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니라는 나하고 먼 이야기라고 생각했었다. 특별히 신경 쓰지 않아도 평소에 치아 관리를 잘 했다는 이야기를 들을 만큼 치아가 건강한 편이었다는 점이 한몫했을 거다. 그러다 3년 전쯤인가 왼쪽 위 어금니 뒤에 사랑니가 있다는 이야기를 처음 들었다. 그때도 별 걱정 없었다. 최근 며칠 사이에 왼쪽의 느낌이 싸해지면서, 급기야는 왼쪽으로 음식을 씹을 때 통증이 엄습해오자 덜컥 겁이 났다. 용의자는 사랑니였다. 내게도 이런 시련이 닥치다니.
부리나케 정보를 수집하던 중, 신촌에 사랑니 발치 전문 치과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지금까지 뽑은 사랑니가 3만 개가 넘는다는 그 치과. 그 자리에서 예약하고 어제 퇴근 후 방문했다. 신촌 현대백화점 뒤 셀 수 없이 많이 지나다니던 건물 위에 치과가 있었다. CT 사진을 보니 왼쪽 위 1개, 오른쪽 아래 1개가 눈에 들어왔다. 진료 의자에 앉히더니 갑자기 입을 벌리라고 하고는 마취를 시작한다. 어라 벌써 시작인가? 입 안이 얼얼해지자 의사 선생님이 다시 옆에 앉는다.
뽑기 작전이 시작되었다. 한 뭔가가 우지끈 뽑히는 소리가 들린다. 20초쯤 지났을까, 선생님이 다 되었다고 말한다. 안심시키기 위해 그냥 하는 말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나를 일으켜 세우더니 거즈를 물려준다. 고개를 돌려보니 반달처럼 휘어있는 피 묻은 이가 하나 보인다. 집에 와서 앉아있는데, 2시간쯤 지나자 마취가 풀리면서 아파온다. 거울을 보니 왼쪽 볼이 퉁퉁 부어있고, 심술이 가득해 보인다. 하루가 지났지만 아직도 입을 크게 벌리려 하면 아프다.
“앓던 이가 빠진” 기분은 오묘하다. 어금니를 얍삽하게 공격하던 녀석이 사라졌지만, 꽉 차 있던 자리가 텅 빈 느낌이다. 이 공허함에 익숙해지려면 얼마간의 시간이 필요하겠지. 아직 뽑지 않은 오른쪽 녀석은 사진으로 보니 거의 대청마루에 눕듯이 누워있다. 공사가 좀 클 거라는데 벌써부터 걱정이다. 나를 공격하기 전까지는 평화롭게 둘 것이다. 치과라는 곳은 어지간하면 가지 않는 게 좋은 곳이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