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보관물: 짧은생각

무기력한 집착

커리어, 더 나아가서 일이라는 게 내게 매우 큰 의미이다. 부지런히 자기 계발하려고 애쓴다는 이야기를 주변에서 하는 걸 보면 욕심 있는 게 확실하다. 최근 이런저런 일을 겪으면서 커리어가 어쩌다 큰 의미로 자리 잡았는지 생각해보게 되었다.

한 가지 이유로 귀결되지는 않을 거다. 그중에서 머리를 스친 건 이성관계에 대한 자신감 부족이 원인이 아닐까라는 생각이었다. 겉모습으로는 괜찮다 이야기해주는 사람도 많고, 호감도 많이 산다고 자부할 수 있다. 그러나 내가 좋아하거나 관심 있는 이성과는 유독 연결되지 않았다. 흔히들 이야기하는 고질적인 센스 부족, 혹은 어느 정도 가까워지기 전까지 영역을 그어놓고 사람을 대하는 성향. 복합적이겠지.

그러다 보니 내 마음대로 안 되는 것보다, 열심히 노력하면 잡을 수 있을 거라 여겨지는 커리어에 더 집착하게 된 거 같다. 그리고 거대한 물결 속에서는 그 집착이 굉장히 미약한 동력에 지나지 않는다는 걸 느끼면서 무기력함을 느끼고 있다. 가장 힘을 쏟았던 것에서 오는 무기력함이라 그런지 타격이 상당하다.

머리를 스친 또 다른 고민은 주변 사람을 너무 도구처럼 대하는 건가라는 고민이다. 내 기준과 잣대로 평가하는데 그치지 않고 친해지면 좋을 사람, 아닌 사람으로 구분한다. 그 기준과 잣대는 대체적으로 속물적인 것이다. 예전에도 그런 기준과 잣대를 들이댔었는지 혼란스럽지만, 요즘 더욱 혼란스럽다.

구부러질지언정 부러지지 말고, 꿇을지언정 무너지지는 않으려고 노력하는 게 쉽지 않다.

답 없는 질문을 바쁨으로 피하기

답이 없는 질문을 계속 던지고 있다. 답이 없다는건 생각을 정말정말 많이 해야하지만 답답하다는 뜻이다. 생각에 도움이 되는 정보나 조언을 찾겠다며 폰을 만지작거리지만, 정작 보고 있는건 예능 재방송이다.
이러고 있는 내가 가엾어진다. 그동안 미뤄왔던 공부를 해볼까 생각이 든다. 뭐라도 하게되면 성취감이 올라가고 찌질함이 내려가지 않을까.
시작 버튼을 누르려는 순간 친한 형이 해줬던 이야기가 떠오른다. 목적 없는 성실은 시간 낭비다였던가.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이런 뜻이었다. 지난 몇달을 목적 없는 성실로 채웠던 나이기에 뜨끔하다.
결국 시작 버튼을 누르지 못했다. 그리고 다시 의자에 털썩 앉는다. 고민부터 해결하자며.

찌질함을 깨닫다

이제 한 두달 정도 되었을거다. 고민하고 준비할 시간이 필요하다며 자신에게 면죄부를 준지 말이다. 처음에는 그 시간을 참 알뜰하게 썼었다. 치열하게 고민하고 깊이 파고들어 생각했다.
가까운 한달은 그렇지 않다. 그 시간을 핑계 삼아 참 못나진 나를 위해 변명한다. 늦게 일어날 때도, 스스로 보기에도 한심한 행동을 할 때에도, 더이상 참기 힘들었던 부모님이 슬몃 옆구리를 찌를 때에도.
오늘도 그러고 있다가 깨달았다. 내 찌질함을. 찌질한 나를 인정하고 싶지는 않았지만 마주 볼 수 밖에 없었다. 잘났다고 한때 생각했던 적도 있지만, 지금은 저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방안이 참 고요하다. 마음도 고요하다.

마구 질문하기에는 어려운 사람

모르는걸 마구 물어보기에는, 내가 너무 어렵게 느껴진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질문에 답해줄 때 사근사근하게 답해주는 나인데 왜일까.
이야기를 듣고 다른 누군가가 이야기해줬다. 이 사람이 나보다 똑똑해서, 물어보는 중에 드러나는 무지함이 두렵기때문에 그런게 아니겠냐고. 왜냐하면 다른 사람의 무지함을 알아챌만한 사람이기 때문이란다.
듣고 보니 그럴싸하다. 자신이 무엇을 물어보는지도 모르면서 물어보는 사람들 때문에 속에서 터진 짜증을 누른 적이 꽤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걱정된다. 내가 너무 교만한 것이 아닐까 말이다. 변변치않은 주제에 다른 사람을 평가하는건 아닐까 말이다.
좀 더 겸손해져야겠다.

피난처의 구실

쉽게 풀리지 않는 복잡한 문제가 앞에 놓여있다. 그럴 때면 차라리 단순하고 무식하게 도전하면 되는 일이 더 손에 잘 잡힌다. 정작 해결해야할 문제는 잠깐 뒤로 밀어두는 형국이랄까.
지금 내 처지가 딱 그러하다. 풀어야할 문제는  문제만 알고, 답은 못 내고 있다. 의욕이 넘쳤던 시기도 조금씩 지나가고, 새로운 관심사에 나를 일부러 몰입시킨다.
이래도 괜찮은걸까. 잘 모르겠다.

큰 질문 작은 질문

큰 질문에 대한 답이 나와야, 이어지는 작은 질문에 대한 답도 나올 수 있다.
하지만 큰 질문에 대한 답은 내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작은 질문부터 답을 하게 된다. 상대적으로 쉬우니까.
그렇게 작은 질문들에 대해 답을 내고 나면, 다시 큰 질문에 대한 답을 낼 차례이다. 하지만 그 답이 작은 질문을 무의미하게 만드는 경우도 있다.
나는 큰 질문을 챙기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