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보관물: 짧은생각

갑자기 간다면

할머니가 하루도 빠짐없이 통화하던 친구분이 몇 주 전부터 전화를 받지 않았다고 한다. 그럼에도 매일같이 전화했던 할머니는 며칠 전 전화번호가 사라졌다는 메시지를 들으셨단다. 불길한 예감. 정확히 확인할 길은 없지만, 아마도 친구분이 돌아가셨을 거라 할머니는 짐작하고 계신다. 매일 이야기 나누던 친구의 운명을 그렇게 어림짐작으로 가늠하고 계신다.

황망하고 애절할 할머니를 생각하며 가슴이 아파왔다. 그러다 생각해보니. 초등학생 시절, 집 거실에는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내 주변 연락처가 빼곡히 적힌 수첩이 있었다. 내가 지금까지 기억하는 아버지의 친구분, 어머니의 친구분 성함은 그 시절 수첩으로 빚어진 기억이다. 늦게까지 집에 들어오지 않을 때 걱정하지 말라고 적어놓은 내 친구네 집 번호까지 해서 수첩은 비상연락망 그 자체였다.

내일 출근길 갑자기 간다면, 가버린다면 내 친구들과 주변 사람들은 그 소식을 알 수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더 이상 수첩 같은 건 없는 요즘, 소중한 그리고 가까운 사람이 누구인지 그리고 어떤 관계인지 알 수 있을까. 카카오톡 프로필을 바꿔놔야 사람들이 잘 알까, 아니면 페이스북에 그 소식을 올려야 하는 걸까. 그리고 정작 남은 사람들이 그렇게 할 수 있을까. 삶이란 참 단조롭다가도 극적이다.

혼자 핀 벚꽃

잠이 덜 깬 눈으로 베란다 쪽을 쳐다보다가 깜짝 놀랐다. 흐드러지게 핀 벚꽃을 봤기 때문이다. 벌써 벚꽃의 시기가 왔나 의아한 마음에 좀 더 자세히 살펴보니 딱 한그루에만 벚꽃이 피어있었다. 아침과 저녁까지 변화무쌍함에 사람도 혼란스러운 게 요즘 날씨인데, 너도 낚였구나 하는 측은한 마음이 들었다.

빗줄기가 점점 거세지는 오후가 되자 슬몃 그 벚꽃나무가 걱정되었다. 봄바람 휘날리며 흩날리는 벚꽃 잎을 보기도 전에 지고 말까 봐 염려되었다. 풍성한 꽃이 자리 잡았을 때도 물론 아름답지만, 꽃바람 광경 또한 빠지지 않는다. 다 떨어지고 드러난 가지의 앙상함은 마음 아프지만 말이다.

어둑어둑한 저녁. 베란다 창문을 열고 살펴보니 그림자처럼 까만 나무에는 꽃잎의 형체가 잘 눈에 띄지 않는다. 오늘 피어나자마자 물세례를 맞으면 벚꽃도 기분은 좋지 않을 거다. 시원하고 기운찬 빗소리가 변화무쌍한 날씨처럼 벚꽃을 혼란스럽게 만들겠다. 혼자 먼저 피어났지만, 이웃 형제들도 어울릴 수 있을 때까지 힘을 내길.

 

연대의식

쿠팡에서 로켓배송 상품을 주문한 다음 날이면 쿠팡맨이 문자를 보낸다. 배송 가는 중인데 물건을 어떻게 수령하고 싶은지 물어본다. 다른 택배사에서도 문자나 카톡이 오는 경우가 있다. 대개의 경우 언제쯤 배송 간다는 통보이다. 딱히 답장을 보내야겠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쿠팡맨의 문자를 받으면 꼭 답장을 보낸다. 아니, 답장을 보내고 싶어 진다. 집에 아무도 없으니 경비실에 맡겨달라거나, 집으로 곧바로 배송 부탁하면서 꼭 감사합니다 라는 말을 잊지 않으려 한다. 회사에서 일하는 중 문자를 받는 경우에는 “저도 쿠팡 다녀요. 쿠팡맨 화이팅”이라는 말을 덧붙이는 경우도 있다.

오늘도 문자가 왔다. 어제 주문한 미세먼지 마스크를 경비실에 안전하게 전달했다는 문자에 나도 쿠팡 다니고 있다고, 쿠팡맨 힘내라고 답장을 보냈다. 응원 고맙다고, 행복한 하루 보내라는 답장이 왔다.

같은 회사에 다니는 동료가 행복했으면 좋겠다. 나와 가까운 사람들이 즐거웠으면 좋겠다. 즐거운 일보다는 힘들고 괴로운 일이 더 많이 뇌리에 남는 시절일지라도, 사소한 즐거운 일에 감사하는 삶이면 좋겠다. 그래서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이 행복했으면 좋겠다.

다만 내가 즐거운 만큼보다 훨씬 더 즐거운 건 좀 질투난다. 함께 즐거웁시다 우리.

신조어, 알 수 없었던

요즘 SNS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신조어라고 신문에 소개되었다. 굉장히 직관적이면서 명쾌한 활용성을 지니고 있기에 메모해본다.

시발비용

내가 스트레스를 받아서 돈 쓴 경우. ‘스트레스받고 홧김에 치킨 시키기’, ‘평소라면 대중교통 이용했을 텐데 짜증 나서 택시 타기’ 등이 좋은 예시

멍청비용

부주의한 탓에 안 써도 되는 돈 쓴 경우. ‘미리 돈을 안 뽑아 놔서 ATM 수수료 내기’, ‘할인받을 수 있는 상품을 제값 주고 사기’ 등이 좋은 예시

쓸쓸비용

외로움을 달래려고 돈 쓴 경우. ‘혼자 밥 먹기 싫어서 친구들에게 밥 사기’ 등이 좋은 예시

SNS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는데, 왜 처음 들어보는 걸까. 인스타에서 많이 사용되는(거라고 믿고 싶은) 용어라서 그런 걸까(인스타를 하지 않는다). 아니면 이제 젊은이들 문화를 따라잡기에는 힘든 나이가 된걸가.

나만 처음 들어보는 건 아니겠지. 훗.

어머니의 영화 취향

간만에 어머니와 둘이 저녁을 먹었다. 해주신 쭈꾸미볶음 먹고나서, 보답으로 오렌지 까드리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우리 가족 4명을 살펴보면, 아버지-동생, 어머니-나 이렇게 성격이 비슷하다. 작년 미국여행에서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었다. 그래서인지 어머니와 대화하는건 늘 편하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일을 마저 처리하러 방으로 들어왔다.

어머니는 TV로 영화를 즐겨보신다. 돈 아끼려고 유료영화는 가급적 피하고, 무료영화 중에 괜찮아보이는걸 어떻게든 찾으려 애쓴다. 왓챠플레이 결제해서, TV 큰 화면으로 볼 수 있게 크롬캐스트도 설치했더니 처음 며칠간은 열심히 보시다가 요즘은 뜸해졌다. 어머니에게 왓챠플레이는 왜 안 사용하시냐고 물어보니, 겸연쩍게 사용법을 까먹었다 하신다. 그러면 아들한테 이야기나 하시지.

물 뜨러 나가는데 어머니가 갑자기 부르신다.

어머니: 클레멘타인 이라는 영화 아니?

나: 알지. 그거 엄청 졸작이라고 평가 받는 영화야 (*한 네티즌 왈: 52억짜리 재앙이자 한국 영화계 희대의 괴작이자 졸작)

어머니: 엥? 네이버 평점 보니까 사람들 평이 굉장히 좋던데?

나: …그거 사람들이 골탕 먹이려고 일부러 그렇게 한거야. “너도 한번 봐봐라” 하는 심정으로 (관련기사)

어머니: 아 진짜???

나: 응…

울 어무이 어이할꼬.

굳럭!

한국에 아이폰이 출시된 그다음 해 2월, 연수 마지막 날 무선사업부 배치 통지를 받았다. 1 지망 부서는 아니었기에, 약간은 실망했었다. 세부 부서까지 정해지고, 배정된 자리에 앉아 시키는 일 열심히 하고, 어리버리한 모습 보여주며 2개월 정도 있다가 구미로 제조현장 체험을 가게 되었다. 3주간 머무는 동안 했던 일 중 하나는 막 생산되고 있던 폰에 최신 소프트웨어를 설치하거나, 보호필름을 붙이는 일이었다. 나와 동기들의 손을 거친 제품은 신화의 시작이었다. 갤럭시 S 시리즈.

퇴사한 지 어느덧 2년이 넘었지만, 여전히 나는 갤럭시, 그리고 삼성전자를 좋아하고 응원한다. 퇴사를 결심했던 여러 가지 이유 중 하나는 회사의 성장세가 정점을 찍었고, 앞으로는 내려갈 일만 남았을 거라는 개인적인 전망이었다. 역사상 가장 높은 시가총액의 경쟁자 애플, 무섭게 따라붙는 중국기업, 그리고 무엇보다도 더 이상 큰 변화가 있기 힘든 산업 구조 자체를 살펴보면 더 이상 좋아질 이유는 없어 보였다. 위기는 바로 앞에 있다 생각했다.

하지만 배터리가 폭발해 위기에 처할 것이라고 생각해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굉장히 빡빡한 품질관리 기준을 충족시키기 위해 애를 쓰는 회사였기에 상상도 할 수 없었다. 실물을 만져보면서 감탄사가 절로 나왔던 노트7은 악몽 같은 제품으로 남았다. 그 이후 사용 중인 S7이 폭발하지는 않을까 염려스러운 마음이 불쑥 튀어 오를 때면, 노트7이 엄청난 타격을 준 게 맞는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잠시 후 새벽, 갤럭시 S8 공개행사가 열린다. 이미 제품 영상, 사진, 사양, 관련 행사할 거 없이 전부 유출된지라 깜짝 놀랄만한 요소는 없을 거다. 하지만 S8는 갤럭시 시리즈의 운명을 짊어지고 있다. 판매야 많이 될 거라 믿지만, 노트7과 비슷한 제품 안전 문제가 발생한다면 돌이킬 수 없는 상황으로 치달을 수밖에 없다. 이런 압박감 속에서 몇 개월을 노력했을 이전 동료들에게 큰 박수를 보내고 싶다. 할 수 있는 게 많지 않음에도, 많이 해야 한다는 압박에 시달렸을 거라 짐작된다.

갤럭시 S8을 응원한다. 그리고 삼성전자를 응원하다. 소중한 국민연금을 망가뜨리고, 추악한 면모를 드러낸 경영진은 싫고 참담하기 짝이 없다. 그렇지만 커리어의 시작점, 훌륭하고 좋은 사람들과 인연을 맺어줬던 그곳, 20대 젊은 날의 절반을 보냈던 그곳을 즐겁게 추억한다. 그래서 뜨겁게 행운을 빈다.

총기

이미 퇴근 시간이 지난 사무실. 함께 일하는 동료가 말했다. 나랑 일하면서 어떻게 사람이 저리도 총명할 수 있을까 감탄했다고.

으쓱했던 어깨가 다 내려오기도 전, 덧붙였다.

그런데 요즘은 총기를 잃은 거 같다고.

하아

첫 월급 제대로 쓰기

2주 전부터 옆자리에 신입사원이 앉는다. 석사 병특으로 들어온 개발자 친구이다. 올해 26살, 내가 어리바리하게 회사 생활을 시작했던 바로 그 나이. 그리고 사는 동네 역시도 어릴 적 내가 살던 동네와 가까운 곳이었다. 그래서인지 더 정감이 가길래 잘 해주고 있었다. 퇴근 시간 2분 전쯤 얼른 퇴근하라고 집에 보내기도 하고, 다른 팀에서 얻어온 먹을 걸 나눠주기도 하고 말이다.

며칠 전이 월급날이었다. 이 친구는 상당히 들떠있었다. 회사 다니면서 받는 첫 월급, 얼마나 감개무량할까. 내가 느꼈던 기분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들떠있는 그 친구를 붙잡고 이야기했다. 첫 월급은 제대로 써야 한다는 걸 힘주어 강조했다. 부모님께 맛있는 거 사드리고, 선물도 드리라고. 마지막에 살짝 덧붙였다. 같은 팀 사람들에게 맛있는 걸 사는 게 전통이라는 이야기를. 옆에 있던 동료들이 웃으면서 고개를 저었다.

한창 일하고 있던 오후, 어디론가 사라졌던 신입사원이 양손 가득 봉지를 들고 나타났다. 봉지에서 별다방 커피를 열 잔 정도 꺼내더니 말했다. 첫 월급 받은 기념으로 사 왔다고. 순간 정말 미안하고 민망한 마음에 얼굴이 빨개져 장난이었는데 정말 사 오면 어떡하냐는 말을 연발했다. 장난으로 말하는 거라는 건 알았지만 그래도 사 오고 싶었다는 그 친구가 나눠준 커피의 맛은 기분 좋은 맛이었다. 옆에 있던 동료들은 입사 이래 내가 한 일 중 가장 잘한 일이라며 농을 친다. 기분 좋게 커피를 마시고 있는데, 뭔가 퍼뜩 떠오른 동료의 한마디 외침.

“그런데 그때 승환 님은 안 샀잖아요”

역시 첫 월급을 제대로 써야 한다. 경력직도 첫 월급을 제대로 써야 한다.

구애, 동생을 향한

띠동갑인 동생과 친해지는 건 올해 목표 중 하나였다. 몇 년 전까지 악역을 맡아 혼내거나 잔소리하는 게 대화의 거의 전부였다. 그러다 보니까 내가 이름을 부르면, 동생은 움찔하거나 짜증 난 기색을 내비쳤다. 열두 살 많은 형한테 맞받아칠 생각은 차마 하지도 못하고, 뭐라 뭐라 하는 내 이야기를 가만히 듣고만 있는데 표정이 썩 밝지는 않았다. 나 또한 동생이라기보다는 아들 대하듯이 잔소리를 멈추지 않았다.

2년 전부터 생각을 바꿨다. 나중에 가족 중 나와 동생 둘만 남았을 때, 좀 더 연락하고 가깝게 지내려면 이렇게 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스무 살을 넘긴 성인에게 뭐라 뭐라 하는 것도 알맞지 않은 거다. 그래서 전략을 바꿨다. 햇볕정책으로. 최대한 잔소리를 참고, 동생에게 웃는 낯으로 사근사근 대하며 친해지고 싶은 마음을 한껏 드러내었다.

그러나 이게 참 쉽지 않다. 하루도 빠짐없이 동생에게 카톡을 보내지만 이 무심한 녀석은 답이 드물다. 기숙사에서 돌아오는 주말에 얼굴 보며 왜 형 카톡을 씹냐 물어보면, 돌아오는 건 깜빡했다는 심드렁한 대꾸이다. 게다가 여름에 함께 유럽여행 가는걸 ‘윤허’받았지만, 항공편과 숙소를 알아보고 결제하는 등 준비하는 건 동생이 아니라 나다. 착착착 정리해서 동생에게 ‘보고’를 올리고, ‘결재’받아 일을 진행한다.

내 매서운 사랑을 이렇게 무심하게 대하는 남자는 네가 처음이다 동생아. 갖고야 말겠어 네 마음을. 내 매력에 빠져보아라.

기회를 놓치지 않기

사람이 붐비는 출근길 9호선 일반 열차. 뒤편에 앉아있던 분이 짐을 주섬주섬 챙긴다. 다행히 그 앞에는 아직 사람이 없다.

잽싸게 뒤돌아 그 앞에 섰다. 이윽고 짐을 챙겨 일어나자 자리가 생겼다. 그때 몇 분 전부터 그 옆에서 기대고 있던 사람이 슬몃 움직인다.

그러나 자리는 누가 봐도 내게 우선권이 있었다. 기회가 다가오면 잡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