딴 생각 하는 명상

꾸준히 명상을 하고 있다는 이야기에 주변 사람들의 반응과 표정은 대부분 같다.

신기한 사람이라는듯 쳐다보면서 짓는 표정. 그리고 종종 날아오는 질문들, “딴 생각하지 않고 집중이 되나요?”

딴 생각은 당연한거다

명상에 대해 깊은 오해, 그리고 사람들이 한번 해볼까 하는 마음을 방해하는 요소.

이 둘은 같은 곳에 뿌리를 두고 있다. 바로 명상할 때 딴 생각이 들면 안된다는 인식이다.

여러 명상 책을 읽은 바에 따르면 명상할 때 딴 생각이 드는 건 당연한거다.

아주 오랜 기간 수련한 명상 지도자들이 아니고서는 딴 생각과 조우는 피할 수 없다.

그런 나를 인식하고 바라보기

중요한건 딴 생각을 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를 인식하고 바라볼 수 있는지이다.

“아 내가 지금 딴 생각을 하고 있구나” 알아차리는 순간, 놀랍게도 나는 다시 딴 생각에서 빠져나올 수 있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딴 생각하며 명상한다.

아침 저녁 2분씩 명상한다는 것

2분. 2분만 시간을 내달라고 말한다면, 듣는 이는 기분이 묘할 것이다.

10초도 아니고, 1분도 아니고 2분이라니.

짧다고 하기도, 길다고 하기도 애매한 시간.

출근길 아침에 자칫하다가 지하철 2개를 연속으로 보낼 수도 있는 시간.

노래 한 소절이 끝나고 그다음 소절 도입부를 조금 지났을 시간.

그 2분 동안 나는 아침저녁으로 명상을 한다.

가만히 들고 나는 숨에 귀 기울이고, 정신을 모을 수 있는 시간.

정신이 흐트러질 때쯤 때마침 타이머 소리가 시간이 지났음을 알린다.

시간은 지나가고, 마음은 한결 가라앉는다.

페이스북 멀리하기

페이스북을 들어가지 않기로 했다. 트위터도 안 한지 오래고, 인스타그램도 하지 않기에 페이스북은 “느슨한 관계”의 사람들의 근황을 알 수 있는 좋은 수단이었다. 거기에 덤으로 네이버 뉴스 등에서 볼 수 없는 양질의 컨텐츠까지 접할 수 있었다.

그런 페이스북에 들어가지 않기로 결심한데에는 팟캐스트 하나가 한몫했다. “트루먼쇼”처럼 소셜미디어에 올리고 싶은 삶을 만들어내고, 다른 사람의 삶과 자꾸 비교할 수 밖에 없기에 결국은 불행하다 느끼게 된다는 연구결과. 이를 소개하는 팟캐스트를 들으며 나만 그런건 아니었구나 하는 안도와 함께 페이스북을 그만해야겠다는 결심이 섰다.

벌써 2주 정도 되었는데, 아직까지는 별 어려움이 없다. 한가지 아쉬운건 블로그에 글을 쓰더라도 사람들의 반응을 확인하기 어렵다는 것 정도. 반응을 기대하며 글을 검열하던 나와 이별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도 하겠지만, 성장을 확인하는데 반응만큼 좋은 지표는 없다는게 사실이다. 이 부분은 계속 고민해봐야지.

견물생심

방 한켠에 캐리어가 세워져 있다. 며칠 전 물 건너온 새 캐리어다. 이번 8월 예정된 동생과의 유럽여행을 위해 하나 장만했다. 네 바퀴 달린 기내용 캐리어가 집에 하나뿐이었다. 둘이 가려면 하나가 더 필요한 게 아닌가 싶어 하던 차에 마침 캐리어 추천 글을 보았다. 댓글에 언급된 “제로그라”라는 모델을 찾아보니 우리나라 쇼핑몰에서는 없었다.

무엇인가를 살 때는 거창한 이유가 필요 없다. 한 가지 이유에 설득당하면 그대로 지갑이 열린다. 이 경우에는 엔화 가치가 올라갈 것이라는 경제 전문가의 예측이 절대적이었다. 평소에는 경제 전문가 예측을 거의 믿지 않지만, 이럴 때는 왠지 믿고 싶어 진다. 라쿠텐에서 결제하고 발송되었다는 메일이 온 다다음날 퇴근하고 택배 상자와 마주했다.

포장을 풀고 살펴보니 실물이 더 만족스럽다. 가볍기도 가볍거니와, 적당히 진한 남색 색감이 마음에 든다. 바퀴 굴림도 어찌나 부드러운지 환상적이다. 보통 베란다 창고에 넣어두는데, 더 이상 공간이 없었다. 그래서 급한 대로 방에 방치해두고 있었다.

고개를 돌리면 캐리어가 보이니 마음이 동한다. 저 곱디고운 캐리어를 그냥 세워두는 건 마치 씻을 수 없는 죄를 범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마침 요즘 매사에 의욕도 없고, 힘이 솟질 않던 터라 여행 생각이 간절해졌다. 마침 황금연휴라는 5월 초가 눈 앞이다. 항공권 비교 앱을 설치해 몇 군데 찾아본다. 시즌이 시즌이다 보니 항공권 가격이 만만치 않다. 마음을 접고 앱을 지우지만, 다시 캐리어를 보면 마음이 동한다.

[책]채식주의자

한 친구는 이 책을 이렇게 표현했다. 내용이 이상하다고. 읽으면서 그럴 만도 하다는 생각에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 이런저런 다양성 영화를 접한 적 없던 시절의 나였다면 역시나 기겁하고 역겨워했을 만했다. 그런 영화들이 도와주었는지, 읽는 내내 영화를 보고 있는 것 같은 착각과 상상에 빠져들었다. 그리고 하루 만에 출퇴근 지하철 안에서 단숨에 다 읽어버렸다.

기억에 남는 건, 그간의 삶과 생활에 어느 순간 매몰되어 자기 자신을 가두고 억눌렀던 사람들의 처절한 몸부림. 다른 삶과 생활을 맹렬히 좇은 영혜와 달리 그녀의 언니는 여전히 스스로를 붙들어 매려 노력한다. 한 번쯤은 ‘피어나고 싶다’는 욕망을 좇은 영혜의 형부는 과연 마지막까지 후련하고 만족스러웠을까. 주인공과 서술 시점이 달라진 채 엮인 이야기 덩어리들이 참 역동적이다.

이 책을 구입했던 건 맨 부커상 수상 전이었다. 문학에 지대한 관심이 없는 사람이기에 내가 손수 골랐을 리는 만무하다. 아마도 잡지나 신문에서 책 소개 글을 보고 나서 구입하지 않았을까 기억을 더듬어본다. 그동안 책꽂이에 고이 꽂혀있었다. 상을 수상한 게 작년 5월 경이니, 사놓고 꼬박 1년 가까이를 잠들어있던 것이다.

왜 이제야 읽었나 싶다.

말로 표현할 수 없어요

연유는 모르겠지만, 어떤 노래가 머리를 맴도는 때가 있다. 어젯밤 머리를 때린 노래는 몇 년 전 들었던 그 노래, 동방신기가 부른 ‘言葉にできない(말로 표현할 수 없어요)’. 일본어는 모르지만, 노래 자체의 느낌이 좋았다. 오로지 피아노 반주에만 맞춰서 한 명씩 돌아가며 노래를 소화해내는 오방신기 시절 동방신기의 걸출함도 압권. 중간중간 클로즈업된 노래 중인 멤버 뒤로 보이는 다른 멤버들이 몰입된 듯 따라 부르는 모습도 인상적.

도입부만 듣고 있어도 마음이 얼어붙을 것만 같다. 굳이 한국어 번역 가사를 보지 않더라도, 어떤 말을 읊조리고 있는지 느낌이 오는 그런 도입부. 멜론에 음원도 없는터라 유튜브에서 찾아 화면이 터치되지 않도록 손에 들고 다니며 듣는데 불편하기 그지없다. 이 노래 때문이라도 오프라인 저장 기능이 있는 유튜브 레드를 결제하고 싶어 질 정도.

https://youtu.be/gy1Qma79orE

終わるはずのない愛が途絶えた

(오와루하즈노 나이 아이가 토다에타)

끝날리가 없는 사랑이 끝났어요

いのち盡きてゆくように

(이노치 츠키테 유쿠요-니)

목숨이 다 해 가듯이…

ちがうきっとちがう 心が叫んでる

(치가우 킷토 치가우 코코로가 사켄데루)

“그것과 달라! 분명히 달라!”라고 마음이 외치고 있어요…

ひとりでは生きてゆけなくて

(히토리데와 이키테 유케나쿠테)

혼자서 살아갈 수 없기에

また 誰かを愛している

(마타 다레카오 아이시테-루)

또 누군가를 사랑하고 있어요

こころ哀しくて 言葉にできない

(코코로 카나시쿠테 코토바니 데키나이)

가슴이 슬퍼서 말로 표현할 수 없어요…

LaLaLa… 言葉にできない

(LaLaLa… 코토바니 데키나이)

LaLaLa… 말로 표현할 수 없어요

せつない噓をついては いいわけをのみこんで

(세츠나이 우소오 츠이테와 이이와케오 노미콘데)

슬픈 거짓말을 하고는 변명을 삼키며

果たせぬ あの頃の夢は もう消えた

(하타세누 아노 고로노 유메와 모- 키에타)

이루지 못한 그 시절의 꿈은 이미 사라졌어요…

誰れのせいでもない

(다레노 세-데모나이)

누구의 탓도 아니에요

自分がちいさすぎるから

(지붕가 치-사스기루카라)

내 자신이 너무 초라하기에

それがくやしくて 言葉にできない

(소레가 쿠야시쿠테 코토바니 데키나이)

그게 분해서 말로 표현할 수 없어요…

LaLaLa… 言葉にできない

(LaLaLa… 코토바니 데키나이)

LaLaLa… 말로 표현할 수 없어요

あなたに會えて ほんとうによかった

(아나타니 아에테 혼토-니 요캇타)

그대를 만날 수 있어서 정말로 좋았어요

嬉しくて嬉しくて 言葉にできない

(우레시쿠테 우레시쿠테 코토바니 데키나이)

기뻐서, 기뻐서 말로 표현할 수 없어요…

LaLaLa… 言葉にできない

(LaLaLa… 코토바니 데키나이)

LaLaLa… 말로 표현할 수 없어요

청바지는 찢어지지 않는다, 대부분은

청바지는 잘 찢어지지 않는다. 찢어진 청바지가 패션 아이템을 인식되는 것 자체가 희소성을 역설적으로 드러낸다. 미국 서부 개척시대 광부 등 노동자가 즐겨 입었다는 탄생설화에서부터 뿌리 깊은 강인함을 확인할 수 있다.

나는 청바지를 찢어본 사람이다. 그것도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이나 찢어봤다. 4년 전 여행 갔던 몽골에서 말을 타고 초원과 언덕을 신나게 달린 적이 있었다. 주위를 둘러보면 우리 일행 말고는 사람 흔적이라고는 찾을 수 없는 그곳에서, 2시간 동안 신나게 내달렸다. 나중에 허벅지 안쪽이 너무나 쓰라려 보니, 찢어진 청바지 사이로 검게 짓무른 살이 보였다. 위아래 움직임이 좀 많이 강했었나 보다.

두 번째는 바로 오늘 사무실이었다. 잠실로 이사한 사무실로 출근하는 첫날, 짐을 정리하고 덥고 답답한 공기를 못 견뎌하던 누군가가 창문을 열어놨다. 20층 건물 창문으로 들어오는 바람은 시렸다. 창문을 조금 닫으려면 위쪽에 있는 버튼을 눌러야 했다. 책상을 밟고 올라가 원하는 만큼 버튼을 누르고, 홀가분한 마음으로 다리를 내디뎠다. ‘부욱’하는 소리가 났다. 허벅지 안쪽 살이 수줍게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하루 종일 새색시처럼 조신하게 몸을 움직였다. 입고 있던 잠바를 허리춤에 둘러 흡사 듀스 뺨치는 패셔니스타로 돌아다녔다. 청바지는 찢어지지 않는다. 대부분의 경우는. 대부분은.

갑자기 간다면

할머니가 하루도 빠짐없이 통화하던 친구분이 몇 주 전부터 전화를 받지 않았다고 한다. 그럼에도 매일같이 전화했던 할머니는 며칠 전 전화번호가 사라졌다는 메시지를 들으셨단다. 불길한 예감. 정확히 확인할 길은 없지만, 아마도 친구분이 돌아가셨을 거라 할머니는 짐작하고 계신다. 매일 이야기 나누던 친구의 운명을 그렇게 어림짐작으로 가늠하고 계신다.

황망하고 애절할 할머니를 생각하며 가슴이 아파왔다. 그러다 생각해보니. 초등학생 시절, 집 거실에는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내 주변 연락처가 빼곡히 적힌 수첩이 있었다. 내가 지금까지 기억하는 아버지의 친구분, 어머니의 친구분 성함은 그 시절 수첩으로 빚어진 기억이다. 늦게까지 집에 들어오지 않을 때 걱정하지 말라고 적어놓은 내 친구네 집 번호까지 해서 수첩은 비상연락망 그 자체였다.

내일 출근길 갑자기 간다면, 가버린다면 내 친구들과 주변 사람들은 그 소식을 알 수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더 이상 수첩 같은 건 없는 요즘, 소중한 그리고 가까운 사람이 누구인지 그리고 어떤 관계인지 알 수 있을까. 카카오톡 프로필을 바꿔놔야 사람들이 잘 알까, 아니면 페이스북에 그 소식을 올려야 하는 걸까. 그리고 정작 남은 사람들이 그렇게 할 수 있을까. 삶이란 참 단조롭다가도 극적이다.

혼자 핀 벚꽃

잠이 덜 깬 눈으로 베란다 쪽을 쳐다보다가 깜짝 놀랐다. 흐드러지게 핀 벚꽃을 봤기 때문이다. 벌써 벚꽃의 시기가 왔나 의아한 마음에 좀 더 자세히 살펴보니 딱 한그루에만 벚꽃이 피어있었다. 아침과 저녁까지 변화무쌍함에 사람도 혼란스러운 게 요즘 날씨인데, 너도 낚였구나 하는 측은한 마음이 들었다.

빗줄기가 점점 거세지는 오후가 되자 슬몃 그 벚꽃나무가 걱정되었다. 봄바람 휘날리며 흩날리는 벚꽃 잎을 보기도 전에 지고 말까 봐 염려되었다. 풍성한 꽃이 자리 잡았을 때도 물론 아름답지만, 꽃바람 광경 또한 빠지지 않는다. 다 떨어지고 드러난 가지의 앙상함은 마음 아프지만 말이다.

어둑어둑한 저녁. 베란다 창문을 열고 살펴보니 그림자처럼 까만 나무에는 꽃잎의 형체가 잘 눈에 띄지 않는다. 오늘 피어나자마자 물세례를 맞으면 벚꽃도 기분은 좋지 않을 거다. 시원하고 기운찬 빗소리가 변화무쌍한 날씨처럼 벚꽃을 혼란스럽게 만들겠다. 혼자 먼저 피어났지만, 이웃 형제들도 어울릴 수 있을 때까지 힘을 내길.

 

[책]도리언 그레이의 초상

첫 회사에서 내 이메일 주소는 sh1985.lee@이었다. 이름 이니셜과 출생 연도에 당당한 조합. 아무런 거리낌 없이 정한 이 주소를 보고, 같은 부서 대리님이 한마디 했다. 젊으니까 출생 연도를 붙여도 괜찮을 텐데, 나중에 후회할 수도 있다고. 틀리지 않았다. 지금 회사의 이메일 주소에는 출생 연도를 넣지 않았다. 점점 ‘젊음’이 나와 어울리는 단어일지 자신이 없어진다.

젊고 잘생긴 도리언 그레이는 그 외모 덕분에 사람들의 관심과 환대를 얻는다. 그는 마법 같은 상황을 맞이한다. 세월이 흘러도 여전히 아름다운 젊음을 유지하고, 그의 초상화가 대신 늙어가면서 지은 죄의 흔적까지 모두 짊어지며 변해가는 것이다. 시간이 다르게 변해가는 초상화는 오히려 그를 더 자극하고 이기심을 부추겨 쾌락을 맛보게 한다. ‘젊음’에 대한 믿음과 방종은 아무도 보지 못하게 숨겨둔 초상화를 점점 추악하게 바꿔간다.

나는 기본적으로 사람의 얼굴 인상을 보고 그 사람의 성격을 유추하는 걸 경계한다. 과거 인상이 안 좋다는 이유로, 또는 인상이 좋다는 이유로 사람을 미워하거나 좋아했다가 그 사람의 진면목을 나중에야 깨달았던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잘 생기고, 예쁜 사람에 호감이 절로 가는 건 참 막기가 힘들다. 아름다운 것은 좋은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우스갯소리로 사람의 마음을 보고 싶지만 잘 보이지 않기에, 마음의 ‘창’으로서 외모를 본다는 말도 있다.

이 글을 쓰면서 몇 년 전 사진 속 내 모습을 우연히 봤던 며칠 전 기억이 떠올랐다. 별로 달라진 게 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지금 모습과 그때 모습에서 명백한 차이가 느껴졌다. 한번 스스로에게 물어본다. 그간 젊음을 잃은 건 확실하다. 하지만 내 초상화도 추악하게 변한 걸까 아닐까. 지금으로부터 몇 년이 지나고 얼마만큼의 젊음이 떠나갔을 때, 아쉬움이 남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답이 쉽사리 구해지는 질문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