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장에 꼽아만 놔도 기분이 좋아지는 책은 크게 두 종류가 있다. 지적 허영심, 그러니까 내가 바로 저 책을 읽는 사람이야 라고 뽐낼 수 있는 책이 하나. 그리고 보기에 예쁜 책. 모노클은 이 두 가지를 동시에 만족시키는 잡지이다.
모노클을 처음 알게 된 건 몇 년 전 편집인인 타일러 브륄레의 인터뷰를 보고 나서이다. 한창 “있어빌리티”에 몰두하던 시절, 전 세계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패션 등을 눈을 확 잡아끄는 세련된 디자인에 끌렸다. 영어 공부를 핑계로 몇 번 구매했지만, 당시 내 영어 실력으로 소화하기에 쉽지 않았다. 그러다가 이내 관심이 시들해졌다.
모노클이 다시 떠오른 건 몇 주 전이었다. 대학교 때부터 알던 동생이 “형은 학교 다닐 때 최신 트렌드도 열심히 찾아보고 그랬잖아”라고 말한 게 계기였다. 요즘의 내 모습은 전혀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주로 익숙한 것만 하고, 이미 짜 놓은 잣대를 가지고 세상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래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에 독서모임을 알아봤고, 모노클을 읽는 모임을 신청했다. 그리고 읽게 된 첫 번째 책은 모노클 잡지가 아니라, 모노클을 연구한 잡지 매거진 B이다.
모노클의 특징이라면 월간지 주제에 굉장히 정성스럽게 아름답게 만들어졌다는 점이다. 모두가 종이 잡지는 사양산업이라고 외치고 비용절감, 디지털화가 해결책으로 검토되는 상황에서 오히려 콘텐츠에 더 투자하고, 종이와 디자인 품질을 높여 잡지 자체의 매력을 높이는 접근을 택했다. 2만 원도 안 되는 잡지가 액세서리, 사치품이 된 것이다.
(110쪽)
타일러 브륄레는 각종 인터뷰에서 “종이 잡지를 읽지 않는다면 당신이 뭘 보는지 남이 알 수 없다”라는 말을 자주 했다. 내가 쓰고 경험하는 것을 통해 상대방에게 나라는 사람을 어필하는 것 역시 사치품 장신구의 주된 특징이다.
타일러는 좋은 아이디어나 심지어 글을 잘 팔리게 만드는 게 저널리스트의 기본 자질이라고 강조했다. 예전에 읽었던 <파는 것이 인간이다>가 떠올랐다. 많은 사람들이 “세일즈”라는 단어는 강요하고, 끈질기고, 속이는 이미지랑 연결시킨다. 하지만 우리의 일상과 일을 찬찬히 살펴보면 세일즈의 연속이다. 산책 나간 김에 마트에서 계란을 사 와 달라고 가족에게 부탁하거나, 다른 부서 사람에게 프로젝트 내용을 검토해달라고 하는 것이 세일즈가 아니면 무엇이겠는가.
(129쪽)
제 관점은 항상 같습니다. 좋은 저널리스트는 좋은 세일즈맨이라는 거죠. 당신의 이야기를 팔 줄 모른다는 건 마치 사진가가 사람들에게 자신의 사진을 팔 줄 모르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사진이 아무리 훌륭해도 자신이 무엇을 하는지를 표현할 수 없고, 사람들을 찾아가고 전화를 하면서 그들이 왜 당신의 작업을 봐야 하는지 설득하지 못한다면 아무 소용이 없는 거예요.
매달 한 브랜드를 정해서 심도 있게 살펴보는 매거진 B는 모노클과 굉장히 비슷하다. 읽고 버리지 않고 계속 간직할 수 있는 잡지를 만들겠다는 지향점과 디자인에 대한 엄격함이 닮았다. 또한 읽는 사람의 정체성을 많이 드러낸다는 점에서도 그렇다. 저 브랜드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이러한 사람일 거다 라는 합리적인 추정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 책은 존경하는 인물의 전기를 쓴 작가의 수필 같은 느낌이 든다. 앞으로 모임에서 진짜 모노클 잡지를 풍성하게 읽을 수 있는 배경지식을 쌓은 것 같아서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