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시 일어나기 후기

매일 글쓰기라는 목표를 지키고자 선택한 방법은 아침 일찍 5시 근처에 일어나기이다. 회사 출근 시간을 기준으로 계산해본 시간이다. 글 쓰고 운동하고 영어도 좀 하려면 말이다.

5시에 일어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몸을 일으켜 움직이기 시작하더라도 더 자고 싶은 경우가 많다. 글을 쓰면서도 졸려서 눈을 뻐끔거리는 경우도 많다. (지금도 그렇다)

더 좋은 방법은 없을지 곰곰이 생각해봤다. 운동은 아침말고 다른 선택지가 없다. 밥 먹고 금방 운동하면 속이 부대끼고 부담된다. 그렇다고 밤늦게 하자니 잠자는데 방해되는 게 걱정되기도 한다.

하지만 글쓰기는 다르다. 사실 마음만 먹으면 아무 시간대에나 할 수 있다. 심지어 퇴근 후 떠오르는 업무 생각을 억누르고자 소설을 쓰기 시작한 사람도 있다. 글쓰기를 아침에 꼭 해야 한다는 건 필수는 아니다.

물론 아침에 글쓰기를 끝내 놓으면 하루가 그렇게 상쾌할 수 없다. 다른 걸 하더라도 부담이 없다. 문제는 아침에 일어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는 거다. 그러다 보니 리듬도 일정하지 않게 된다. 또한 글도 결국은 급하게 휴대폰으로 휘갈겨 올리는 경우가 많아진다.

좀 더 좋은 방법을 찾아봐야겠다. 내가 아침형 인간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도 어느 정도 인정해야 한다. 어떤 더 좋은 방법이 있을지 고민해보자.

못 믿을 습도계

지난주에 습도계를 구입했다. 코로나 이후 평일은 재택근무, 주말은 약속 없이 집에 머물고 있는 중이다. 그러다 보니 최대한 쾌적하게 방을 관리하고 싶었다. 게다가 여름이 다가오면서 습도가 높은 것 같은 느낌에 축 쳐지고 기분마저 안 좋은 날이 늘어났다.

인터넷 쇼핑몰에서 주문한 습도계가 도착했다. 설레는 마음으로 포장을 뜯어서 보니 그럴싸하게 생겼다. 온도와 습도를 표시해주고, 습도가 적정 수준인지 표정 이모티콘으로 표시해주는 단순한 디자인이었다. 아래쪽에 적혀있는 영어 글자가 주문 직전까지 마음에 걸렸지만, 원하는 디자인의 제품은 1.5배 정도 더 비쌌다. 굳이 그렇게까지 투자해야겠냐는 생각에 고른 게 이 제품이다.

처음 며칠은 수시로 습도계를 살펴보며 숫자를 살폈다. 이 습도계가 정확하지 않다는 걸 알아채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높은 습도로 찌뿌둥하던 어느 날 에어컨 제습 기능을 틀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방이 굉장히 뽀송뽀송해졌다. 하지만 습도계의 숫자는 미친 듯이 올라가더니 99%를 가리키고 있었다. 99%의 습도라니. 사람이 살 수 있는 환경이기는 한 건가.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에 부모님이 최근에 구입한 다른 습도계를 방으로 가져왔다. 나란히 놓고 보니 두 개의 숫자는 확연히 달랐다. 찾아보니 습도를 정확하게 측정하는 건 생각보다 쉽지 않은 일인가 보다. 비슷한 불만을 토로하는 사례를 인터넷에서 쉽게 찾을 수 있었다. 그렇다고 해도 이렇게 차이가 많이 나는 건 좀 너무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결국 문제의 습도계는 한 달도 채 되지 않아 쓰레기통으로 향할 예정이다. 정확하지 않은 측정은 오히려 혼란을 더한다. 그리고 그 정도가 받아들일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섰다. 싼 게 비지떡이라는 말이 다시 한번 피부에 와 닿는다.

까르보나라 실패기

눈을 떴다 감았다를 반복하며 침대에 누워있던 아침. 유튜브를 보다가 결심했다. 점심은 까르보나라 스파게티를 먹어야겠다고 말이다. 이탈리아 사람이 정통 까르보나라를 설명해주는 영상을 본게 발단이었다.

우리 가족은 크게 두 그룹으로 나뉜다. 어머니와 나는 새로운 음식을 시도해보는걸 좋아한다. 아버지와 동생은 이를 크게 내켜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아버지와 동생은 요리를 못 하기에 어머니와 내가 주는걸 먹을뿐이다.

예상보다 꾸덕꾸덕한 것을 제외하고는 그럴듯한 맛을 냈다. 올리브유와 면수도 어느정도 사용했지만 양이 좀 부족했나보다. 다음에는 더 맛있게 만들어주겠다는 말에 아버지와 동생은 손사래를 친다. 다시는 먹고 싶지 않나보다. 아무래도 어머니와 둘이 있을 때 해봐야겠다.

어느 금요일 밤

금요일 밤은 좀 다르다. 다른 평일과는 좀 다르다. 한주동안 고생한 스스로를 대견해하며 맥주와 야식을 먹는 날이다.

하지만 아직 먹지 못 하고 있다. 매일 글을 써야하는데 아직 오늘 분량을 못 썼기 때문이다. 써야지 하고 폰을 붙잡고는 내둥 유튜브만 봤다.

이제는 더이상 견딜 수 없는 이 심정을 일필휘지로 휘갈긴다. 그래 이제 거의 다 왔다. 어느정도 글의 구색을 갖췄다. 발행 버튼을 누른다. 맥주를 마실 수 있다.

회사 동료 단상1

회사에서 함께 일하는 사람들 중 유독 더 신경쓰이는 사람들이 있다. 그 중 한명은 보면 볼수록 안쓰러운 마음이 커져간다. 왜냐하면 정말 열심히 하는데 이해력이 좋지 않기 때문이다.

어렵지 않은 내용을 여러번 반복적으로 설명해줘야한다. 그러다보니 계속되는 비슷한 질문 공세에 답변하는 나 역시도 지치기도 한다. 하지만 미워할 수 없는 이유는 정말 열심히 하기 때문이다.

그 사람에 대한 이런 판단은 나만의 것은 아니다. 다른 사람들도 비슷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한편으로는 안쓰럽기도 하다. 본인 스스로는 얼마나 짜증날지 생각하면 말이다.

문득 다른 사람들이 나를 이렇게 바라보는건 아닌가 걱정이 되기도 한다. 열심히는 하는데 잘은 못하는. 아니겠지 아닐거야 라고 바랄 뿐이다.

오래된 집의 새로움

코로나 사태가 시작되고 재택근무를 시작하면서 우리집의 새로운 모습을 발견하고 있다. 20년 가까이 살고 있는 집이지만 그동안은 알 수 없었던 모습이다.

그중 하나는 낮에 새소리가 참 선명하다는거다. 아파트 2층이다보니 내 방 창분 앞에는 나무가 여러그루 있다. 창문을 열고 있으면, 새들이 나무를 안식처 삼아 지저귀는게 귀에 들어온다.

미세먼지가 없는 시간이 많아진 요즘 창문을 열고 있는 경우가 많은데, 지금도 새소리가 참 정겹다. 듣고 있자면 마음만이라도 산책을 하고 있는 기분이다.

20년이나 머물던 공간에서도 놓치고 있던 새로움은 존재한다. 이 소중한 순간, 공간들을 조금 더 자세히 들여다봐야겠다.

생일을 핑계로 목소리나 들읍시다

사람마다 선호하는 연락 방식은 제각각이다. 나는 전화 통화보다는 카톡으로 연락하는걸 더 좋아한다. 여자 친구가 아닌 이상에야 전화를 먼저 건 적은 거의 없다. 이유를 딱 꼬집어 이야기하기는 힘들지만 말이다. 친구에게 먼저 전화를 거는 경우는 일 년에 몇 번 손에 꼽을 정도이다.

오늘은 조금 다르게 해 봤다. 친한 친구가 생일을 맞은 오늘, 아침에 카톡으로 축하한다는 인사를 전했다. 그러다 저녁때가 되자 왠지 모르게 전화를 걸고 싶었다. 친구에게 직접 생일 축하한다는 이야기를 전하고 싶었다.

망설이다가 전화를 걸었다. 다른 사람들과 술자리를 갖고 있던 친구의 목소리를 들으니 뭔가 기분이 좋다. 많은 사람들이 알듯이 남자들끼리는 친하면 친할수록 막대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마음이 따뜻해지는 말을 선뜻 꺼내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용기를 내어서, 겨우 조금 둘러대며 생일이니까 너무 많이 마시지 말라고 이야기했다.

내색은 안 했지만 친구가 속으로 놀랐을 거라고 짐작이 된다. 평소에 전화라고는 거의 안 하던 녀석이 생일 축하 전화라니 말이다. 전화를 끊고서 기분이 좋아졌다. 친구가 잘 지내고 있는 것 같다는 느낌과 대학생 때 만나서 어느덧 10년이 넘는 시간을 함께 보냈다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그래서 한 가지 계획을 세웠다. 앞으로는 카톡으로 생일 축하 인사를 보내는 대신에 전화를 하려고 한다. 사실 카톡 생일 축하 인사도 웬만큼 가까운 사람이 아니면 보내지도 않는다. 이제부터는 이 사람들에게 전화로 축하의 마음을 전하련다. 설마 수신 거부하는 사람은 없겠지.

초심 떠올리기

사람은 망각의 동물이라고 한다. 이 말은 보통 부정적인 의미로 많이 활용된다. 과거에 쓴 맛을 봤던 생각과 행동을 다시 하는 경우에 탄식하면서 내뱉는 게 예시이다. 그러나 망각의 동물이라는 건 동시에 축복이기도 하다. 그동안의 모든 일들, 특히 죽을 만큼 괴롭고 슬펐던 기억이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남아있다면 얼마나 괴로울까.

절대 잊지 말아야 할 것을 하나 꼽으라면 무엇일까. 그건 바로 초심, 즉 무언가를 시작할 때의 마음가짐이라고 생각한다. 모든 일에는 시작이 있다. 그때는 희망과 열정의 크기가 남다르다. 그러다가 점차 시간이 지나가면서 많은 것들이 당연해지고 지루해진다. 바다만큼 컸던 희망과 열정은 콩알만큼 작아진다.

사랑을 시작할 때는 그 사람을 위해 모든 걸 내줄 수 있을 거라 생각했었다. 시간이 지나가면서 감정이 시들시들해지고, 오히려 그 사람이 귀찮아진다. 그뿐인가. 제발 붙여만 달라고 밤새도록 기도했던 회사 면접날. 온몸을 불사르겠다는 강한 의지는 점차 회사 다니기 싫다는 생각으로 바뀐다.

이럴 때 초심을 떠올려보면 좋다. 그 사람과 처음 단둘이 있을 때의 설렜던 마음을 생생하게 되살려보자. 입가에 웃음이 피어나면서도 지금은 왜 그렇지 않은지 생각해보게 된다. 새로운 출발에 들떴던 첫 출근날 세웠던 회사생활의 목표를 다시 생각해보자. 지금과 어떤 차이가 있는지 비교해볼 수 있다.

초심을 떠올린다는 게 꼭 초심으로 돌아가자는 건 아니다. 그때에는 좀 더 미숙했고, 잘 몰랐기 때문에 잘못 판단하고 기대하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망각의 동물이라 잊을 수밖에 없는 그때의 마음가짐은 들여다볼 가치가 있다. 사그라들었던 희망, 열정을 되찾는 길이기 때문이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올해 초 3개월간 디제잉을 배우러 학원에 다녔었다. 인정한다. 조금 멋들어진 취미를 갖고 싶다는 욕심이 있었다. 나머지 반은 일렉트로니카 음악을 좋아하지만 디제이가 뭐하는 사람인지 모른다는 호기심. 첫날 원장님은 취미로 디제잉을 배워 심지어 돈을 받으며 정기 공연도 하는 사람들의 사례를 알려줬다. 그러면서 나도 제2의 삶을 발견할지 모르겠다는 생각에 들떴었다.

하지만 수업을 들으면 들을수록 흥미와 열정이 반감되었다. 수업 외에 연습하러 따로 학원가던 것도 잦아들었다. 초급반 3개월이 다 끝나고 중급반 수강을 권유하는 달콤한 속삭임에도 흔들리지 않았다. 그렇게 디제잉 도전기는 3개월 만에 멈췄다.

그렇다고 후회하는 건 전혀 아니다. 접한 적 없던 세계를 들여다볼 수 있었다. 특히, 곡의 구성, 디제이에게 중요한 덕목, 디제이가 성공하려면 필요한 요소 등을 조금이나마 알 수 있었다. 무엇보다도 나는 정말 음악과는 거리가 멀고, 흥미 자체가 많지 않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외도를 하더라도 이쪽으로 외도할 생각 자체가 사라졌다.

이 모든 건 디제잉을 배우기로 결정하고, 실제로 배웠기 때문에 생긴 일이다. 배울까 말까 고민만 하고 학원에 다니지를 않았다면 어땠을까? 아마 지금까지도 디제이는 이런 걸 거야라며 훨씬 더 막연하게 바라보고 있지 않을까. 뭐라도 시도해본 탓에 나는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었다. 그게 상상했던 행복한 결말로 흘러가지는 않았더라도 말이다.

고민만 하고, 생각만 하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뭐라도 해야 무슨 일이라도 일어난다. 그 일이 원대한 상상처럼 행복하고 성공적이지 않더라도 말이다. 그래서 계획을 잘 세우고 생각을 깊게 하는 것보다 오히려 실행 자체가 더 중요한 경우도 있다.

사실 매일 글 쓰는 이유도 비슷하다. 아무것도 쓰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 같아서 쓰는 거니까.

연속 글쓰기 기록이 깨졌다

매일 글쓰기를 실천하고 있었다. 아침 일찍 일어나는데 성공하면 일어나서 거의 맨처음 하는 일이 글쓰기였다. 늦게 일어나는 날이면 폰으로 짧고 엉성한 글이라도 쓰면서 약속을 지키고 있었다.

아뿔싸 어제는 글쓰기를 깜빡했다. 할일 목록에 적어놓고도, 금요일 밤이라는 환희에 망각해버렸다. 까맣게 잊고 있다가 오늘 아침에서야 깨달았다.

한번 흐름이 깨지면 어떻게든 다시 돌아가는게 중요하다. 상실감과 허탈함을 핑계로 모르쇠하려고 했던 오늘, 밤 9시가 넘어서야 마음을 잡고 글을 올린다.

오늘부터 다시 1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