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보관물: 짧은생각

2019년 연말결산

출처: 뉴스픽

기억에 남는 일 TOP 3

  • 사마귀
    • 봄 무렵부터 팔에 이전에는 볼 수 없던 조그만 물집들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급기야는 팔을 넘어 몸통 전체와 목까지 퍼졌는데, 병원을 가보니 편평사마귀라고 했다. 대개는 자연치유되는 질환이고 마음이 급하다면 레이저로 없애면 되는데, 온 몸에 퍼져있다보니 레이저도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의사 선생님이 회심의 치료범으로 소화제를 고용량으로 장기복용 시켰는데, 다행히 6달 가량 약을 먹고나서 깨끗이 사라졌다.
  • 동료의 퇴사
    • 작년 말부터 프로젝트를 함께 담당했던 동료들이 하나둘씩 퇴사했다. 급기야는 몇개월째 골방에서 같이 지냈던 맷 마저 퇴사하겠다는 의사를 밝히며 나를 슬픔으로 몰아갔다. 이전에 진행하던 프로젝트가 좋은 성과를 내지 못하면서 자신감을 잃었던 내게, 격려와 좋은 충고를 많이 해줬던 친구가 바로 맷이었기에 정말 슬펐었다.
  • 임종체험
    • 유서를 쓰고, 수의도 입고 관에 들어가보는 임종체험을 해봤다. 이 세상을 떠난다는 생각이 몰려오자 내 인생에서 중요한게 무엇이고, 무엇을 원하는지를 더 명확하게 고민해보는 기회가 되었다. 삶의 자세를 가다듬고 다시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하는 좋은 기회였다.

기억에 남는 지름 TOP 3

  • 후디스 그릭요거트
    • 탄수화물을 제한하면서 균형잡힌 점심 식사를 고민하던 내게 한줄기 빛과 같았던 제품. 귀리 등 견과류를 넣어서 먹으면 물리지 않고 한통을 잘 먹을 수 있고, 특유의 꾸덕꾸덕한 식감도 내게는 딱 알맞았다
  • 실내 스핀바이크
    • 아침 운동으로 달리기와 수영을 시도했던 시간을 뒤로하고, 조금 더 접근성이 높은 운동을 고민하던 중 발견한 제품. 보통의 실내자전거와는 달리 실제 자전거를 타는 느낌이 나서 지루하지 않게 꾸준히 운동할 수 있었다. 건강을 챙겨준 보물
  • 제로이드 인텐시브 크림 엠디
    • 겨울이 되면서 얼굴이 미칠 것처럼 건조해 고생하던 내게 피부과에서 처방해준 크림. 실비보험 적용받으면 가격 부담이 없고, 보습력과 흡수력이 정말 최고! 여름에도 이 제품을 얇게 발라야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

기억에 남는 책 TOP 3

  • 약자를 위한 현실주의
    • 우리나라 역사를 되짚었을 때, 약자가 활용할 수 있는 교훈 등을 잘 정리. 역사를 이렇게 배웠다면 참 좋았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들만큼 기대 이상으로 좋았던 책
  • 아주 작은 습관의 힘
    • 습관을 두개를 조합하고 근본적인 속성을 건드리는 방법을 쓴다는 점에서 매우 실용적
  • 코끼리를 춤추게 하라
    • 드디어 읽어본 경영 고전. 만약 어떤 회사의 문제점을 고치기위해 투입된다면 교과서로 삼아야겠다.

2019년에 읽은 책 (총 60권, 시간순)

  • Altered Traits – 4점
  • 바깥은 여름 – 3점
  • 한글자 중국: 중국의 탄생 – 4점
  • 한글자 중국: 중국의 확장 – 3점
  • The Headspace Guide To Meditation and Mindfulness – 4점
  •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개의 죽음 – 3점
  • 내 아이를 위한 감정코칭 – 3점
  • 3층 서기실의 암호 – 3점
  • AI Superpowers – 4점
  • 상어와 헤엄치기 – 3점
  • 오사카는 기꺼이 서서 마신다 – 4점
  • 비트코인현상 블록체인 2.0 – 3점
  • 오래된 것들은 다 아름답다 – 3점
  • 슬럼프 심리학 – 4점
  • Folding Beijing – 3점
  • 소비의 역사 – 3점
  • 인스파이어드 – 3점
  • 죽여 마땅한 사람들 – 3점
  • 뜻으로 읽는 한국어 사전 – 3점
  • 한국전쟁 – 3점
  • 아몬드 – 4점
  • 초한지 – 4점
  • 마인드셋 – 3점
  • 캐즘 마케팅 – 4점
  • 퇴적공간 – 3점
  • 인구전쟁 2045 – 3점
  • 텅빈 지구 – 3점
  • 글로벌 고령화 위기인가 기회인가 – 3점
  • 더 라스트 걸 – 4점
  • 배드 블러드 – 4점
  • 나를 보라, 있는 그대로 – 4점
  • 댄 애리얼리의 부의 감각 – 4점
  • 리딩 – 1점
  • 약자를 위한 현실주의 – 5점
  • 포지셔닝 – 5점
  • 병자호란, 홍타이지의 전쟁 – 4점
  • 아주 작은 습관의 힘 – 5점
  • 하우스와이프 2.0 – 2점
  • 가만한 나날 – 3점
  • 습관의 힘 – 3점
  • The Wenger Revolution – 4점
  • 혼자 이기지마라 – 3점
  • 익스트림 티밍 – 3점
  • 채공녀 강주룡 – 4점
  • 말이 칼이 될 때 – 2점
  • 인생이 빛나는 정리의 마법 – 3점
  • 팍스, 가장 자유로운 결혼 – 3점
  • 트렌드코리아 2020 – 3점
  • 코끼리를 춤추게 하라 – 5점
  • 팩트풀니스 – 4점
  • 원 페이지 프로포절 – 2점
  • 표백 – 3점
  • 디지털 미니멀리즘 – 3점
  • 에센셜리즘 – 3점
  • 오늘부터 디제잉 – 4점
  • 이지 디제잉 – 3점
  • 버려지는 디자인, 통과되는 디자인: 편집디자인 – 3점
  • 아틀란티스 중앙유라시아사 – 3점
  • 끝이 있어야 시작도 있다 – 3점
  • 언제 할 것인가 – 3점

2018년 영화/문화생활

  • 그린북 – 4.5점
  • 사바사 – 4점
  • 어스 – 0.5점
  • 어벤져스: 엔드게임 – 3점
  • 논 픽션 – 1.5점
  • 기생충 – 4.5점
  • 조커 – 4.5점
  • 메기 – 1.0점
  • 토이 스토리 – 4.5점
  • 어메이징 그레이스 – 0.5점
  • 뮤지컬 영웅
  • 서울시향 마르쿠스 슈텐츠의 합창 교향곡

하루하루 (Day by day)

나는 노래를 들을 때 가사를 잘 못 알아듣는 편이다. 발성과 발음이 정확한 윤종신 같은 가수의 노래면 그나마 괜찮지만, GD처럼 발음이 부정확한 가수의 노래는 정말 하나도 이해 못한다. 그러다 보니 가사의 내용을 이해하고 노래를 좋아하기보다는, 노래 자체가 주는 느낌에 매료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그렇게 듣다가 한 번씩 가사를 읽거나 집중해서 들으면서 어떤 내용을 담고 있는 노래인지 깨닫게 된다.

어제 유튜브에서 ‘슈가맨’이라는 프로그램을 봤다. 지금은 활동하지 않는 가수를 초대해 노래를 듣고 근황을 이야기하는 프로그램이다. 거기에 가수 에즈원이 나왔다. 중학교 시절을 채워준 가수라 반가운 마음에 그들의 라이브 영상을 보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특히 ‘Day by day’를 반복해서 듣게 되었다. 따라 부를 수도 있을 만큼 대부분의 가사를 아는 노래였는데, 이전에는 느껴본 적 없는 떨림으로 다가왔다.

문을 두드리는 사랑에 설레면서도, 한편으로는 충분한 준비가 되지 못했으니 조금만 더 기다려달라는 가사이다. 그 이야기를 직접적으로 하지 않고, 어떻게 저렇게 감각적으로 표현하는지 부럽다. 심지어 토크 영상을 보니, 애즈원은 한국말이 서툰 재미교포들이라 가사의 상당 부분을 이해하지 못하고 느낌만 간직한 채 불렀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듣는 사람을 빠져들게 하기에 충분한 감정이 담겨있었다니 대단한 실력이다.

이렇게 울림이 있는 가사들이 내가 10대 시절 듣던 노래들의 대체적인 특징인 것 같다. 10대 시절에는 오히려 감수성이 건조했었고, 삶의 경험도 폭넓지 못했던 것 같다. 그 시절 노래들을 집중해서 듣고 있으면 그때는 미처 몰랐었던 감정이 몽글몽글 피어오른다. 그 시절의 나와 하루하루 더 멀어지고 있지만, 이런 노래가 있기에 여전히 연결되어있다.

나는 어디로부터 왔는가

나는 나 자신에 대해 생각해보는 걸 좋아한다. 했던 행동들, 했던 생각들을 떠올리고 이유를 되짚어보면서 후회하는 경우도 많고, 또는 나중에는 이렇게 해야지 라며 다짐하기도 한다. 이런 경향은 심리검사 결과에서도 뚜렷하게 나타나는데, 스스로를 회고하는 경향이 강한 사람이라는 평가를 받았었다.

누군가에게 나 자신에 대해 많이 이야기해야 하는 상황이 최근 들어 많아졌다. 이야기를 하다 보면 서로의 다른 점을 발견할 수 있고, 그러면서 내가 지금의 모습으로 성장하게 된 이유는 무엇인지, 나는 어디로부터 온 것인지 고민이 더 깊어지기 마련이다.

이런 과정 속에서 부모님께 몇 가지를 물어보기도 했다. 예를 들면 어린 시절 부모님께 몇 번 회초리로 맞은 기억이 있는데, 무슨 잘못을 했기에 맞은 건지 여쭤봤다. 지금의 모습으로 성장하는데 영향을 주지 않았을까 하는 기대를 갖고 말이다. 하지만 일일학습지를 풀지 않고 늦게까지 밖에서 놀다가 들어왔을 때 회초리를 들었다는 이야기가 지금의 나와 어떻게 연결되는지는 잘 모르겠었다. 여러 가지 과거의 경험을 수집했음에도 여전히 내가 어디로부터 왔는지는 잘 모르겠다.

이렇게 자신의 기원을 찾는 과정은 결국 어디로 향해가고 싶은지를 고민하는데 밑거름이 된다. 사실 내가 고민하는 내용, 어떻게 살고 싶은지에 대해서는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계속 고민하고 있다. 누군가는 이미 답을 알고 있는 문제일 수도 있지만, 나에게는 여전히 모호한 답뿐이다. 그리고 그렇게 모호한 채로 2020년이 코앞에 와있다. 산뜻한 느낌을 주는 2020이라는 숫자의 해라니! 그 해에 나는 끝내 질문에 답을 찾을 수 있을까. 그러기를 바란다.

할아버지 제사

할아버지는 1993년 갑자기 돌아가셨다. 내가 국민학교 2학년이었을 때이다. 집에 걸려온 전화를 받은 어머니가 가까스로 그 소식을 전해줬을 때, 나는 안방 침대에서 엉엉 울었었다. 9살짜리 꼬마가 사람이 죽는다는 게 무엇인지 잘 이해하고 그랬었던 건 아니고, 충격을 받은 어머니의 표정과 반응을 보며 울었던 것 같다. 그다음은 시신을 운구하던 차 안에서 뭐라 표현할 수 없는 슬픈 표정을 짓고 있던 아버지 옆에서 울었던 장면이 기억난다.

할아버지 기일을 맞아 금요일에 제사를 지냈다. 벌써 26년째 지내고 있는 제사여서 그럴까, 해가 지나면 지날수록 추모는 사라지고, 살아있는 자들의 근황을 확인하고 잡담하는 자리가 되었다. 그러면서 제사에 준비할 것들도 예전보다 훨씬 간소해졌다. 하지만 제사라는 게 누군가가 음식을 준비해 차리는 부담스러운 자리인 게 본질이 아니고, 다 같이 모여 고인을 추모하고 기억하는 자리여야 한다는 평소 생각에 비추어봤을 때, 할아버지에 대한 이야기가 오가지 않는 게 가장 마음에 들지 않았다

다 같이 모여 앉아 밥을 먹기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 지난주 할머니께 들은 이야기를 꺼냈다. 내가 태어나고 할머니가 용한 곳을 찾아 이름을 지어왔을 때, 할아버지가 외국인이 발음하기 어려운 이름이라고 하셨다 했다는 이야기를 말이다. 내가 태어난 1985년에 예순 언저리였을 할아버지가 그 사실을 알고 계셨다는 게 너무 신기했었다. 이 이야기를 기점으로 작은아버지가 비상한 기억력을 발휘해 예전에 할아버지와 있었던 이야기를 여러 가지 풀어놓았다. 그러면서 내가 전혀 몰랐던 우리 가족들의 옛날이야기와 그 당시 우리나라의 모습들에 대해서도 알 수 있었다.

돌아가신 이후부터 할아버지는 마치 영정 사진이나 묘소에 존재하는 멀찌감치 떨어진 사람처럼 느껴졌었다. 그러나 사실은 지금의 삶에도 함께하고 계셨었다. 외국인이 부자연스러운 입모양으로 발음하는 내 이름, 고등학교 때 러시아어 공부하면서 사용했던 할아버지의 러시아어 사전, 그리고 지난 금요일까지… 늘 함께하고 계심을 기억해야겠다.

임종체험 후기

출처: 머니투데이

죽음, 그것은 너무나 무서운 일이다. 적어도 나에게는 그렇다. 살만큼 살아서 커다란 미련도 남지 않은 나이가 아니라, 지금 서른 중반 나이에 죽는 건 더 무섭고 두렵다.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몇 가지가 있다. 먼저 더 많은 세상을 경험하지 못하고 떠나는 게 억울하다. 그리고 나를 아끼고 사랑해주는 가족, 친구 등 주변 사람들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줄 것만 같아 너무 싫다.

어제는 임종체험을 했다. 죽는다고 가정하고 영정 사진도 찍고, 유언장을 써보고, 수의를 입고 직접 관에 들어가서 5분 정도 시간을 지내는 프로그램이었다. 인기가 아주 많은 것 같지는 않다. 부모님께 이런 게 있다, 한번 해보시라 권유했더니 너는 참 특이한 사람이라는 반응이 오는 걸로 봐서는 말이다.

유언장을 쓰던 중이었다. 내가 세상에 남긴 흔적들이 죽고 나면 빨리 사라지겠다는 느낌이 내내 맴돌았다. 군대에서도 비슷한 느낌을 받은 적이 있었다. 나는 이렇게 단절된 군대 안에 들어와 지내는데, 바깥세상이 나 없이도 아무 문제없이 잘 돌아가는 걸 지켜보면서 많이 서글펐었다. 그 누구도 나를 기억하는 사람은 없는 것만 같았다.

영화 <코코>는 멕시코의 명절 “죽은 자들의 날”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죽은 자들이 사후세계에서 살기 위해서는 이승의 사람들이 그를 기억하고 있어야만 했다. 잊혀진 자들은 결국 사후세계에서마저도 죽고 영원히 사라지게 된다. 나는 그렇게 되고 싶지 않다. 가능한 한 오래 기억되는 사람이고 싶다.

프로그램 초반 강연에서 본 영상에는 의사의 인터뷰가 나왔다. 죽는 사람과 그 죽음을 슬퍼하는 가족의 모습을 수도 없이 본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죽음은 삶을 비추는 거울이라고. 유언장을 쓰고 관에 들어갔다 나오면서 나는 어제 가상으로 한번 죽었다. 현실의 삶에 내 흔적을 많이 남기도록 더 노력해야겠다.

나만의 특징

나는 돈, 시간 등의 자원을 허투루 낭비하지 않기 위해 다른 사람보다 더 노력한다. 그러다 보니 ‘가성비’라는 단어를 즐겨 사용한다. 물건을 살 때도, 그리고 식당을 고를 때도 늘 가성비가 좋은지를 확인한다. 예를 들면 상품평에 가성비가 좋다는 내용이 있거나, 식당이 음식의 질이나 양에 비해서 가격이 비싼지 등을 늘 확인하는 편이다. 

이런 성향을 이용해 취미로 웹사이트를 해봐야겠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가성비가 좋은 물건을 다른 사람에게 추천해주는 웹사이트 말이다. 머리 아프게 고민할 필요도 없었다. 왜냐하면 사서 쓰고 있는 물건들은 대부분 이미 가성비가 검증된 것들이기에, 그중에 하나씩 골라서 올리면 되는 것이었다. 

웹사이트 도메인을 등록하고, 개설에 필요한 작업들을 마쳤다. 어떤 물건을 먼저 소개할지 정하려고 “가성비 XX” 이런 식으로 검색어 순위를 살펴보기 시작했다. 예를 들어 “가성비 간식” 단어의 한 달 검색 횟수가 얼마 정도 되는지 확인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 과정 속에서 당황하게 된다. 대부분의 “가성비 XX” 단어의 한 달 검색 횟수는 100건 미만으로 매우 적었기 때문이다. 나처럼 가성비에 관심 가지는 사람이 많을 거라는 가설은 옳지 않은 거였다. 

한편으로는 나만의 두드러지는 특성을 확실하게 확인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래서 여전히 웹사이트는 할 생각이다. 그들이 나와 같지 않기 때문에 그들에 맞추는 게 아니라, 나의 세상에 그들을 가끔씩 초대하고 싶다.

무단횡단에 대한 변론

출처: 중앙일보

집에서 지하철역까지 걸어가는 길에는 열 걸음 남짓한 짧은 횡단보도가 있다. 출근길 바쁜 걸음을 재촉하며 횡단보도로 다가갈 때면 갈등에 빠지곤 한다. 바로 옆 초등학교로 등교하는 어린이들과 깃발을 들고 횡단보도 양옆에 늠름히 서있는 어른들을 마주치기 때문이다.

시간을 허투루 낭비하지 않기 위해서는 무단횡단도 불사해야 한다. 하지만 어린이들은 질서 정연한 모습으로 신호가 바뀌고, 깃발이 내려가길 기다리고 있다. 이들이 빤히 보는 앞에서 무단횡단을 한다는 건, 마치 미래의 주역이 될 이들에게 공공질서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 외치는 것만 같은 죄책감이 든다.

그래서 본격적으로 고민해봤다. 무단횡단은 옳은 것인지 아닌지 말이다. 먼저 무단횡단을 “보행자 신호가 빨간불인 상태에서 횡단보도를 건너는 행위”라고 정의했다. 횡단보도의 교통신호는 운전자와 보행자 두 집단이 안전하고 효율적으로 이동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해 만들어진 거라고 생각한다.

현재 신호체계는 정해진 시간마다 보행자-운전자를 교대로 통과시킨다. 얼마나 많은 차가 빠른 속도로 달리는지, 얼마나 많은 보행자가 오가는지를 전혀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만약 기술이 발달해 똑똑한 신호체계를 만든다면, 이를 종합적으로 판단해 신호를 내려줄 것이다. 그러면 차가 한대도 다니지 않을 때도 빨간 보행자 신호를 내거나, 보행자가 하나도 없을 때 차를 계속 멈추는 일이 없을 것이다.

결론적으로 무단횡단은 궁극적으로는 신호체계가 해야 할 일을 사람이 판단해서 하고 있는 셈이다. 다만 이 글을 읽고 무단횡단을 결심하는 어린이들에게 특별히 이야기하고 싶다. (과연 이 글을 읽는 어린이가 있을까마는…)

어린이들아, 아침에 초등학교 앞 횡단보도에서 보이는 삼촌이란다. 신호가 안 바뀌었는데 마구 건너가는 바로 그 삼촌. 어쩌면 이미 무법자 삼촌이라는 별명이 붙었을 수도 있겠구나. 삼촌을 따라서 건너려면 몸과 마음 모두 더 커져야한다. 그러니까 골고루 잘 먹고, 친구들하고 사이 좋게 지내고, 아침 일찍 일어나려무나.

숫자 3에 대한 헌사

출처: 펨코

몇 년 전부터 연인 관계는 아니지만 데이트하고 서로 알아가는 단계를 일컫는 ‘썸’이라는 표현이 유행했다. 요즘 어린 세대는 썸 대신 ‘삼귀다’라는 표현을 사용한다는 글을 보았다. ‘사귀다’의 사와 숫자 4가 같은 발음이라는 사실에 착안해, 4의 앞 숫자인 3을 활용한 표현이다. 아재 개그 같은 느낌이면서 재치가 느껴지기도 한다. 이때 3은 미완의 상태를 나타낸다. 공식적으로 사귀는 사이가 되기 전의 상태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숫자 3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마음에 들지 않는다. 3은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은 숫자이다. 어린 시절 운명의 가위바위보를 하고 나면 큰 목소리로 외쳤다. “야! 삼세판 해야지” 그렇다. 냉혹한 승부의 세계에서도 적당한 공정성을 의미하는 마법의 숫자이다. 그래서 야구에는 삼진아웃이라는 개념이 있다. 또한 삼발이 의자는 네발 의자에 뒤지지 않는 편안함을 선사한다. 어떤 의견을 낼 때도 세 가지 근거가 가장 이상적이라 생각한다. 한 가지, 두 가지 근거만으로는 너무 부족하고, 네 가지는 좀 많은 느낌이다.

그러다 보니 인생이 3을 닮으면 참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돈이 모자라 곤란을 겪지도 않고, 너무 많아서 오히려 삶을 갉아먹지도 않으면 좋겠다. 또한 실패와 슬픈 일, 성공과 기쁜 일 또한 부족하지도 많지도 않은 수준으로 다가오면 좋겠다. 가족과 친구들과의 관계 또한 좋은 일만 있을 수 없다는 걸 이미 알고 있기에, 안 좋은 일 역시도 적당하게 있으면 좋겠다. 이렇듯 ‘3의 인생’, 즉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는 삶이 앞에 펼쳐지면 좋겠다. 그러고 보니 삶도 삼과 발음이 비슷하구나.

하지만 내가 가장 좋아하는 숫자는 10이다. 축구에서 에이스 선수를 의미하기도 하고, 특별했던 고등학교 시절과 연관된 숫자라서

결정적 순간

뮤지컬 지킬앤하이드의 주제곡 “지금 이 순간”을 들으면 기분이 고조된다. 조승우나 홍광호가 부른 영상을 특히 좋아한다. 이 노래의 원제는 “This is the moment”인데, 한국말로 “지금이 바로 그 순간” 이다. 좀 더 강렬한 느낌이 전해진다.

누구에게나 “결정적 순간”은 찾아온다. 남몰래 좋아하던 그 사람과 잘 될 수 있었던 소풍날일 수도 있고, 주문한 피자를 비트코인으로 결제하겠다는 손님에게 면박을 주고 거절했던 몇년 전 그날일 수도 있다.

보통 그게 결정적 순간이었음을 지나고 나서야 깨닫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지금 이순간을 놓치지 말라는 촉이 온 몸을 뒤덮을 때가 있다. 시간이 지나보고니 실제로 예상이 맞았던 순간도 있고, 아닐 때도 있다. 우리 조상들은 참 현명했다. 이런 사람을 일컫어 “김치국 마신다” 라고 비유한다니 말이다.

올해 목표에 결정적인 순간이 찾아온거 같다. 이번 프로젝트를 잘 달성하면 승진할 수 있을 것만 같다. 승진을 목표로 일하지 말고, 열심히 잘 일하면 자연스레 따라올 것이라고 마음을 다잡지만, 사실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4분기에는 조금 더 시간과 관심을 들이려고 한다. 지금 이 순간을 잡아야겠다.

아, 그렇다고 지킬앤하이드처럼 되지는 않으면 좋겠다. 실제 뮤지컬 속에서는 지킬 박사가 이 노래를 부르고 나서, 추하디추한 하이드로 변신하며 실험이 실패했으니까 말이다.

아침 운동을 위한 2주간의 여정

출처: Getty Image
https://www.inc.com/lolly-daskal/how-to-form-a-new-habit-in-5-easy-steps.html

2주 전과 비교했을 때, 오늘의 나의 가장 큰 차이점은 아침에 운동을 하는지이다. 일요일인 오늘 아침에도 6시 알람 소리와 함께 일어났다. 몇가지 루틴을 거쳐 운동을 시작해 스트레칭, 철봉, 데드버그를 했고, 고정자전거를 30분 가량 탔다. 땀방울을 닦아내며 개운함과 뿌듯함을 느꼈다. 지난 2주간 꾸준히 아침 운동을 해온 스스로가 대견스러웠다.

꾸준한 운동이 가져다주는 변화에 뿌듯해하며, 성실하게 헬스장을 가거나 달리거나 요가를 한적도 있었다. 하지만 최근 몇달동안은 그렇지 못했다. 6시에 울리는 알람을 끄고서 다시 잠들기 일쑤였고, 그러다 늦게 일어나서 허겁지겁 겨우 출근하는 생활이 이어졌다. 게다가 회사에서는 늦은 야근이 이어졌다

그러다보니 몸이 신호를 보내기 시작했다. 늘 피곤한 상태였고, 면역력이 떨어져서인지 유치원생 때 겪었던 사마귀가 온 몸에 점점 퍼져나갔다. 피부과에서 받은 약이 힘을 발휘하는듯 했지만, 사마귀의 기세는 멈출줄 몰랐다. 결국 근본적으로 건강을 찾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단 방에 고정자전거를 한대 들여놨다. 꾸준히 탈 것이라며 연신 소비를 정당화했지만, 사실 큰 자신은 없었다.

그러던 중 “아주 작은 습관의 힘”이라는 책을 읽으면서 눈이 번쩍 뜨였다. 원하는 습관을 만드는 실용적인 방법을 굉장히 잘 설명한 책이었다. 그중에서도 이미 하고 있는 여러 행동을 연결해 하나의 습관 덩어리로 만드는 방법이 특히 눈길을 끌었다. 당장 적용해볼 수 있는 예시로 아침 운동이 떠올랐다. 아침에 알람 소리를 듣고도 다시 잠을 자거나, 늦게 일어나기 때문에 운동 할 시간이 사라졌었다는 점을 떠올리며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책에 소개된 방법을 충실히 따랐다. 알람을 끄고나서 다시 침대로 가지 못하도록, 몇가지 행동을 묶었다. 알람 끄기 -> 화장실 가기 -> 부엌에서 냉수 마시기 -> 간단히 선식 만들어 먹기 -> 얼음물로 족욕하기 -> 책상에서 명상하기 -> 5분 얼굴 요가하기 -> 5분 영어 쉐도잉 하기… 이런식으로 몇가지 활동을 이어붙여서 “아침 기상 후 운동 전 루틴”으로 스스로 명명했다. 이정도 활동을 하고나면 침대에 다시 누울 수 없는 상황이 된다. 특히 뭔가를 먹고 곧바로 침대에 눕지 않으려는 평소 생활 습관이 큰 도움이 되었다. 따라서 6시 40분이 될때까지 계속 깨어있었고, 소화도 어느정도 되었기 때문에 아무런 문제없이 운동을 시작할 수 있었다.

이에 만족하지 않고, 6시 알람을 듣고 문제없이 일어나는 환경을 만드려고 노력했다. 부모님과 여자친구에게 협조를 구했다. 예를들어 나는 6시간보다 적게 자면 그날 하루가 굉장히 힘든 사람이다. 그렇기에 어떻게서든 자정 전에 자야만 했고, 여자친구에게 통화를 11시 30분까지만 하자고 이야기했다. 다행히 여자친구는 11시 30분이 되면 잘 시간이라면서 먼저 통화를 끊는 등 적극적으로 도와줬다.

이런 생활을 2주동안 계속하다보니 긍정적인 변화가 느껴졌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체력이 좋아지고, 운동 중 땀을 흘리면서 스트레스도 빠져나가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일찍 일어나서 하루를 시작하다보니, 사용 가능한 시간 자체가 늘어나 좀 더 많은 것을 하면서 하루를 알차게 보낼 수 있었다. 무엇보다도 이렇게 행동을 변화시키고, 습관을 만든 것에 대한 뿌듯함과 대견함이 동기를 더욱 더 높여주었다.

2주가 지나다보니 어느정도 습관으로 자리잡았다는 느낌이 강하다. 하지만 여전히 도전과 유혹이 곳곳에 도사리고 있다. 예를들어 해외출장이나 해외여행 등으로 생활 패턴이 달라진다면 어떻게 관리할지, 그리고 무심결에 보기 시작하면 후딱 시간이 지나가는 각종 유튜브 영상들을 어떻게 조절할지 등이 문제이다. 하지만 기왕 이렇게 행동을 변화시켜가며 습관을 만든 것이니만큼 어떻게든 잘 관리해서 꾸준하게 해보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