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 결핍된 것 같은 결혼은 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른다. 두 사람 자체와 관계보다 주변 환경이나 물질적인 요소가 부각되는 결혼은 술자리 안주로 자주 등장한다. 이런 결혼에 대해 이야기할 때면, 왠지 헛웃음이 나오거나 씁쓸함을 입안에 머금는다. 반면에 아름답고 가슴 벅차게 하는 이야기를 가진 두 사람의 결혼을 마주할 때면 입가에 저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사랑을 매개로 한 결혼이 20세기에서나 생겨난 개념이라는걸 머리는 알고 있지만, 나는 20세기에 태어난 사람이 아니던가.
그러나 시작은 사랑이 충만했으나, 어느순간 사랑이 증발해버리는 결혼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시간이 지날수록 사랑은 신뢰와 의리로 바뀐다지만, 나비가 되지 못하는 번데기처럼, 번데기인채 굳어버리는 사랑도 있다.
그렇게 되면 선택지는 크게 두가지이다. 결혼을 취소하거나, 아니면 같이 사는 번데기를 애써 외면한로 살거나. 두가지 선택지 중 하나를 고르는 기준을 아주아주 단순하게 생각해보면 결국 이것이지 않을까 싶다. 결혼 생활을 유지하는게 더 이득인지, 아니면 종식시키는게 이득인지. 불행인지 다행인지 모르겠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주변 시선을 고려하면 결혼 생활을 유지하는게 여러모로 더 낫다. 결혼 생활을 종식시키는, 공식적인 언어로 “이혼”이라고 부르는 행위는 아직까지는 피곤한 행위이다. 원치않는 꼬리표가 따라다니니까.
하지만 결혼을 안 하고 삶을 이어나가는 사람에게는 더욱 가혹하다. 하고 싶지 않아서 안 하는 것인지, 못 하고 있는 것인지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결혼은 사람이라면 무조건 해야하는 인륜지대사로 여겨지며, 중학교 때 배운 대우 관계에 의해서 인륜지대사를 겪지 않은 사람은 사람이 아닌게다.
이 책에서 다루는 결혼은 사랑이 없어야만 하는 결혼이다. 짧게는 1년, 길게는 2년 계약 기간 하에 결혼 서비스를 제공하는 회사에서 일하는 희원이라는 여자가 주인공이다. 계약 기간이 끝나면 그 사람과의 인연은 완전히 묻어버린채 새로운 다른 계약을 기다려야한다. 몇년의 근무기간이 지나면서 희원에게 남은 건 사랑에 대한 불신 뿐이다.
이 회사의 서비스를 이용하는 주요 고객들은 각자의 사정이 있다. 성적 정체성을 감추려고 결혼하는 동성애자, 이혼에 대한 사회적 대가를 경험하고 잠시 피해있으려고 하는 돌싱, 아니면 결혼 생각은 없지만 안 하면 안 될 것 같아서 결혼한 사람. 결국 자신을 가려줄 가면을 찾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결혼 생활의 본질적 가치 보다는, 부차적인 가치에 더 매달리는 사람이다.
책을 읽다보니 결혼이라는거 자체에 대해서 커다란 기대를 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든다. 사실 누구랑 결혼하냐보다는 어떻게 결혼 생활하냐가 훨씬 더 중요하지 않을까. 그런데 왜 내 생각의 범위는 결혼 생활 자체까지 뻗어나가지 않고, 누구를 만나야하는지에서 멈춰져 있는 것일까. 누구를 만나게될지 아직 명학하지 않아서 그런 것일까.
누구일지 모르는 미래의 내 배우자가 나중에 이 글을 읽는다면 이렇게 물어보겠지.
“그래서 당신은 나를 사랑해서 결혼한거야?”
“사랑하니까 결혼했고, 결혼했으니까 사랑해야지”
이렇게 대답하면 좋아할까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