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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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랐다. 대부분의 여성들이 그랬다는 것을 몰랐다. 스스로를 성폭력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늘 경계하고, 세상에 대한 접근을 제한하고, 사전에 조심하며, 기본적으로 아주 자주 성폭력에 대해 생각한다는 것을 몰랐다. 그리고 세계 최고 선진국이라는 미국의 유명 정치인들 중에 강간을 옹호하는 헛소리를 숱하게 내뱉는 상당수의 사람들이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집에 가는 길이 무섭다고 함께 가달라는 이야기가 투정만은 아니었던 거다.

이 책의 저자는 ‘맨스플레인(mansplain: man+explain)’ 이라는 신조어 탄생에 큰 영향을 미친 사람이다. 남자들이 무턱대고 여자들에게 아는 척 설명하려 드는 현상을 가리키는데, 우리말로는 “이 오빠가 설명해줄게” 정도로 번역하자는 의견이 있다고 한다. 저자는 여성들이 사회에서 받는 불합리한 차별에 관한 사례를 모아놓았다. 그리고 한발 더 나아가 전 사회적인 담론으로 이를 확장시키는 방법에 대해 다루고 있다. 쉽게 읽히는 내용은 아니었지만, 꾸역꾸역 읽고 나니 마음이 후련하기보다 무거워진다.

평소에도 여러 가지 악조건 때문에 우리나라는 여자가 살기 힘든 곳이라는 생각을 해왔다.(그렇다고 남자가 살기 쉬운 곳은 아니다) 다른 이의 외모에 대해 전혀 아무렇지 않게 이러쿵저러쿵하고, 여성에게 불리한 성역할 관념이 강한 게 우리나라 사회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스스로는 더 신경 쓰고 조심해왔다고 자부했지만, 책을 읽고 나니 인식하지 못하던 지난 과오들이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걱정이 앞선다.

최근 영화 ‘암살’이 인기를 얻으면서, 독립운동에 몸 바쳤던 분들에 대한 관심이 늘어났다고 한다. 전지현이 열연한 안옥윤이라는 인물 같이 독립운동에 투신한 여성들이 상당수 존재하지만, 독립유공자로 인정받는 데에는 차별대우를 받고 있다는 소식을 들은 적이 있다. 사실 역사 속에서 찾아볼 수 있는 여성은 대체로 한 가지 유형으로 모아진다. 미모와 매력으로 그 시대 권력자들의 마음을 샀던 이들의 이름이 가장 많이 보인다. 이렇게 제한된 영역에서 눈에 보이지 않거나 혹은 보이는 장벽에 가로막힌 여성들의 사례를 줄여나가는 건 비단 한쪽 성의 과업이 아니라, 모두의 과업으로 존재해야한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나는 집까지 바래다주던 그런 사람은 아니었다. 하지만 두려움을 많이 느꼈을 거라는 걸 알고 나니 생각이 달라졌다. 그런 두려움을 불러일으킨 세상이 곱게 보이지는 않지만, 세상이 바뀌기 전까지 할 수 있는 건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데려다주긴 귀찮으니, 그냥 함께 사는 건 어떠냐고 물어봐야겠다. 다음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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