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시에 오르자마자 기사님이 물어보신다. “카카오 택시 부르신 거죠? 어떤 길로 갈까요?” 편하신 길로 가달라고 말씀드리면 이렇게 답하신다. “그러면내비게이션에서 안내하는 대로 갈게요”
집으로 향하는 택시 안에서 생각해보았다. 불과 몇 년 전 기억을 더듬어보면 택시 기사들은 내비게이션을 쳐다보지 않았다. 시내 구석구석을 운전하면서 머릿속에 그려진 지도를 더 신뢰했다. 혹은 어떤 기사는 내비게이션을사용하는 건 택시 기사의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는다고도 했던 것 같다.
더 몇 년 전으로 돌아가 보면, 길을 알고 있는 건 상당한 지식이었다. 종이 지도를 펼쳐놓고 새로운 길을 연구하시고, 택시를 타면서 알게 된 길을 서로에게 알려주시던 부모님의 모습이 떠오른다. 가본 적 없는 곳으로 차를 타고 가야 할 때는, 미리 지도를 보면서 어떻게 가야 할지 고민해야 했다.
언제부터 길을 알고 있을 필요성이 많이 줄어들었다. 내 경우를 살펴보면, 항상 내비게이션을 보며 운전하기 때문에 외우고 있는 길이 거의 없다. 하지만 운전을 하는데 아무런 불편함을 느끼지 못한다. 내비게이션이 시키는 대로 직진, 좌회전하다 보면 어느새 목적지이다.
택시가 언제 잡힐지 몰라서 발을 동동 구르고, 칼바람이 부는 길거리에서 지나가는 택시를 놓칠세라 목을 길게 빼는 일도 사라졌다. 야근을 마치고 카카오 택시 앱으로 택시를 부르고, 짐을 정리하고 나가 건물 앞에서 기다리던 택시에 올라타면 된다. 그리고 택시는내비게이션이 알려주는 가장 빠른 길로 집까지 데려다준다.
뇌 과학 분야의 유명한 연구 중 런던 택시 기사의 해마(hippocampus) 연구가 있다. 런던 시내 도로와 광장 등을 학습하는 동안 이들의 해마는 커진 반면, 정해진 노선만 다니는 버스기사들은 해마가 별로 늘어나지 않았다는 것. 뇌도 근육과 같다. 계속 쓰는 부위는 발달하고 안 쓰면 쪼그라든다.
그렇다면 이제 택시 기사가 지닌 가치는 어떤 것일까? 그만이 알고 있던 빠른 길도 이제는 소용없고, . 이전보다 작아졌을 것이 분명한 택시 기사의 해마는 어쩌면 그들의 운명을 대변하는 것일 수도 있다. 그리고 그건 비단 택시 기사에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자동화 무인화의 거센 물결과 마주할 대부분의 운명일 거라는 불길한 예감을 감출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