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사람에게 내일이 세상의 마지막 날이라면 오늘 과연 무엇을 먹을 거냐고 질문을 던지곤 한다. 가장 좋아하거나 그리워하는 음식을 좀 더 또렷하게 생각해볼 수 있도록 하는 이 질문을 받는 사람은 당황하기 일쑤이다. 평소에는 깊이 생각해본 적 없는 소중한 존재에 한 번 더 생각하게 만드는 질문이니까. 만약 나에게 누군가 같은 질문을 한다면 평양냉면이라고 답하겠다.
처음부터 평양냉면을 좋아했던 건 아니었다. 면발의 미덕은 쫄깃함이라고 생각했기에 이에 닿자마자 후두둑 끊어지는 면발이 참으로 어색했다. 그뿐인가. 싱겁기 그지없는 육수는 어딘지 모르게 부족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대부분의 애호가들이 거치는 이런 통과의례를 지나, 이내 평양냉면의 면발과 육수를 탐닉하게 되었다. 과하게 쫄깃거려 어떤 때는 부담스러운 함흥냉면의 면발과 달리 훨씬 부드럽고 입에 달라붙는다. 싱겁기만 하던 육수를 최후의 한 방울까지 찾아서 그릇을 붙잡고 기울인다.
평양냉면 잘한다고 소문난 가게들을 여러군데 가봤지만, 가장 좋아하는 곳은 봉피양이다. 맛도 훌륭하고 냉기를 온 몸으로 받아내고 있는 묵직한 놋그릇도 좋다. 나만 좋아하는 건 아니다. 짠돌이로 소문난 아버지도 한그릇에 14000원 정도 하는 비싸다면 비싼 봉피양 냉면을 좋아라하신다. 거기를 갈 때면 한 그릇 뚝딱 비우시고는, 여기 냉면은 이 가격 내고 먹을만하다며 흡족한 표정을 지으신다.
함경도가 고향인 할머니께서 말씀하시길 원래 냉면은 겨울에 먹는 음식이라고 한다. 그 추운 겨울날, 따뜻한 방 안에서 차가운 냉면 한 그릇 비워내면 그렇게 기분이 좋을 수 없다고. 하기야 그 시절에 차가운 음식을 만들려면 겨울철 찬 공기를 이용하는 방법 말고는 뾰족한 수가 없겠지 싶었지만 들으면서 신기했다. 말 그대로 이한치한이 아닌가.
입에 침이 고인다. 점심에 먹었는데 또 먹고 싶다. 스피노자는 내일이 세상의 마지막 날이라면 사과나무 한 그루를 심겠다고 했다. 그런 허세는 싫다. 그냥 먹고 싶은 거 먹고 이 세상을 뜨겠다. 내일이 세상의 마지막 날이라면 봉피양에 들려 평양냉면 한 그릇 뚝딱 해치우겠다. 세상의 종말이 조금이라도 덜 아쉬워지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