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도리언 그레이의 초상

첫 회사에서 내 이메일 주소는 sh1985.lee@이었다. 이름 이니셜과 출생 연도에 당당한 조합. 아무런 거리낌 없이 정한 이 주소를 보고, 같은 부서 대리님이 한마디 했다. 젊으니까 출생 연도를 붙여도 괜찮을 텐데, 나중에 후회할 수도 있다고. 틀리지 않았다. 지금 회사의 이메일 주소에는 출생 연도를 넣지 않았다. 점점 ‘젊음’이 나와 어울리는 단어일지 자신이 없어진다.

젊고 잘생긴 도리언 그레이는 그 외모 덕분에 사람들의 관심과 환대를 얻는다. 그는 마법 같은 상황을 맞이한다. 세월이 흘러도 여전히 아름다운 젊음을 유지하고, 그의 초상화가 대신 늙어가면서 지은 죄의 흔적까지 모두 짊어지며 변해가는 것이다. 시간이 다르게 변해가는 초상화는 오히려 그를 더 자극하고 이기심을 부추겨 쾌락을 맛보게 한다. ‘젊음’에 대한 믿음과 방종은 아무도 보지 못하게 숨겨둔 초상화를 점점 추악하게 바꿔간다.

나는 기본적으로 사람의 얼굴 인상을 보고 그 사람의 성격을 유추하는 걸 경계한다. 과거 인상이 안 좋다는 이유로, 또는 인상이 좋다는 이유로 사람을 미워하거나 좋아했다가 그 사람의 진면목을 나중에야 깨달았던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잘 생기고, 예쁜 사람에 호감이 절로 가는 건 참 막기가 힘들다. 아름다운 것은 좋은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우스갯소리로 사람의 마음을 보고 싶지만 잘 보이지 않기에, 마음의 ‘창’으로서 외모를 본다는 말도 있다.

이 글을 쓰면서 몇 년 전 사진 속 내 모습을 우연히 봤던 며칠 전 기억이 떠올랐다. 별로 달라진 게 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지금 모습과 그때 모습에서 명백한 차이가 느껴졌다. 한번 스스로에게 물어본다. 그간 젊음을 잃은 건 확실하다. 하지만 내 초상화도 추악하게 변한 걸까 아닐까. 지금으로부터 몇 년이 지나고 얼마만큼의 젊음이 떠나갔을 때, 아쉬움이 남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답이 쉽사리 구해지는 질문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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