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유, 따뜻한 한 모금

밤 9시가 넘은 시간에 집에 있는데, 허기진다 싶으면 우유를 한 컵 데워마신다. 따뜻한 우유가 숙면에 도움이 된다는 글을 보고 시작된 습관이다. 실제로 내 잠에 도움되는지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꿀꺽 삼킨 우유가 온몸 구석구석에 쫙 퍼지는 느낌은 따뜻한 물을 마셨을 때와는 사뭇 다르다. 몸에 여유가 생기면서, 기운도 생긴다.

따뜻한 우유의 좋은 점은 이뿐만이 아니다. 블로그에 글을 매일 쓰겠다는 올해 결심을 지키기 위해 컴퓨터 앞에 앉았건만, 뭐를 써야 할지 감이 오지 않을 때 훌륭한 글감이 되어준다. 컵에 따라 전자레인지에 데운 우유는 윗부분이 따듯하다. 한 모금씩 넘길 때마다 점점 미지근해진 우유를 맛볼 수 있는데, 흡사 ‘고진감래’ 같은 폭탄주를 맛보는 듯한 묘한 기분을 준다.

일 년 365일 냉장고에 우유가 떨어지지 않도록 챙기는 건 어머니의 몫이지만, 정작 당신은 드시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깜빡하고 바닥을 드러내는 때면 소스라치게 놀라고 좌불안석이다. 어머니가 가장 많이 시킨 심부름이 단연코 우유 심부름이었다. 당신 자신이 아닌 가족을 생각하는 마음이 우유에 깊이 담겨 있다.

우유는 본디 따뜻한 거다. 적어도 우리 집 우유는 그렇다. 본디 따뜻한 우유를 데워마시니 내 마음 구석구석 따뜻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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