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보관물: 짧은생각

오래된 집의 새로움

코로나 사태가 시작되고 재택근무를 시작하면서 우리집의 새로운 모습을 발견하고 있다. 20년 가까이 살고 있는 집이지만 그동안은 알 수 없었던 모습이다.

그중 하나는 낮에 새소리가 참 선명하다는거다. 아파트 2층이다보니 내 방 창분 앞에는 나무가 여러그루 있다. 창문을 열고 있으면, 새들이 나무를 안식처 삼아 지저귀는게 귀에 들어온다.

미세먼지가 없는 시간이 많아진 요즘 창문을 열고 있는 경우가 많은데, 지금도 새소리가 참 정겹다. 듣고 있자면 마음만이라도 산책을 하고 있는 기분이다.

20년이나 머물던 공간에서도 놓치고 있던 새로움은 존재한다. 이 소중한 순간, 공간들을 조금 더 자세히 들여다봐야겠다.

생일을 핑계로 목소리나 들읍시다

사람마다 선호하는 연락 방식은 제각각이다. 나는 전화 통화보다는 카톡으로 연락하는걸 더 좋아한다. 여자 친구가 아닌 이상에야 전화를 먼저 건 적은 거의 없다. 이유를 딱 꼬집어 이야기하기는 힘들지만 말이다. 친구에게 먼저 전화를 거는 경우는 일 년에 몇 번 손에 꼽을 정도이다.

오늘은 조금 다르게 해 봤다. 친한 친구가 생일을 맞은 오늘, 아침에 카톡으로 축하한다는 인사를 전했다. 그러다 저녁때가 되자 왠지 모르게 전화를 걸고 싶었다. 친구에게 직접 생일 축하한다는 이야기를 전하고 싶었다.

망설이다가 전화를 걸었다. 다른 사람들과 술자리를 갖고 있던 친구의 목소리를 들으니 뭔가 기분이 좋다. 많은 사람들이 알듯이 남자들끼리는 친하면 친할수록 막대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마음이 따뜻해지는 말을 선뜻 꺼내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용기를 내어서, 겨우 조금 둘러대며 생일이니까 너무 많이 마시지 말라고 이야기했다.

내색은 안 했지만 친구가 속으로 놀랐을 거라고 짐작이 된다. 평소에 전화라고는 거의 안 하던 녀석이 생일 축하 전화라니 말이다. 전화를 끊고서 기분이 좋아졌다. 친구가 잘 지내고 있는 것 같다는 느낌과 대학생 때 만나서 어느덧 10년이 넘는 시간을 함께 보냈다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그래서 한 가지 계획을 세웠다. 앞으로는 카톡으로 생일 축하 인사를 보내는 대신에 전화를 하려고 한다. 사실 카톡 생일 축하 인사도 웬만큼 가까운 사람이 아니면 보내지도 않는다. 이제부터는 이 사람들에게 전화로 축하의 마음을 전하련다. 설마 수신 거부하는 사람은 없겠지.

연속 글쓰기 기록이 깨졌다

매일 글쓰기를 실천하고 있었다. 아침 일찍 일어나는데 성공하면 일어나서 거의 맨처음 하는 일이 글쓰기였다. 늦게 일어나는 날이면 폰으로 짧고 엉성한 글이라도 쓰면서 약속을 지키고 있었다.

아뿔싸 어제는 글쓰기를 깜빡했다. 할일 목록에 적어놓고도, 금요일 밤이라는 환희에 망각해버렸다. 까맣게 잊고 있다가 오늘 아침에서야 깨달았다.

한번 흐름이 깨지면 어떻게든 다시 돌아가는게 중요하다. 상실감과 허탈함을 핑계로 모르쇠하려고 했던 오늘, 밤 9시가 넘어서야 마음을 잡고 글을 올린다.

오늘부터 다시 1일이다.

잔잔한 호수 같은 마음

돌은 던져도 이내 잔잔해지는 호수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 예상치못한 일이나 마음을 갉아먹는 안 좋은 일이 생겨도 언제그랬냐는듯 털어버리는 그런 사람 말이다. 좋은 일이나 흥분되는 소식에도 기분좋음은 간직한채 이내 평온해지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그런 사람이 되기위해 여러가지 노력을 기울이지만 그건 참 쉽지 않다. 주체할 수 없이 흔들리는 마음을 바라보고 있자니 몸도 함께 흔들리는 기분이다.

그래도 별 뾰족한 수가 없다. 잔잔한 호수 같은 마음을 연습하는 수밖에.

산책의 힘

재택근무하는 날이면 저녁 먹고 산책 다녀오는게 일상이 되었다. 저녁 먹은걸 소화 시키고, 비깥 공기를 쐬는 것도 있지만, 복잡한 머리 속이 조금 정리되기도한다.

오늘 산책은 더더욱 좋았다. 아직 완전한 어둠이 내리기 전의 풍경과 어둠이 짙게 깔림 풍경을 비교해볼 수 있었다. 게다가 덥지도 춥지도 않아 기온도 적당했고, 특히 공기도 매우 깨끗했다.

걸으면서 고민거리들에 대해 생각하기도 했지만, 가능하면 한걸음 한걸음에 정신을 쏟으며 걷기 명상을 실천했다. 한발한발 내 뜻대로 온전히 걸을 수 있다는건 참 행복한 일이다.

기분이 한결 나아졌다. 이제 다시 기운을 내야겠다.

잠 못 이루는 밤

이상하게 잠에 쉽사리 들 수 없었던 어제. 불현듯 찾아온 생각. 과연 잘 살고 있는 것일까. 쉽사리 답할 수 없었다.

한해 한해 지나가면서 나를 수식하는 나이라는 숫자는 무게를 더해간다. 예전처럼 몸이 가뿐하지 않을 때, 얼굴에 생긴 주름을 발견할 때, 시간이 많이 흘렀다는걸 깨닫는다.

나이는 늘어가지만 지혜는 그만큼 늘지 않았고, 더 많은 사람을 알게 되었지만 정작 만나는 사람은 줄어든 나라는 사람.

과연 잘 살고 있는걸까. 쉽사리 답할 수 없다.

친구의 결혼식을 가다

친한 대학교 친구의 결혼식이 있는 날이었다. 며칠 전 이야기를 나눠봤을 때, 거의 해탈한 느낌이었다. 코로나 사태가 잠잠해지는가 싶더니 상황이 바뀌어서 사람들이 얼마 올지 전혀 모르겠다고 했다. 게다가 야외 결혼식이어서 날씨마저 변수였다. 친구에게 준비마저 잘하라고 덕담하고서 일기예보를 찾아보니 오늘은 하루 종일 비가 예정되어 있었다. 이런.

아니나 다를까 점심때까지 비가 왔다. 그러다가 하늘이 저버리지 않았는지 비가 멈추고 화창해지기 시작했다. 결혼식 시간인 5시 즈음이 되자 해도 꽤나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온도는 적당했고 비가 선물해준 촉촉함으로 결혼식장의 나무들은 싱그러운 내음을 선사했다.

대부분의 하객이 마스크를 쓰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정말 오랜만에 보는 친구들끼리는 얼굴을 알아보기가 쉽지 않았다. 누군가가 인사하길래 봤는데 누구였더라 하며 정적이 몇 초간 흐르는 민망한 상황이 이어졌다. 그래도 삼삼오오 모여서 수다를 떨기 시작했다.

적어도 내 친구들은 결혼식에는 별 관심이 없어 보였다. 뒤편에 모여서 근황도 이야기하고 고민도 이야기하다 보니 어느새 축가를 부르고 있었다. 대학교 친구들끼리는 대학생 때 놀던 것처럼 대한다. 어처구니없는 수준의 짓궂은 농담과 30대 중반의 연륜이 느껴지는 말들이 오고 갔다.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마스크를 벗고 밥 먹기는 싫어서 30분 정도 식을 보다가 돌아가야지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비슷한 계획을 갖고 있던 친구의 차를 얻어 탄 지하철역으로 향했다. 작년 말에 보고 못 본 친구와 좀 더 깊은 근황을 공유하고, 조만간 제대로 한번 보자는 약속을 남긴 채 헤어졌다.

코로나 사태 이후로 처음으로 많은 사람들이 있는 모임에서 보낸 시간이었다. 이 사태가 계속된다면 어떻게 사람들을 만나야 할지 많은 고민을 해보게 된다. 그래도 소중한 사람들과는 만나고 지내야 할 테니 말이다.

지하철 희로애락

출퇴근길 지하철에서 가장 중요한건 자리에 앉는 것이다. 발 디딜 틈도 없이 꽉 찬 지하철이라면 일단 올라타는 것이 중요하기에 논외로 하자. 듬성듬성 공간이 있지만 앉을 자리는 없는 경우에 대한 이야기이다.

이 경우 빨리 내릴 것처럼 보이는 사람 앞에 서는게 중요하다. 그 사람의 움직임을 주시해야한다. 그렇다고 주변 상황을 살펴보는걸 게을리할 수는 없다. 뒷편에 언제 자리가 날지 모르기 때문이다.

치열한 눈치 싸움이 펼쳐진다. 지하철 경력이 오래되었다면 각자 나름의 가설을 갖고 있다. “금융권 종사자인 것 같으니 여의도에서 내릴거야”, “대학생인 것 같으니 영등포구청역에서 내릴거야” 등 말이다. 하지만 가설이 늘 맞는건 아니다. 믿었던 도끼에 발등 찍힌채 출근길 내내 서 가는 경우도 있다.

앞 사람이 예상처럼 내리지 않으면 마음이 초조해진다. 간과했던 뒷 사람이 먼저 내리면 아쉬움이 몰려든다. 그러다가 자리가 나서 앉으면 다시 기분이 좋아진다. 그렇다. 지하철에는 희로애락이 있다.

퇴사 소식을 듣는다는 것

회사에서 알고 지내던 사람의 퇴사 소식을 듣는건 늘 슬픈 일이다. 특히 힘든 프로젝트를 같이 하면서 “저 분 괜찮네” 생각했던 사람이 나가는 경우는 더욱 그렇다.

어제도 누군가가 퇴사 소식을 전했다. 어제가 마지막 출근일이라고 말이다. 사실 낌새를 느끼고는 있었지만, 물어보지는 못하고 있었다. 게다가 소문에 매우 늦는 사람이라서 당사자에게 직접 듣지 않는한 심지어 퇴사 후 아는 경우도 있다.

왜 이제서야 말해주는걸까, 조금 더 일찍 말해줬다면 커피라도 한잔했을텐데라는 아쉬움이 몰려온다.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재택근무하는 사람이 대부분이라 그것도 쉽지 않았을거라는게 더 아쉽다.

퇴사한 이의 행복을 빈다. 천년만년 다닐 수는 없는 이 회사. 그동안 고생했고, 안 좋은 기억은 다 잊어버리고 좋은 기억만 간직하길. 언젠가는 다시 같이 일할 수도 있겠지요.

어쩌면 지금이 한국의 최전성기

나는 한국을 굉장히 좋아한다. 다음 생애에도 한국에서 태어나고 싶고 여기를 떠나고 싶은 생각이 거의 없다. 물론 모든 면을 좋아하는 건 아니다. 나이 한 살 차이에도 서열을 매기는 문화나 굉장히 경쟁적인 분위기에 몸서리칠 때도 있다. 그래도 좋아하는 거에는 변함이 없다.

몇 년 전부터 생각했고, 최근에서야 확신을 갖고 이야기하는 이론이 하나 있다. 어쩌면 지금이 한국 역사상 최전성기라는 거다. 몇 가지 이유가 있다.

  1. 경제규모와 군사력 등 하드파워가 강하다. 2019년 기준 총 GDP가 세계 12위, 군사력 순위는 7위이다. 초강대국 사이에 둘러싸여서 그렇지, 세계적인 관점에서 보면 아주 상위권 국가이다.
  2. 5100만 명 인구는 적은 숫자가 아니다. 세계 26위 수준이다. 심지어 5천만 명 이상 인구 국가 중 1인당 평균 GDP가 3만 달러가 넘는 국가는 7개밖에 없고, 한국은 그중 하나이다.
  3. 문화적 영향력도 강해졌다. BTS와 K pop의 성공은 ‘국뽕’을 감안해서 보더라도 충분히 의미 있는 수준이다. 게다가 영화 ‘기생충’의 성공도 강해진 영향력을 증명하고 있다.

지금이 최전성기라는 건 앞으로 내려갈 일만 남았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이집트, 인도네시아 등 인구가 많은 저개발 국가들이 경제 성장할수록 경제규모는 밀릴 것이다. 그리고 올해부터 인구가 감소할 예정이다. 주변을 봐도 결혼도 안 하고 애도 갖지 않는다. 문화적 영향력은 위 두 개보다는 더 길게 이어질 수 있겠지만 더 강해지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최전성기를 두 눈으로 볼 수 있다는 건 행복이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수십 년이 지난 후, 과거의 영광을 회상하면 서글플 것 같기도 하다. ‘화무십일홍’이겠지만, 계속 한국을 좋아하면서, 자랑스러워하는 사람으로 남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