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구글은 딥러닝 기술을 적용해 번역 정확도를 높였다고 발표했다. 긴 문장을 입력하더라도 기대를 뛰어넘는 정확도를 보여준다는 게 주변 사람들의 평이다. 더욱 무서운 건 스스로 학습해나가며 점점 더 정확히 번역해낸다는 거다. 번역 기술이 발달할수록 외국어 능력이라는 건 승마나 라틴어처럼 고급스러운 취미로 변모할 것이라는 어떤 글이 떠올랐다.
흔히들 인공지능이 발달하더라도 인간의 창조적 활동 영역을 빼앗을 수는 없을 거라 말한다. 그러나 아래 그림을 살펴보면 그 또한 아리송하다. 마이크로소프트에서 인공지능에게 렘브란트 화풍을 학습시켜 만들어낸 그림이다. 전문 교육을 받은 이가 그렸다 해도 믿을만하고, 심지어 렘브란트의 작품이라고 해도 고개를 끄덕일 것 같다.
음악도 비슷하다. 스스로 소리를 분석하는 알고리즘이 2000번째 시도 끝에 만들어낸 음악도 그럴싸하다. 만약 GD나 다프트 펑크의 음악을 계속 분석하게 하면 그들보다 더 뛰어난 음악이 탄생할 수 있다. 그것도 별다른 노력 없이 버튼만 띡하고 누르면 말이다.
좀 더 생각해보니 적극적으로 몸으로 때우는 예술이라면 당분간은 인간이 더 유리할 가능성이 크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곰팡이를 물감 삼아 그린 그림, 버려진 보트를 구입해 설치하는 예술 등 하나의 재료가 아니라 여러 개의 요소를 조합해내는 창조라면 더욱 그럴 것이다. 몸을 자유자재로 움직이며 곰팡이를 배양하고, 버려진 보트를 구하러 고물상을 찾아가 협상하고 가격을 지불하는 과정은 인공지능에게 꽤나 큰 어려움일 테니까 말이다.
그리고 이런 인공지능을 만들어낼 줄 아는 사람은 두려울 게 없고, 오히려 더 풍요로운 삶을 누릴 수 있을 것이다. 2009년 대학교 마지막 학기 들었던 특강에서 하버 디 디자인대학원장은 자동으로 건물을 설계해주는 프로그램을 보여줬다. 충격적인 시연 장면을 접하고 나서 내가 물었다, 그러면 이제 디자이너라는 사람은 무엇을 해야 하냐고. 그러자 그는 이런 프로그램을 디자인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답했다.
이 글의 제목은 구글 번역기의 도움을 받았다. 언뜻 봐도 번역이 이상하다. 그렇다 아직은 얕봐도 된다. 그러나 몸을 쓰든가, 만들어내지 않는 사람이라면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