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의 생활을 바꾼다는건 참 멋진 일이다. 이전 회사에서는 누군가가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을 사용하는 그 순간(점)을 조금이나마 좋게 만들고 싶었다. 지금은 서비스를 통해 사람들의 생활(선)이 보다 긍정적으로 바꿀 수 있도록 노력하는 중이다. 이렇게 점-선-면 점차 확장하다보면 종국에는 공간에 대한 욕심이 생긴다. 사람은 늘 어딘가에 존재해야하고, 거기에는 주변을 둘러싼 공간이 있다. 좋은 공간에서라면 보다 좋은 삶을 살 수 있게 된다.
건축이라는게 이렇게 누군가의 삶을 바꾸는 일이라는걸 알게된 지는 몇년 안 되었다. 겉모습이 멋진 건물을 뚝딱뚝딱 올리는게 건축가가 하는 일이라는 좁은 인식을 갖고 있던 때도 있었다. 그 당시 즐겨보던 How I met your mother라는 미드의 주인공인 테드가 “건축가”의 멋짐에 대해 일장연설을 늘어놓을 때에도 별 감흥이 없었다. 그러다가 건축 전공하신 가까운 상사분께 건축은 흡사 철학 같다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주말에 삼청동에 있는 국립현대미술관을 다녀왔다. 젊은 건축가 프로그램이라는 전시가 열리고 있었다. 수상작은 SoA라는 건축가 그룹에서 만든 “지붕감각”. 미술관 한가운데 마당에 설치되어 있었다. 갈대로 지붕을 만들고, 그 아래서 사람들이 쉴 수 있도록 하는 공간이었다. 다른 작품들을 구경하다가 미술관이 닫힐 시간 쯤에야 그 아래로 들어갔다.
때마침 불어오는 바람에 머리 위를 뒤덮은 갈대가 살랑살랑 부딪히며 소리를 내고 있었다. 까끌까글 거리는 소리는 솔직히 마음을 평온하게 하지는 않았다. 차라리 풍경 같은 걸 달아놨으면 어떨까 싶었다. 그러나 나무 조각과 흙들이 깔린 바닥이 주는 평안하면서 촉촉한 느낌. 포근한 여성의 품 안에 누워있는 느낌. 그러고보니 갈대는 여자의 마음을 묘사하는 대표적인 소재이기도 하다.
본디 지붕은 튼튼하게 단단하게 만들어져야하는 숙명을 지닌 구조물이다.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지붕 아래 쪽의 삶을 지켜주는게 지붕이니까. 갈대 지붕은 달랐다. 오롯한 틈 사이사이로 흩뿌려지는 햇살도 아름다웠다. 특히 맞은편에 위치한 경복궁과 끝에 보이는 인왕산이 적당한 크기로 펼쳐졌다. 틈이 존재함으로서 안과 밖이 더 연결되고, 안쪽의 삶이 더 풍요로워지고 좋아졌다.
놓고 온 우산을 찾으러 뒤늦게 다시 들렀을 때, 아무도 있지 않은 “지붕감각”을 보게 되었다. 아까와는 달리 흡사 거적대기처럼 느껴졌다. 그렇게 느껴졌다 이야기하면 건축가들은 오히려 좋아할 수도 있겠다. 아래에 사람들이 누워있어야만 빛을 발하는 공간. 만드는 사람의 의도와 실제로 사용되는 행태가 완벽한 연결성을 가진다는 의미일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