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한복 입은 남자

이 책에 관심을 가진 건 몇달 전 일이다. 자세한 기억은 없지만, 교보문고를 구경하던 중, 따끈한 신간이었던 이 책을 발견했다. 그러나 두께에서 오는 압박감과 다른 책을 먼저 사야한다는 생각에 지나쳤었다. 그러다가 크리스마스 때 들른 교보문고에서 충동적으로 다른 책과 함께 구입하였다.
읽기 전에 갖고 있던 기대치는 ‘재미는 있겠지만, 마케팅이 과도한 책’ 정도였다. ‘영화화 결정”우리 소설은 이러한 작가를 필요로 한다’라고 적힌 띠지와 추천사. 그리고 장영실과 다빈치의 연결고리를 루벤스의 그림에서 발견한다는 큰 줄기는 읽기 전에도 알 수 있었다. 그래서 삐딱한 태도를 보이면서 책을 읽기 시작했는데…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이 책은 재미있다. 그 재미가 ‘우와!’ 수준까지는 아니지만, 몰입도가 상당하다는 느낌이다. 다만 어느 시점부터는 너무 뻔하게, 그리고 급하게 전개되는 느낌을 주는게 아쉽다.
작가를 칭찬하고 싶은 점은, 남들은 그러려니 넘어가는 부분에서 소재를 찾아, 이를 다른 소재들과 알맞게 이어가는 부분이다. (나만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장영실의 이야기는 아주 잘 알고 있다. 심지어 가마가 부서져 쫓겨났다는 사실도. 하지만 작가는 여기서 의문을 가지고, 이를 진지하게 탐사한 결과 매우매우 설득력 높은 이야기를 짜낸다. 나 역시도 장영실과 다빈치가 만난게 아닌가 생각이 들 정도니까.
댄 브라운의 소설을 읽고 일루미나티가 이 세상을 움직인다는 생각을 하게된 적이 있었다. 물론 소설 내용에 대한 반박 자료도 많이 있었기에, 소설은 소설이구나 라며 끝나긴 했다. 이 책 역시도 아마 그럴 것 같다. 책이 유명해지거나, 영화가 나와서 관심 갖고 연구하는 사람들이 생기고, 반박자료를 제시하겠지. 그 전까지는 아마 이야기를 믿고 있을 것 같다. 그만큼 탄탄한 구조를 가진 이야기니까.

[책] 하루키의 여행법

퇴사한다는 소식을 들은 오윤샘이 깜짝 선물을 줬다. 앞장에 써준 편지를 보며 나와 비슷한 악필이라는 사실에 놀라고, 따뜻한 마음에 놀랐다.
수필, 소설 등 문학책 사는걸 돈 아까워하는 나이기에, 내게는 이 책이 거의 첫 여행기이다. 예전에 하루키의 소설을 읽고 나서 취향이 아니라고 결론내린적도 있어서, 큰 기대 없이 책을 펼쳤다. 그러나 생각외로 책장이 술술 넘어갔고, 그의 여행에 함께 했다.
나 역시 상상해봤던 무인도 여행에서 보여준 우스꽝스러운 그의 모습은 인간미를 보여주었다. 지겨울 정도로 우동을 먹었던 우동 여행에서는 맛의 묘사에 침이 꼴깍 넘어가기도 했다.
마지막 장을 넘기고 나니 참으로 유쾌한 기분이 든다.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들끼리는 뭔가 통하는게 있는거 같다. 그렇다고 이 책을 또 읽을 일은 없다는 생각이 든다. 만족스럽지만 다시 먹을 생각은 들지 않는 그런 음식 같다고나 할까.

그 덕후가 사는 세상

덕후 중에 상위권에 속하는 후배와 점심을 먹었다. 2~3년째 레고 ‘덕질’ 중인 이 녀석의 이야기를 듣고 있자면, 마치 서로 다른 세상에 사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몇년 전부터 ‘덕후’라는 단어가 자주 들린다. ‘오타쿠’와 개념은 거의 같으나, 보다 긍정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 뚱뚱하고 못생긴 안경남 이미지는 아니다. 레고, 베어브릭 등의 덕후는 멋지고, 잘 나가는 사람이라는 이미지를 갖고 있기도 하다. 그래서인지 멋지게 보이려, 덕질을 흉내내는 사람들도 생겨나고 있다.

덕후가 늘어난다는건, 우리 사회가 변하고 있다는 명확한 증거이다.

1. 세상이 초연결사회가 되었음을 알려준다. 이전보다 같은 덕후끼리 쉽게 정보를 공유하고, 자주 뭉친다.

2. 사람들의 취향과 개성이 다양해졌음을 알려준다. 유행을 따르지 않고, 자신의 잣대를 가진 사람이 늘어났다.

3. 좋아하고 관심있는 것에 돈을 아끼지 않는 사람들이 많아졌음을 알려준다. 실제로 레고 의 경우 수십만원에 이르는 가격에도 불구하고 점점 찾는 사람이 많아지고 있다.

난 뚜렷하게 내세울만한 취향이 없다. 그렇기에 취미에 관한 질문을 받으면 난감하다. 좋아하는 것이 뚜렷한 그들이 부럽다. 노력을 통한 덕후는 되기 싫다. 언젠가 나도 덕후가 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