) 유년기 미국 이민까지 이어지는 그의 성장기에 희극과 환희는 없었다. 반유대주의 움직임이 전 세계적을 휩쓸고 있던 시기. 운명처럼 갖게된 혼란과 상실감이 그를 지배했고, 궁극의 경험을 탐구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항우울제 과다복용 상태에서 면도칼로 손목을 그은 마크 로스코의 주변은 붉은 피로 흥건했다고 한다. 그의 마지막 작품에서 볼 수 있던 강렬한 붉은색과 다르지 않았을거다. 장중함과 풍부함이 느껴졌겠지. 관객들이 작품 앞에서 종교적 체험을 하길 원했던 작가. 숭고함과 무한함을 담아내던 작가는 그의 작품과 같은 죽음으로 삶을 마무리했다.

오늘이 마지막이던 전시를 한번 더 갈까말까 고민했었다. 결국 가지 않은 나의 게으름을 글을 쓰면서 책망한다.

달빛의 카드게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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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아무런 말도 없다. 앞에 놓인 카드 2장을 몸 쪽으로 끌어당긴다. 심호흡을 하고 침을 꼴깍 삼킨다. 그리고 아무도 볼 수 없게 조심하며 카드를 뒤집는다. 이정도면 나쁘지는 않다. 고개를 들어 다른 사람들 표정을 살핀다. 다양한 표정이 섞여있다. 나는 어떤 표정을 지어야할까. 이번 판은 어떻게 풀어나가야할까.

아는 형 동생들과 가끔씩 텍사스 홀덤이라는 카드 게임을 한다. 다른 포커 게임들보다 운이 덜 중요하고, 개인의 노력과 계산으로 승패를 바꿀 수 있는 게임이다. 머리 쓰는 걸 좋아하는 우리에게는 딱이다. 게임의 재미를 더하기위해 약간의 돈을 걸고 진행한다. 모여서 술을 적당히 마시고, 자정이 넘으면 게임이 시작된다.

게임이 시작되면 모든 것이 달라진다. 방금 전까지의 돈독함은 연기처럼 사라진다. 서로서로 약 올리고 공격한다. 평소라면 손에 손잡고 함께 걸어갔을 사람들이지만, 어떻게든 밀쳐내고 떨어뜨리고 혼자 살아남으려 한다. 홉스가 탁하고 박수를 칠만한 광경이다.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이 벌어지는 세상.

진정성도 사라진다. 항상 진심으로 대해주던 형은 선원을 유혹하는 사이렌 같다. 나 역시도 겉으로는 자신만만하게 웃고 있지만, 긴장된 마음을 들킬까 심장이 빠르게 뛴다. 어떤 때는 일부러 난처한 표정을 지으면서 누군가 함정에 걸려들길 바라기도 한다. 여기서는 기본적으로 누구도 믿지 않아야한다. 믿을건 나 자신뿐.

돈의 지배력도 극도로 커진다. 초조하고 여유 없는 얼굴을 하고 있는 친구는 방금 전까지 기름부자처럼 여유롭던 친구였다.  굽신거리던 동생이 갑자기 통 큰 형님으로 바뀐다. 돈을 따고나면 200원을 아까워하던 나는 온데간데 없고, 2000원을 아무렇지 않게 던지는 사람으로 바뀌어있다. 역시 돈 많으면 장땡이다.

이런 홀덤 세상과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을 비교해보면 재미있다. 높이 평가받는 가치들을 많이 버릴수록 홀덤 세상에서 더 많은 것을 얻을 가능성이 높아진다. 협력, 진정성, 물질만능주의에 대한 경계는 사회에서 추구되어야할 가치로 인식된다. 그러나 홀덤 세상은 정반대의 원리로 세상이 구성된다. 나만 알고, 다른 사람을 잘 속이고, 돈에만 기대어 사는게 최고다.

어느덧 게임이 끝났다. 1등은 아니었지만 결과적으로 돈을 벌었다. 뒷정리를  밖으로 나왔다. 새벽 5시 15분. 기분이 좋아서인지 공기가 상쾌하다. 아직 지하철이 안 다니기도 하고, 피곤하기도 해서 택시를 불렀다. 룰루랄라 노래를 들으며, 놀면서 돈까지 벌은 자신을 뿌듯해한다. 고개를 돌려 미터기를 봤는데 쉬지 않고 올라간다. 아직 집까지 더 가야하는데. 어어어. 어느덧 택시비는 오늘 딴 돈을 넘어섰다.

홀덤으로 얻은 보상이 허무하게 사라졌다. 내가 사는 세상은 홀덤 세상과 다르다는걸 알려주려는걸까.

그런게 아니겠지. 그냥 어지간하면 지하철 타라는 뜻인거 같다. 역시 돈 벌기는 어렵다.

기다림의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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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를 되새김질해보면 무언가를 기다리는 경우가 참 많다. 출근길 지하철 역에서 지하철이 오기를 기다린다. 점심시간 식당에서는 주린 배를 움켜쥐고 주문한 음식이 나오기를 기다리고, 회사에서는 잔뜩 긴장한 채로 상사의 의견을 기다린다. 고된 일과 속에서는 퇴근 시간을 기다린다.

기다림은 불안을 안겨준다. 기다림의 대상이 빨리 나타나지 않으면 마음이 편하지 않다. 나아가서는 점점 불안해지고 신경쓰인다. 불안해지다보면 어떤 다른 것에도 집중할 수 없다. 특히 속절없이 기다릴 수 밖에 없는 상황이라면 그 사람은 갈갈이 찢어진다. 어릴 때 망부석 이야기는 한번씩 다 듣지 않았던가.

반면에 기다림의 대상과 가까워지면 설렌다. 관찰한바로는 직장인은 금요일에 가장 관대하다. 조금만 지나면 주말이니까 모든게 아름다워 보인다. 생각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지는데, 실제로 그 대상과 만난다면 어떤 기분이겠는가. 불금이라며 술잔을 기울이며 주말과의 만남을 기념하고 축하한다.

그래서일까. 기다림이 하나의 심리 전술로 사용되기도 한다. 연애에서 관심있는 사람의 마음을 얻는 방법으로 답장 천천히 하기, 약속 장소에 일부러 늦기 등을 꼽는 경우가 있다. 주변 친구들의 증언에 따르면 효과가 쏠쏠한가보다. 그러나 과하지 않게 적절히 사용해야한다. 왜 그런 노래도 있었다. 기다리다가 지친다. 지치게 만들면 안된다.

성공의 요소 중 하나로 기다림이 꼽히기도 한다. 삼국지의 유비는 세번째 찾아간 초막에서 기다린 끝에 제갈공명을 얻어 천하의 삼분의 일을 차지했다. “두견새가 울지 않으면, 울 때까지 기다린다”는 말을 남긴 도쿠카와 이에야스는 전국 시대를 종식시키며 일본을 재패했다. 들뜨지도 초조해하지도 않고, 좋은 기회를 자기 것으로 만드는 기다림의 중요성을 이들은 알고 있었다.

오늘도 기다림으로 가득했던 하루를 보내고 집에 왔다. 어머니께서 늦은 저녁 밥을 차려주신다. 한술 두술 밥을 먹으며 편안해진다. 그러나 기다림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오늘 내내 기다렸던 그 분과 아직 만나지 못했다.

그때 벨소리가 울린다. 딩동.

드디어 왔다. 택배 기사님.

[책] 트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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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 결핍된 것 같은 결혼은 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른다. 두 사람 자체와 관계보다 주변 환경이나 물질적인 요소가 부각되는 결혼은 술자리 안주로 자주 등장한다. 이런 결혼에 대해 이야기할 때면, 왠지 헛웃음이 나오거나 씁쓸함을 입안에 머금는다. 반면에 아름답고 가슴 벅차게 하는 이야기를 가진 두 사람의 결혼을 마주할 때면 입가에 저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사랑을 매개로 한 결혼이 20세기에서나 생겨난 개념이라는걸 머리는 알고 있지만, 나는 20세기에 태어난 사람이 아니던가.

그러나 시작은 사랑이 충만했으나, 어느순간 사랑이 증발해버리는 결혼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시간이 지날수록 사랑은 신뢰와 의리로 바뀐다지만, 나비가 되지 못하는 번데기처럼, 번데기인채 굳어버리는 사랑도 있다.

그렇게 되면 선택지는 크게 두가지이다. 결혼을 취소하거나, 아니면 같이 사는 번데기를 애써 외면한로 살거나. 두가지 선택지 중 하나를 고르는 기준을 아주아주 단순하게 생각해보면 결국 이것이지 않을까 싶다. 결혼 생활을 유지하는게 더 이득인지, 아니면 종식시키는게 이득인지. 불행인지 다행인지 모르겠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주변 시선을 고려하면 결혼 생활을 유지하는게 여러모로 더 낫다. 결혼 생활을 종식시키는, 공식적인 언어로 “이혼”이라고 부르는 행위는 아직까지는 피곤한 행위이다. 원치않는 꼬리표가 따라다니니까.

하지만 결혼을 안 하고 삶을 이어나가는 사람에게는 더욱 가혹하다. 하고 싶지 않아서 안 하는 것인지, 못 하고 있는 것인지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결혼은 사람이라면 무조건 해야하는 인륜지대사로 여겨지며, 중학교 때 배운 대우 관계에 의해서 인륜지대사를 겪지 않은 사람은 사람이 아닌게다.

이 책에서 다루는 결혼은 사랑이 없어야만 하는 결혼이다. 짧게는 1년, 길게는 2년 계약 기간 하에 결혼 서비스를 제공하는 회사에서 일하는 희원이라는 여자가 주인공이다. 계약 기간이 끝나면 그 사람과의 인연은 완전히 묻어버린채 새로운 다른 계약을 기다려야한다. 몇년의 근무기간이 지나면서 희원에게 남은 건 사랑에 대한 불신 뿐이다.

이 회사의 서비스를 이용하는 주요 고객들은 각자의 사정이 있다. 성적 정체성을 감추려고 결혼하는 동성애자, 이혼에 대한 사회적 대가를 경험하고 잠시 피해있으려고 하는 돌싱, 아니면 결혼 생각은 없지만 안 하면 안 될 것 같아서 결혼한 사람. 결국 자신을 가려줄 가면을 찾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결혼 생활의 본질적 가치 보다는, 부차적인 가치에 더 매달리는 사람이다.

책을 읽다보니 결혼이라는거 자체에 대해서 커다란 기대를 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든다. 사실 누구랑 결혼하냐보다는 어떻게 결혼 생활하냐가 훨씬 더 중요하지 않을까. 그런데 왜 내 생각의 범위는 결혼 생활 자체까지 뻗어나가지 않고, 누구를 만나야하는지에서 멈춰져 있는 것일까. 누구를 만나게될지 아직 명학하지 않아서 그런 것일까.

누구일지 모르는 미래의 내 배우자가 나중에 이 글을 읽는다면 이렇게 물어보겠지.

“그래서 당신은 나를 사랑해서 결혼한거야?”

“사랑하니까 결혼했고, 결혼했으니까 사랑해야지”

이렇게 대답하면 좋아할까 모르겠다.

섬마을 친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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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섬마을 아이였다. 미국에서 돌아온 5살부터 나는 섬마을에 살았다. 섬마을은 강이나 바다에 있지 않고 서울 한복판에 있었다. 한쪽은 철길, 다른 한쪽은 서부간선도로로 막힌 구로1동은 섬마을이었다. 동네로 들어오는 입구와 출구가 하나씩 밖에 없었고, 동네를 지나가는 버스도 2대밖에 없었다.

섬마을 안에는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가 모두 있었다. 초등학교를 졸업한 열에 아홉은 옆에 있는 중학교로 모였고, 똑같은게 고등학교에서도 반복되었다. 나는 다른 고등학교를 갔는데, 거기에는 초등학교, 중학교 친구가 열명 남짓 있었다. 서로 이름은 몰랐어도 초등학교, 중학교를 다니면서 한번씩은 마주쳤던 적이 있었다.

우리는 똘똘 뭉쳐다녔다. 우리가 공부를 열심히 해야 섬마을의 인기가 올라가고, 집값이 올라갈 것이라는 말도 안되는 이야기를 하며 의지를 다졌다. 새벽마다 스쿨버스를 타고, 학교에서 마주치면 눈웃음을 나누고 각자 하루를 보내고, 돌아오는 스쿨버스에서는 왁자지껄 떠들며 스트레스를 풀었다. 어찌나 떠들었던지 고1때는 눈 붙이려던 고3 선배에게 혼나기도 했다.

고2 때 다른 동네로 이사가면서 더이상 같은 스쿨버스를 타지 않았다. 하지만 각자 대학교로 흩어지고도 우리는 만났다. 일년에 한번은 다같이 놀러가며 우애를 다지기도 했고, 무슨 일이 있어도 송년회나 신년회를 꼭 가졌다. 각자의 사정으로 한동안 볼 수 없었던 친구도 있었지만, 그래도 만남 자체는 계속 이어나갔다.

오늘은 유학 중인 친구가 한국에 잠깐 돌아왔기에 간만에 모였다. 이제는 예전처럼 모두 모이지도 않고, 섬마을에 모이지도 않는다. 대부분 섬마을을 떠나 다른 곳에서 생활하고 있다. 절반 정도는 결혼을 했고, 엄마나 아빠가 된 친구도 있다. 나이로 보나 동네로 보나 섬마을 아이는 아닌거다.

하지만 우리는 오늘도 섬마을 아이로 돌아가 이야기를 나눈다. 중학교 전교 등수를 비교하며 유치찬란함을 뽐내고, 서로의 과거 연애사를 들추고 놀리며 낄낄대며 웃는다. 스쿨버스에서 있었던 일, 다같이 놀러갔던 기억도 이야기에서 빠지지 않는다. 그렇게 몇시간 동안만이라도 그 시절로 돌아갔다.

2차를 마치고 술집을 나오는데 한명이 우리 되게 동안이라고 말하며 웃는다. 어이가 없는걸 알면서도 아무렴 우린 동안이지라며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우리는 안다. 그 시절 섬마을 아이들은 이제 어디에도 없다. 각자의 배를 몰고 바다를 가르며 나아가고 있는 몸뚱아리만 어른인 아이들이 남아있을뿐.

다음 번 만남을 기약하고 집에 오는 길에 많은 생각이 든다. 8살부터 시작된 소중한 인연들. 지금은 시간이 많이 늦었으니, 내일 아침에 마음을 담은 카톡을 보내야겠다.

“반가웠다 얘들아~ 오늘 먹은거 각자 얼마씩 돈 보내면 되냐면…”

에스프레소 예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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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프레소에게는 뭔가 특별한 느낌이 있었다. 맛은 없었다. 쓰디쓴 맛만 입안에 가득했다. 하지만 그냥 멋있었다. espresso라는 알파벳의 느낌마저 멋졌다. 연속으로 붙어있는 s가 주는 강렬한 느낌이 좋았다. 그러면서도 직선이 드물고, 곡선으로 이뤄진 알파벳 단어들에서는 부드러움이 느껴졌다.

나만 에스프레소를 특별하게 여기는건 아니라고 생각된다. 노래 가사에 들어가있는 커피 용어는 에스프레소가 대부분이다. 물론 십센치는 아메리카노가 좋다고 노래를 부르긴했다. 늘 여유가 넘쳤던 군대 선임은 카페 테라스에서 에스프레소 한잔을 마시며 책을 읽는 남자가 진정 멋진 남자라고 말했다. 그래 본 적도 없으면서 옆에서 고개를 끄덕였다. 예전 회사에서 알고 지내던 이탈리아 사람 스테파노는 에스프레소를 아주 멋드러지게 마셨다. 스타벅스에서 스탠딩 테이블에 반쯤 기대 한입에 톡 털어넣던 그를 보고 내가 말했다. 커피 마시는 모습을 보니 진짜 이탈리아 사람 맞구나.

오늘 나는 바리스타가 되었다. 유럽 바리스타 자격증 시험을 통과했다.  커피를 좋아하고, 매일 마시지만 정작 커피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르는 게 못마땅하던 차에, 먼저 자격증을 딴 친구의 이야기를 듣고 시작했다. 8차례 수업을 듣고 시험을 보면 되는 간단한 과정이었다.

수업을 들으면서 마주친 에스프레소라는 녀석은 내 생각보다 더 특별한 녀석이다. 세상에서 접할 수 있는 여러 가지 커피 음료의 대부분을 만드는데 필요하다. 커피의 정수인셈이다. 그리고 굉장히 섬세하다. 사용하는 커피 원두의 양이 얼마인지, 얼마나 굵게 갈았는지, 수평을 맞췄는지 아닌지에 따라서 에스프레소의 맛이 많이 달라진다.

가장 중요한 사실은 제대로 뽑은 에스프레소는 맛이 특별하다는 거다. 쓰면서도 달콤하다. 풍부하면서도 빠르게 끝으로 다가간다. 양은 얼마 안되지만 온몸에 빠르게 독약처럼 스며든다. 참 모순인 녀석이다. 겉만 번쩍번쩍하고 속은 비어있는 줄 알았는데, 알고보니 속도 깊은 친구랄까. 자격증을 준비하면서 에스프레소의 매력에 흠뻑 빠졌다.

내일 점심을 먹고서 좋은 카페로 가야겠다. 일행에게 이런 에스프레소의 매력에 대해 알려주고 싶다. 날씨는 덥지만 커피는 뜨겁게 먹는게 정석이라고. 쓴 맛 때문에 에스프레소를 피하는거라면, 여기는 맛있으니까 마셔보라고. 그리고 옆에서 열심히 수업 시간에 배운 커피에 대한 이야기를 해줘야겠다. 시원한 아이스 아메리카노로 목을 축이며.

용돈은 제때제때

방에서 편안한 자세로 의자에 앉아 왕좌의 게임을 보고 있는 중이었다.

“똑똑”

노크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면서 어머니께서 들어오셨다. 머뭇머뭇 거리시는 어머니. 저녁 밥을 많이 남겼다며 말을 꺼내시더니 갑자기 안쓰러운 표정으로 물어보신다.

“요즘 회사에 무슨 일 있는거 아니지? 월급이 안 나온다거나…”

“으잉? 엄마 그게 무슨 이야기야? 월급 잘 나오고 회사 잘 되고 있어. 어디서 무슨 이야기를 들은거야?”

몇번을 괜찮냐고 되물어보시더니 말씀하신다.

“아니 너가 매달 용돈 보내주던거…그게 2달째 안 들어와있길래…”

아차 싶었다. 돈을 벌기 시작하면서 매달 월급날 부모님께 약간의 용돈을 보내드렸었는데, 지난 2개월은 깜빡한 것이다.

어머니께서 이어서 말씀하신다.

“그리고 너가 요즘 잠을 잘 못 잔다고 하길래…”

날씨가 더워지면서 잠들기까지 오래 걸리고, 자다가 자꾸 깨곤 했다. 어쩐지 최근 들어 아버지께서 나만 보면 잘 챙겨먹고 다니라고 말씀하신다 했더니…

상황을 파악하고 나니 너무 웃겼다. 껄껄대며 어머니께 월급 잘 받고 있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말씀드리고, 아버지께는 밖에서 엄청 잘 먹고 있다고 이야기했다.

지금도 부모님은 내가 회사 옮긴걸 많이 걱정하시고, 불안해하신다. 내가 즐거워하고 만족해하면 된다고 말씀하시지만, 속으로는 까맣게 타들어가실거다. 그러다보니 아들놈이 용돈도 안 보내지, 잠도 잘 못잔다고 하니 회사에 문제가 있는데 혼자 끙끙대는구나 짐작하신거다.

“아빠 걱정하지마! 회사 잘 되고 있고, 나 돈 많아”

걱정 없애드리려 일부러 더 호기롭게 이야기했다. 아버지께서 눈도 안 마주치고 말씀하신다.

“그러면 용돈 올려받아야겠다”

아차 당했다

뒤늦은 후회

시간이 휘리릭 지나간 것 같은 일요일 밤에는

허무하게 날려버린 토요일의 시간들이 그렇게 아쉬울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