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The Undoing Project

심리학에 관심이 많았던 나는 부전공으로 심리학을 선택함으로써 그 갈증을 해소하려 했다. ‘심리학’이 아니라 정확하게는 ‘심리학자가 쓴 책’에 관심이 많은 거였다는 걸 깨닫기까지 오래 걸리지 않았지만 말이다. 어쨌거나 수업도 듣고 책도 많이 읽은 덕분에 용어나 연구자 이름에 대해서는 익숙한 편이었다. 인간은 합리적이지 않다를 전제로 하는 ‘행동경제학’의 효시가 된 연구를 했다는 다니엘 카네만, 아모스 트버스키 두 사람에 대해서도 익숙했다. 그들이 심리학자로서는 최초로 노벨경제학상을 받았고, 그들의 핵심이론은 ‘전망 이론’이라는 것인데, 그 이론의 핵심은… 아래 그림을 참고하자.

‘머니볼’, ‘빅 숏’의 작가 마이클 루이스가 그 두 사람의 이야기를 다룬 책을 곧 선보인다는 소식을 듣고, 출간일에 킨들에서 검색해봤다. 안타깝게도 킨들 가격은 전. 혀. 저렴하지 않았고, 이럴 거면 그냥 종이책으로 구해야겠다 싶어 주문했다. 다른 책을 읽는 몇 주간 책장에 꽂혀있던 이 책을 꺼내서 첫 장을 펼치던 순간, 다음 내용이 궁금해서 참을 수가 없는 갈증을 느꼈다.

책에 소개되는 카네만과 트버스키의 한마디 한마디는 통찰력으로 가득 차 있었다. 통째로 외우고 싶은 내용들이 여러 개라서 사진을 찍어놨다.

“인생에서 큰 결정은 사실 무작위로 이뤄지는 경우가 많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려면, 오히려 작은 결정이 더 많은 것을 알려준다. 예를 들어 고등학교 선생님을 누굴 만났는지가 어떤 대학교 전공을 선택할지에 영향을 준다. 누구와 결혼하는지도 인생 그 시점에 주변에 누가 있는지에 따라 결정되는 것일 수도 있다. 반면에 작은 결정은 아주 체계적으로 이뤄진다.”

지난 시간을 돌이켜보면 소름끼치게 정확한 이야기다. 무작위로 연결된 인생의 여러 줄기 중에서도 나를 나답게 만들고, 잘 대변해주는건 매일매일 하는 사소한 결정들이다. 예를 들면 정해진 시각에 일어나려 하고, 가급적이면 집에 일찍 들어오려는 습관 등에서 더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사람은 ‘어떤 것’ 중에서 하나를 고르지 않고, 어떤 것에 관한 ‘설명’ 중에서 하나를 고른다.”

같은 물건이나 서비스를 어떻게 설명하냐에 따라 선택이 많이 달라진다. 축수선수 박지성은 ‘장점이 뚜렷하지 않은’이라고 묘사될 수도 있지만, ‘멀티플레이어’라고 묘사되기도 한다.

부족한 언어 능력 탓에 적합한 문장으로 옮길 수 없지만, 이외에도 기억하고 싶은 내용이 수두룩하다. 그러나 유용한 정보와 지적 자극을 주는 데에만 그치는 책이 절대 아니다. 두 사람의 서로에 대해 갖고 있는 믿음, 실망, 아쉬움, 고마움, 행복함 등이 책을 환하게 만들었다가도, 우울하게 만들기도 한다. 그리고 종국에는. 파국으로 치닫는 관계의 마지막이 묘사된 대목에서, 나는 그야말로 심장이 털썩 주저 않는 느낌을 받았다. 책 제목이 어떤 의미인지를 깨닫게 되는 순간에도 가슴이 철렁했다.

쉽게 술술 읽혔던 초반부와 비교했을 때, 연구 내용이나 동료 교수와의 논박이 주를 이룬 중반부에서는 내용을 완전히 이해하고 있지 못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렇지만 이야기, 두 사람이 그렇게 경계하고, 트버스키가 특히나 혐오하던 바로 그것, 자체만으로도 이 책은 매우 매혹적이다. 정말 매우 매혹적이다. 심장이 쿵 떨어지는 마무리까지.

요즘 읽는 책, ‘The Undoing Project’

 

출근길과 퇴근길 모두 지하철, 그중에서도 명성이 드높은 9호선을 이용하지만 시간을 보내는 방식은 확연히 다르다. 퇴근길에는 가급적 빨리 집에 가기 위해서 ‘급행’ 인파에 끼여 팟캐스트를 듣는 척하면서 인터넷 서핑을 한다. 이와는 다르게 출근길에는 늦게 일어나지 않는 한 ‘9호선 일반’을 타고, 빈자리에 잽싸게 앉는다. 그리고 책을 읽는다. 30분 남짓한 시간이지만 활력소 같은 시간이다. 물론 책을 펼쳐놓고 조는 경우도 종종 있다.

며칠 전부터 ‘The Undoing Project’라는 책을 읽기 시작했다. 작가는 마이클 루이스. ‘머니볼’과 ‘빅쇼트’로 명성 높은 사람이다. 게다가 ‘행동경제학’의 이론적 근거를 확립했다고 일컫어지는 다니엘 카네만과 아모스 트버스키의 우정이 소재이다. 원래는 킨들로 구입하려 했으나, 콧대 높은 이 책은 킨들 에디션이라고 가격이 전혀 착하거나 하지 않았다. 그래서 아예 종이책으로 구했다.

구입 후 책장에 꼽아놓던 중 어느 날 이 책이 남다르다는 걸 눈치챘다. 아래 사진에서도 볼 수 있듯이 작가 이름이 책 제목보다 확연히 더 크게 부각되어있다. 참고로 내 책장에 꽂힌 다른 책들은 전부 책 제목이 조금이라도 더 큰 글자로 적혀있다. 마이클 루이스의 양보할 수 없는 자부심 같은 건가.

이번 주부터 읽기 시작했는데, 솔직한 심정으로는 ‘다음 내용이 궁금해서 못 참겠다’이다. 과장을 몇 스푼 보태면 이 책을 읽고 싶어서 출근하고 싶을 지경이랄까. 아직 초반부에 머물러있지만 기대가 아주 크다. 한국어 번역본은 아직 없다. 이전 마이클 루이스의 책들은 주로 비즈니스 관련된 출판사에서 번역했는데, 이 책은 어디서 관심을 보일지, 번역이 되기나 할지 의심스럽긴 하다.

다음 내용이 너무 궁금하다. 얼른 내일이 되어 출근하고 싶다.

Michael Lewis 가 책 제목보다 더 크게 적혀있다

재테크, 나비 같은

대학교 졸업 후 일하기 시작한 지 8년 동안 매달 빼놓지 않고 하는 게 있다. 바로 재정현황을 기록하는 것이다. 얼마의 돈을 어느 정도 수익을 거두며 굴리고 있는지 계산하고 더해서, 지금 내가 가진 자산은 얼마인지 확인한다. 인터넷 어디선가 받은 엑셀 양식을 근간으로 나에게 알맞은 형태로 설정해 활용 중이다.

여러 가지 방식으로 재테크를 시도했으나, 작년 말 기준으로 가장 높은 수익률을 가져다준 건 예적금이었다. 여기서 시도했다는 여러 가지 방식이란 펀드, 주식, 외화 등이다. 굉장히 합리적인 발상이라 자화자찬하며 리버스 인덱스펀드(주가지수가 떨어지면 수익을 내는)를 가입했으나 손해를 보았다. 건너 건너 정보를 얻어 한X약품에 투자했으나, 매도 시기를 놓치고 결국 똔똔에 그쳤다. 친구랑 커피 마시며 일본 여행 이야기하다가, 엔화 천만 원어치를 환전해 서랍 속에 고이 보관해놓다가 손해를 보기도 했다가. 심지어는 그 엔화를 달러화로 바꿨다 더 손해 보았다.

이런 암흑기적인 재테크 역사에 한 획을 긋는 일이 최근 일어나고 있다. 압도적인 수익률을 기록 중인 재테크 결과물이 있는데, 바로 ‘이더리움’이다. ‘비트코인’과 유사한 가상화폐이다. 블록체인 등 기사로만 접하던 개념을 한번 공부해볼까 싶어서 관심을 갖게 되었다. 꾸준히 가치가 상승하더니, 급기야는 며칠마다 ‘이더리움 급등 중’이라는 메시지와 메일을 받을 정도로 최근 가치가 펄쩍 뛰고 있다.

오늘 기준으로 계산해보니 수익률이 무려 343.4%. 무려 3배가 넘는 수익을 거뒀다. 이쯤 되면 기분이 좋지 않을 수 없다. 8000원어치 구입해서 27000원 이상 수익을 거뒀으니 말이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8000’만’원이 아니라 8000원이다.

이야기

누구나 다 자신의 이야기가 있다

그러니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기보다는

그 사람의 진짜 모습을 확인할 수 있는

다른 면을 찾아봐라 라…

[책]안나 카레니나

한 가지 사실에 기초해 다른 내용을 어림짐작해보는 경우가 많다. 고등학교 내내 러시아어를 배웠고, 심지어 대학교에서도 노문과 수업을 들었다고 이야기하고 나면 정체성이 덧 씌워진다. 러시아어를 한번 해보라는 주문이 쏟아지고, 러시아를 가봤거나 적어도 러시아 문학을 읽어봤을 것이라는 기대가 난무한다. 불행히도 그렇지 않았다. 고백컨데 나는 러시아 문학을 즐기지 않았다.

방금 ‘안나 카레니나’를 드디어 다 읽었다. 작년 여름부터 읽기 시작했고, 책을 빼곡히 메우고 있는 탁월성에 머리가 주뼛주뼛 서거나 가슴이 흔들렸던 걸 감안하면 굉장히 오래 걸렸다. 중간중간 다음 장을 넘길 의욕을 잃은 채, 다른 책으로 잠깐 외도했다가 다시 돌아와 등장인물 관계를 어렴풋이 떠올리며 한 장 한 장 넘겼다. 이름과 성과 ‘애칭’을 넘나들며 인물을 등장시키는 현란함에 정신을 잃은 적도 많았다. 러시아 사회와 국제 정세에 대한 이야기로 가득 찬 대목에서는 아득함을 느꼈었다. 분명 러시아어가 아닌 한국어를 읽고 있지만, 문장만 두둥실 떠다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과 평생 함께 하고 싶다. 사람 심리를 이토록 섬세하고 정밀하게 들춰내고, 변화하는 모습까지 보여주는 책은 처음이었다. 한국어 문장을 읽으면서 탄성이 터져 나오는데, 러시아어 원문은 어떤 느낌일지도 궁금하다. 행복한 다른 인생을 꿈꿨지만, 카레니나(카레닌 가의 사람)로 남을 수밖에 없던 안나. 그녀의 처절한 죽음이 가슴 시리다.

위기의 순간

위기의 순간에 스스로를 지킬 수 있어야 한다. 위기란 예고 없이 찾아오기 마련이다. 그래서 매 순간 그에 대한 대비가 필요하다. 그래야지 갑자기 맞닥뜨린 상황에서도 당황하지 않고 슬기롭고 올바르게 대처할 수 있다.

지금 겪고 있는 위기는 현재에 집중할 수 없다는 거다. 앞에서 열정적으로 목소리를 높이는 분은 외친다. 이것만 알면 적어도 목숨만큼은 부지할 수 있다고. 초점이 흐려지고, 자꾸만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는 나를 안타까운 눈빛으로 바라보며 더욱 목소리를 높인다. 하지만 내 정신은 희미해진다.

‘자, 이제상으로 화생방 상황에 대한 교육을 마치겠습니다. 나가시면서 소집 서랑 참가증 도장받으시면 됩니다.’

그래, 첫 민방위 훈련이 끝났다.

빠른 수긍

몸 쓰는 일을 도와드리는 나더러 당신이 하겠다는 아버지.

나도 잘 하기 어려운 일인데, 아버지가 하기는 더 어렵지 않느냐는 반문에 곧장 수긍하신다

그 수긍이 마음 아프다. 아버지도 이제 늙으셨구나

똥밭에서 굴러도 추억은 남는다

똥밭 한번 굴러보지 않은 사람은 극히 드물으리라 생각한다. 되돌아봤을 때 만족감과 행복함에 가득 찬 인생일지언정 똥밭에 대한 기억 하나 없다면, 그건 억수로 운이 좋거나 앞으로 기다리고 있을 똥밭에 대한 암시일 거다. 똥밭을 똥밭이라 눈치채고 발을 디디는 사람은 많지 않다. 눈에 뭐가 씌거나, 혹은 후각이 마비되어 금밭이라고 생각하고 달려드는 경우가 많다.

안간힘을 써서 혹은 천재일우로 똥밭에서 벗어나면 다시 한번 명료하게 알 수 있다. 지독하다고 생각했던 냄새가 다시 보니 더 지독한 녀석이었음을. 한번 똥밭에서 구르면 나중에 비슷한 냄새가 났을 때 조금은 사리분별을 잘할 수 있다. 적어도 한 숟갈 퍼먹는 일은 안 할 가능성이 높다.

그나마 다행인 건 나 혼자 구르기보다는 옆에 같이 굴러주는 사람이 있다는 거다. 그리고 탈출 후 그 사람과 마주 앉아 그게 얼마나 똥이었는지 이야기를 나눠보면 다시 한번 명료해진다. 아찔한 기억과 코를 찔렀던 악취가 이제는 웃기기만 하다. 제아무리 똥밭에서 구를지언정 추억은 남는다. 제아무리 똥밭일지언정 사람은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