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을 숨기다

마땅한 글쓰기 주제가 없는 날이면, 매일 다른 주제를 소개해주는 앱을 살펴본다. ‘숨기다’ 오늘의 주제였다.

 

[본심]을 숨기다

“많이 바쁘신가 봐요? 제가 어제 메일을 드리긴 했지만, 지난주에 말씀해주신 프로젝트가…”

“아휴 이거 제가 밑지고 파는 거예요”

“언제 한번 식사나 한번 하시죠”

[치부]를 숨기다

몇 달 전 회식 자리. 술이 거나하게 취하자 다들 말이 많아지기 시작했다. 누군가가 창피했던 과거 경험담에 대해 털어놓기 시작했다. 당사자는 진지하게 이야기했지만, 듣는 이들은 숨도 못 쉴 정도로 웃긴 이야기였다. 덩달아 자신의 이야기를 시작하는 사람들이 더 생겼다. 역시나 들으면서 너무나 웃긴 이야기. 숨 넘어가게 웃던 와중에도 자신의 이야기는 하지 않고, 남의 이야기만 하는 사람이 더러 있었다. 나도 그중에 하나였다.

[고마움]을 숨기다

회사에서는 말끝마다 붙이는 감사합니다라는 인사가 왠지 모르게 집에서는 잘 쓰기 힘들다. 집 밖에서는 귀찮은 질문에도 웃으며 답해주고 상냥하게 이야기하지만, 집 안에서는 괜히 표정이 굳어있다.

[미안함]을 숨기다

가끔씩 친한 친구들과 장난을 치다가 너무 나아간 것 같은 아차 하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그렇지만 어물쩡 넘어가고, 모른 척 시간이 지나가길 바랄 때가 많다. 미안한 마음이 들지만 말이다.

[돈]을 숨기다

이런 적은 없다. 굳이 숨기지 않아도 숨어있기 때문이다. 슬프게도.

김민희가 상을 받다

5년 전 가장 싫어하는 배우가 누구냐고 물어봤으면 아마도 그녀의 이름을 이야기했을 거다. 힘없고, 바보 같아 보이는 점도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무엇보다도 연기를 정말 못한다고 생각했다. 영화 ‘연애의 온도’를 보기 전까지는 말이다.

그녀가 주연이라는 사실에 별 기대 없이 보기 시작했다. 그러다 이내 몰입하고, 보는 동안 감탄을 멈출 수가 없었다. 그녀는 완벽하게 소화하고 있었다. 그다음부터는 그녀의 이름이 들어간 영화는 상당한 기대감을 갖고 보게 되었다.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에서도 실망시키지 않았고, ‘아가씨’에서는 연기도 연기지만, 왕년 모델 출신의 존재감을 보여줬다.

그녀가 베를린 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거머쥐었다고 한다. 프로야구팬들은 불가능한 일을 묘사할 때 ‘이대호 도루하는 소리’라고 한다. 몇 년 전이었다면 이대호 도루하는 소리로 생각했을 법한 일이 벌어졌다. 정확히 무엇이 그녀를 변하게 하고, 성장시켰는지 오롯이 알 수는 없지만 분명 굉장한 노력이 수반되었을 거라 짐작만 한다. 비록 사생활에 대한 잡음은 더 심해지겠지만, 나는 그녀의 이 어마어마한 성취에 힘차게 박수를 보내고 싶다. 그녀에 대한 내 판단, 그때는 틀렸고 지금은 맞다.

[책]가만한 당신

가만한 당신. 마지막 장까지 다 읽고 책을 덮고 나자 제목이 눈에 들어왔다. 가만’히’라는 표현은 많이 사용하는데, 가만’한’이라는 형용사는 낯설었다. 부랴부랴 사전을 찾아보니 뜻이 나왔다.

가만한: [주로 ‘가만한’의 꼴로 쓰여](움직임이)거의 드러나지 않을 정도로 조용하고 차분하다.

역설적인 제목이다. 책에 소개된 서른다섯 명은 결코 가만한 사람들이 아니다. 인권, 성범죄, 질병, 환경 등 영역에서 누구보다도 정열적으로 활동했던 사람들이 소개되어있다. 저자는 어떤 의도로 이런 제목을 선택했을까.
깨달았다. 누구보다도 정열적으로 활동했던 사람들이지만, 알고 있던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무지 탓일 수도 있지만, 적어도 내게 있어서는 그전까지는 전혀 모르고 있던 ‘가만한’ 사람들이 맞았다.

서른다섯 명의 활동 영역이 크게 몇 가지로 추려져서인지 후반부로 갈수록 반복되는 느낌이 없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또렷한 집중력을 유지하는 게 쉽지 않았지만, 마지막 장을 넘기며 애잔한 마음이 차올랐다.

사랑, 발전이라곤 없는

경험하면 경험할수록 익숙해지는 게 진리이다. 익숙해진다는 것은 대저 편안해지거나 실력이 좋아지거나로 연결되는 경우가 많다. 생각해보면 내 경우에도 대부분이 그렇다.

사랑, 그 하나만 제외하고 말이다.

서른을 훌쩍 넘기고, 인생의 삼분 지일 정도는 살았다고 생각하지만 아직도 나는 사랑이 너무나 어렵다. 주변에는 결혼하고 애를 키우고 있는 친구들 아니 동생들이 그득해지고 있지만, 나는 여전히 사랑이 너무나 어렵다. 게다가 옛날과 비교했을 때, 나아진 점이 없다는 사실이 좌절감을 더 키운다.

내 대부분은 이전보다 나아지고 발전하는듯한 느낌이라도 든다. 그러나 사랑만큼은 그렇지 않다. 제자리걸음을 면치 못하고 있다.

사랑, 그 하나만큼은 여전히 그대로이다. 변치 않는 사랑은 환영하지만, 나아지지 않는 사랑은 단호히 피하고 싶다.

강남역 돼지고기집

​’인연’이라는 개념을 대체로 믿지 않는 편이지만, 때때로 정말 그런 건가 생각하는 때가 있다. 오늘 저녁 또한 그랬다.

몇 년 전 쓰다만 노트에 일기를 쓰려던 어젯밤, 예전 일기를 몇 장 읽어보았다. 한창 운동 열심히 하던 시절 피트니스 트레이나 샘의 이야기가 적혀있었다. PT가 따로 없던 회사 피트니스에서 거의 PT 선생님처럼 챙겨주던 소중한 분이었다. 틈날 때마다 해주던 운동에 관한 조언은 곱씹어 보면 인생에 적용할만한 조언이었다.

강남역 근처에서 돼지고기를 구워 먹고 있었다. 맞은편에 새로운 무리가 앉았는데 어째 낯이 익었다. 그 트레이나 샘이었다. 반가운 마음에 큰 소리로 이름을 불렀다. 2년 만이었다. 짧게 서로 근황을 공유하고, 조만간 다시 만나기로 했다.

‘인연’을 다시 생각해보는 밤이다.

레이디 가가의 쇼에 머리를 조아리다

규칙도 어려워하고 팀 이름도 거의 모르는 미식축구이지만 딱 하나 제대로 아는 게 있다. 슈퍼볼 하프타임 쇼가 유명하다는 사실 말이다. 어제가 바로 그 슈퍼볼 날이었고, 하프타임 쇼는 레이디 가가가 준비하고 있다고 들었다. 공연이 시작되기 전까지 알려진 건 드론까지 준비된 공연이라는 소식 정도였다.

한국 시간으로 아침에 공개된 공연을 퇴근하고 나서 저녁에야 볼 수 있었다. 페이스북 타임라인에 놀랍다는 언급이 오고 가던걸 스치듯 본터라 기대가 되었다. 정말 정말 입이 떡 벌어지는 무대였다. (사전에 촬영되었다고 하지만) 수백 대의 드론이 하늘 위에서 움직이며 그녀를 지원 사격하고, 줄을 타고 땅에 내려온 그녀는 쉴 틈 없이 움직여댔다.

그러면서 히트곡들이 스쳐 지나갔다. 신박한 무대 연출과 함께 ‘Just dance’와 ‘Poker face’를 들으며 기억을 더듬어보니 무려 8년 전 노래였다. 유럽여행 중 들른 암스테르담 운하에서 볼륨을 한껏 높여 이 노래를 틀어놓고 소리 지르던 젊은이들이 떠올랐다. 그렇게 대략 5가지 정도 테마의 짜임새 있는 무대가 쉴 틈 없이 전개되더니 공연이 끝났다. 마무리 또한 “난 이제 할거 다 했다”라는 느낌을 주며 끝났다.

몇 년 전 레이디 가가에 대한 내 인식은 일부러 특이하게 보이려 노력하는 가수 정도였다. 고기로 옷을 만들어 입고, 기이한 행색이 그런 인식을 부추겼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어제 무대에서 그녀는 지극히 정상적으로 제정신이 아닌 모습을 보여주는 예술가로 느껴졌다. 솔직히 같은 시대를 살고 있다는 게 다행이라는 생각까지 들 정도였다.

내년 슈퍼볼 하프타임 쇼를 누가 준비할지는 모르겠지만, 꽤나 스트레스 많이 받으리라 짐작된다.

내 안에 순실이 있다

친구 결혼식에 갔다가 친구의 동생을 아주 오랜만에 만났다. 그의 근황이 내심 궁금했었다. 나는 주변 부대에 먹을 것, 입을 것 등의 물품을 보급해주는 부대에서 군생활을 했다. 친구 동생이 같은 사단 신병교육부대에 훈련병 조교로 오게 되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조교 물품 보급을 담당하던 후임에게 그를 특별히 챙겨주라고 일러두었고, 따로 만나서 간식을 사주기도 했다. 그게 벌써 10년도 더 된 이야기였다. 오랜만에 만난 그와 악수하고, 흐뭇하게 그때 기억을 떠올려보았다. 아름다운 이야기였다.

그때였다. 나는 세금으로 마련된 군대 물품을 사사로이 유용한 거였다는 걸 깨달은 게 말이다. 사실 고백하자면 더 큰 일들이 있었다. 간식이나 과일을 다른 부대에 나눠줄 때, 조금씩 빼돌려 후임들과 나눠먹은 적도 꽤 많았다. 양말 빨래가 귀찮아 창고에서 새 양말을 꺼내오거나 간부용 전투화를 하나씩 챙겨 휴가 갈 때 신곤 했다. 그래서인지 우리 부대 사람들은 물질적인 것만큼은 굉장히 풍요로웠다. 가끔씩 다른 부대 사람을 만나면, 어떻게 저렇게 지내나 싶을 정도로 말이다.

당시에는 아무런 문제의식이나 죄책감이 없었다. 나는 군대에서 착취당하고 있고, 우리 부대는 물품을 담당하는 부서이니까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면서도 간부들이 납품업체에 일종의 상납을 받는 광경을 목격할 때면, 그들을 욕하기 바빴다. 그러나 이제 와서 생각해보니 내 행동들도 큰 틀에서 보면 그들과 다를 바가 없었다. 사사로운 관계를 챙기려 부조리를 지시하고, 편하게 지내려고 세금으로 마련된 물품을 유용했다.

물론 군대라는 특수성을 감안해볼 때, 이 사실에 대해 손가락질하며 크게 욕할 사람은 많지 않으리라 본다. 젊음과 노동력을 착취하는 군대에 대한 나름의 통쾌한 복수였다고 여길 수도 있다. 하지만 내가 그토록 싫어하는 부정부패를 저지른 공무원, 정치인, 기업인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금액과 규모가 차이 나긴 하지만 말이다.

내 안에 순실이 있다. 손가락질하며 욕하던 사람처럼 되지 않으려면 항상 조심해야겠다.

손 닿을 거리에 휴대폰이 없다면

이번 연휴가 시작되면서 한 가지를 결심했다. 휴대폰 만지작거리는 시간을 최소화하겠다고 말이다. 그래서 하루가 시작되면 휴대폰을 침대 위로 던져놨다. 나는 책상 앞에 주로 앉아있고, 침대와는 세발자국 가량 떨어진 거리이다. 그리고 점심과 저녁 먹을 때쯤에만 휴대폰을 잠깐씩 사용했다. 그러자 모든 게 달라졌다.

예전에는 이런 패턴이었다. 책을 읽거나 생각하던 중 퍼뜩 궁금한 내용이나 메모할 내용이 떠오른다. 책상 옆에 놓인 휴대폰을 집어 든다. 잠금화면을 풀고 나서 삼천포로 빠지기 일수였다. 웹사이트 여기저기를 살펴보다가 내려놓고 뭘 하려고 했었던 건지 기억을 더듬는다. 그러나 이번 연휴처럼 휴대폰을 곧바로 집어 들 수 없는 상황이 되자, 메모지를 꺼내 나중에 찾아볼 내용을 적어놓는다. 그리고 하던 일에 집중하며 몇 시간이 지난 후, 딱 필요한 것만 처리하고 휴대폰을 다시 던져놓는다.

단순히 손 닿지 않는 곳에 휴대폰을 갖다 놓는 것만으로도 이번 연휴는 풍성하게 보냈다. 계획했던 일에 집중할 수 있었고, 스스로를 통제하고 관리하며 시간을 보낸다는 느낌을 받았다. LED 알림등이 보이지 않도록 살포시 뒤집어주면 금상첨화이다. 그래서 앞으로는 일할 때, 누구를 만날 때, 그리고 주말에 뭔가를 하고 싶을 때 최대한 휴대폰을 멀리 두려고 한다. 환경을 조금 조작하는 것만으로도 현재에 충실할 수 있다니 놀라운 일이다.

[책] Competing Against Luck (혁신은 운이 아니다)

만약 그동안 읽은 책 중 되풀이해서 읽고 싶은 책 몇 권을 뽑으라고 한다면 그중 하나가 클레이튼 크리스텐슨 교수의 ‘How Will You Measure Your Life‘일 거다. 사려 깊은 시각과 통찰력 넘치는 분석을 전해주는 그에게 고개 숙여 인사하고 싶을 정도이니까 말이다. 그런 그가 새 책 ‘Competing Against Luck: The Story of Innovation and Customer Choice‘을 썼다는 걸 우연히 알자마자 주저 없이 구입했다. 몇 주 정도 시간을 들여 다 읽은 게 작년 11월 말. 원래 계획은 감상을 정리해 기사로 쓰려던 거였다. 그러나 논의 끝에 블로그에 좀 더 적합한 내용이라는 결론을 내리고, 조금만 더 다듬어 올려야겠다고 한지 벌써 2개월이 되어간다. 마침 구정 연휴를 맞이해 드디어 묵혀두었던 글을 마무리해보련다.

 

여기 많은 주목을 받는 스타트업이 있다. 창업자 본인이 경험했던 불편함을 해결해주자는 목표로 회사를 만들어 성공적인 출발을 거두었다. 힘을 받아 더 열심히 일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반응이 시원치 않다. 결국 초기 세간의 기대와는 다르게, 조용히 문을 닫게 된다.

주변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사례이다. 많은 기업들이 혁신을 목표로 조직을 만들고, 예산을 쏟아붓고, 치열한 노력을 기울인다. 그러나 정작 성공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극히 드물다. 그래서인지 혁신은 예측 가능한 결과가 아니라 전적으로 운이 지배하는 개념이라 여기게 된다.

하지만 클레이튼 크리스텐슨 교수는 혁신이 충분히 예측 가능한 결과라고 이야기한다. 그는 ‘해결과제(jobs to be done)’ 개념에 주목한다. 고객은 어떤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거기에 맞는 제품이나 서비스를 고용한다. 해결과제에 성공한 기업은 ‘구글링 하다’, ‘우버를 타다’, ‘네이버에 물어보다’처럼 동사로 불리기도 한다. 반면에 해결과제에 실패한 기업은 해고당한다. 고용과 해고의 개념을 회사와 직원의 관계에서만 생각해왔는데, 이를 고객과 회사에 관점으로 확장해보니 직관적으로 이해되었다.

그렇다면 해결과제란 무엇인가? 이해를 돕기 위해 밀크셰이크 사례를 한번 살펴보자. 어떤 패스트푸드 업체에서 밀크셰이크 매출을 높이고 싶어 했다. 통상적으로 고객의 성별, 연령 등을 분석하고, 경쟁제품은 어떠한지 분석해 방안을 내놓을 것이다. 그와는 달리 구매 이유를 면밀히 분석해보니, 절반 이상은 운전하며 출근하는 사람들이 1~2시간 운전 중 적당히 배부르면서 간편하게 먹을 수 있기에 밀크셰이크를 구매한다는 게 밝혀졌다. 또 저녁 시간대 매출이 높기에 이유를 분석해보았다. 저녁을 먹으러 온 고객의 자녀가 밀크셰이크를 먹고 싶다고 하면, 좋은 부모가 돼보자는 마음에서 구입한다는 걸 발견했다.

밀크셰이크는 완전히 다른 맥락(출근길 운전 중, 퇴근 후 자녀와 함께 저녁식사)에서 각각의 과제(간편하게 공복감 해결, 좋은 부모 되기)를 해결해주고 있었다. 이 분석에 의거한 매출 증대 방안은 식감을 높일 수 있는 시리얼 같은 첨가물 옵션을 제공한다든가, 혹은 아이들이 한 번에 마실 수 있는 양을 판매한다든가 등으로 이어질 수 있다. 그리고 이는 해결과제를 파악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구직활동에서 기업이 원하는 자격 요건을 파악하는 게 중요한 것처럼, 고객의 해결과제를 종합적으로 파악하는 게 중요하다. 그는 해결과제를 정의하기 위해서는 고객이 경험하는 모든 요소를 면밀히 살펴봐야 한다고 강조한다. 특히 자기 자신이 느낀 불편함은 무엇이고, 그렇게 행동한 이유는 무엇인지를 따져보는 것만큼 좋은 시작점은 없다고 이야기한다. 또한 관련해서 아무것도 구매하지 않는 사람을 분석해보는 것도 좋다. 아무것도 구매하지 않는다는 건 그 무엇도 고용하지 않는다는 의미이기에, 인사이트를 얻기에도 좋을뿐더러 나아가 훌륭한 잠재고객이다.

그렇게 파악한 채용조건에 맞는 종합적인 경험을 만들고 전달하는 게 필요하다. 그러나 대부분 회사는 고객이 1cm짜리 ‘구멍’을 원하는데 반해, 1cm짜리 ‘드릴’, 즉 제품이나 서비스로 접근하는 실수를 범한다. 또 해결과제를 중심으로 회사의 프로세스가 구성되어야, 지속적인 혁신이 가능하다. 하지만 대부분 회사들은 이와는 반대로 사업팀, 제품개발팀, 기획팀 등 기능적으로 나눠져 있다. 회사에서 목표로 하는 해결과제를 명확히 정의하고, 조직 구성원이 이를 인식하고 여기에 맞도록 판단하고 행동하도록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구체적인 미션이나 목표가 필요하고, 조직 구성원들이 거기에 입각해 자율적으로 의사 결정할 수 있도록 권한을 이양해야 한다.

필자가 학부에서 경영학을 전공하면서, 늘 미심쩍게 생각하던 부분이 있다. 경영학에서 활용하는 사례연구를 보면 이 사례에서는 이렇고, 저 사례에서는 저렇고,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인 게 너무 많다는 느낌이었다. 그러다 보니 이론이 과연 어떤 효용성을 가지는지에 대해 의문을 가졌었다. 하지만 크리스텐슨 교수는 확률을 높여줄 수 있는 건 좋은 이론밖에 없다고 이야기한다. 고객의 문제를 잘 해결해주면 혁신에 성공한다는 인과관계보다 더 명쾌한 건 없다는 그에게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게다가 회사와 업무를 뛰어넘어 아주 다양한 상황에 적용할 수 있다. 배우자가 내게 이런 부탁을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학교를 그만두는 학생이 생기는 이유는 무엇일까, 친구가 나를 보자고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등 적용 가능한 상황이 무궁무진하다.

아직 한국어판은 출간되지 않았지만, 영어판의 문장이나 단어가 어렵지 않다. 일독을 강력히 권한다. 올해, 아니 인생의 책을 만날 수 있을 것이라 자신 있게 말하고 싶다.

커피와 냉면의 공통점

바리스타 자격증 수업 들을 때 선생님이 알려줬다. 에스프레소를 제대로 만들기 위해서는 원두 굵기가 적당 해야 한다는 걸. 설령 같은 원두일지라도 적당한 굵기가 어제와 오늘 다를 수 있다는 걸. 로스팅 이후 원두의 변화나 서로 다른 날씨가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걸 알려줬다. 어제의 분쇄도가 5였다고, 오늘도 5가 맞는지는 모르는 거다. 에스프레소를 제대로 만든다는 건, 예전에 성공했던 방식으로 커피를 내리되 그때그때의 차이점을 제대로 알아차리고 반영하는 일인 거다.

대접에 얼굴을 파묻을 듯이 후루룩 평양냉면을 흡입하다가 문득 깨달았다. 음식점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맛있는 음식의 비법을 찾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맛있는 음식을 어제도 만들고, 오늘도 그리고 내일도 만들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도 중요하다는 걸. 같은 납품업체에서 같은 재료를 받아다가 육수를 삶더라도 어제의 육수와 오늘의 육수는 다를 수 있다. 냉면을 제대로 만든다는 건, 예전에 성공했던 방식으로 냉면을 만들되 그때그때의 차이점을 제대로 알아차리고 반영하는 일인 거다.

나는 어떻게 살고 있는 걸까 돌아봤다. 어제의 알량한 성공 방정식을 오늘도 그대로 갖다가 낑낑대며 우겨넣고 있는 건 아닐까. 그때는 그때고, 지금은 지금인데 그걸 알 생각조차 못했던 건 아닐까. 그래 놓고는 왜 안되는 걸까 속상 해하는 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