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 순위가 알려준 본심

올림픽 시즌이다. 몇 년 전만 해도 중요한 경기 일정을 표시해두고 중계를 챙겨봤었는데, 이번 올림픽은 그리 관심이 가지 않는다. 이유를 생각해봐도 뚜렷한 게 떠오르지 않는다. “나이 들어서”라는 범용적인 이유말고는 말이다.

올림픽과 관련해서 충격을 받았던 적이 있었다. 공식적으로 종합 순위라는 개념이 없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였다. 어릴 적 읽은 역사책에는 “88 서울 올림픽 종합 순위 4위”라는 대목이 뚜렷이 기억나는데도 말이다. 우리나라처럼 메달 색을 나눠서 순위를 정하는 나라가 있는가 하면, 메달 색 관계없이 총합을 기준으로 삼는 나라도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아예 순위라는 걸 언급조차 하지 않는 나라도 있다는 것도 말이다. 정말이지 역사책 저자를 찾아가고 싶었다.

이 사실을 알고 나서부터는 종합순위가 어쩌고저쩌고 하는 언론과 주변 사람들을 보면 혀를 끌끌 차곤 했다. 그들은 과정을 생각하지 않고, 결과만 바라보는 냉혈한들이었다. 4년을 참고 견디며 흘린 땀방울을 획일적인 기준으로 줄 세운다는 사실에 어떻게 그럴 수 있냐는 표정을 짓곤 했다. 속으로 생각했다. 올림픽은 결과보다도 참가에 더 큰 의의가 있다. 그 숭고함을 짓밟는 사람들과 나는 다르다. 내가 참 대견스러웠다.

그러다 메달리스트 연금 제도에 대한 내 입장과 연결시켜 생각해보게 되었다. 연금 제도는 메달 색에 따라 점수와 지급액을 다르게 책정하고 있다. 매우 합당한 제도라고 느껴졌다. 결과에 엄연한 차이가 존재한다면, 포상도 달라야 한다 생각했기 때문이다. 같은 메달이어도 1등, 2등, 3등은 분명 다른 거다.

불현듯 두 가지 생각이 연결되었다. 메달 색으로 종합순위를 매기는 사람들을 비웃지만, 그 기준에 근거한 연금 제도는 찬성하는 나. 그리고 깨달았다. 그런 종합순위에 부정적인 입장이었던 게, 결코 “메달 색에 관계없이 흘린 땀은 값지다”라는 정신에서 비롯된 게 아니라는 걸. 난 그저 “공식적”이고, “권위가 있는” 기준이 아니기에 인정할 수 없었던 거였다. 그리고 “너네가 잘 몰라서 그러는데, 올림픽 순위라는 건 말이야…”라는 지적 뽐내기도 한몫했다.

안 그런 척, 숭고한 가치를 지닌 척했지만 뼈속까지 경쟁과 순위 개념이 박혀있었다. 무슨 대단한 인격체 인양 으스대며 다른 사람을 슬몃 얕봤지만 말이다. 이번 리우 올림픽, 선수들은 자기 자신을 뛰어넘으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리고 여기 서울에서, 나는 자기 자신을 알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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