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안나 카레니나

한 가지 사실에 기초해 다른 내용을 어림짐작해보는 경우가 많다. 고등학교 내내 러시아어를 배웠고, 심지어 대학교에서도 노문과 수업을 들었다고 이야기하고 나면 정체성이 덧 씌워진다. 러시아어를 한번 해보라는 주문이 쏟아지고, 러시아를 가봤거나 적어도 러시아 문학을 읽어봤을 것이라는 기대가 난무한다. 불행히도 그렇지 않았다. 고백컨데 나는 러시아 문학을 즐기지 않았다.

방금 ‘안나 카레니나’를 드디어 다 읽었다. 작년 여름부터 읽기 시작했고, 책을 빼곡히 메우고 있는 탁월성에 머리가 주뼛주뼛 서거나 가슴이 흔들렸던 걸 감안하면 굉장히 오래 걸렸다. 중간중간 다음 장을 넘길 의욕을 잃은 채, 다른 책으로 잠깐 외도했다가 다시 돌아와 등장인물 관계를 어렴풋이 떠올리며 한 장 한 장 넘겼다. 이름과 성과 ‘애칭’을 넘나들며 인물을 등장시키는 현란함에 정신을 잃은 적도 많았다. 러시아 사회와 국제 정세에 대한 이야기로 가득 찬 대목에서는 아득함을 느꼈었다. 분명 러시아어가 아닌 한국어를 읽고 있지만, 문장만 두둥실 떠다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과 평생 함께 하고 싶다. 사람 심리를 이토록 섬세하고 정밀하게 들춰내고, 변화하는 모습까지 보여주는 책은 처음이었다. 한국어 문장을 읽으면서 탄성이 터져 나오는데, 러시아어 원문은 어떤 느낌일지도 궁금하다. 행복한 다른 인생을 꿈꿨지만, 카레니나(카레닌 가의 사람)로 남을 수밖에 없던 안나. 그녀의 처절한 죽음이 가슴 시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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