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격 계단 이용기

지난주부터 출근길이 새로워졌다. 사무실이 있는 18층까지 걸어 올라가기로 결심하면서 모든 게 달라졌다. 우리 회사의 가장 큰 문제점은 엘리베이터이다.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 진지한 이야기이다. 멍청하기 그지없는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줄이 건물 밖으로 주욱 이어질 정도니까 말이다. 참고로 나는 “헬베”라는 애칭으로 부른다.

어차피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느라 시간을 쏟아야 한다면, 그냥 걸어 올라가는 게 운동도 되고 더 좋을 거라는 생각이 발단이었다. 게다가 체력이 예전 같지 않다는 걸 몸서리치게 느끼고 있었기에 나쁠게 하나도 없어 보였다.

처음 계단을 이용한 날의 계획은 더 창대했다. 머리 속으로 그날 할 일을 정리하면서 올라가겠다는 야심 찬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한층 한층 올라갈수록 오직 한 가지 생각만이 머릿속을 꽉 채웠다. ‘힘들다 그만하고 싶다’. 가까스로 자리에 도착한 후에도 한동안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첫날 기록은 5분 30초였다.

계단으로 출근하기를 하루 더 할 때마다 몰아쉬는 숨의 양이 줄어들고 있다. 이제는 더 이상 창피할 정도로 헉헉되지 않는다. 그러면서 조금씩 기록도 단축하고 있다. 역시 사람이 죽으라는 법은 없다. 뭐라도 꾸준히 하면 안 하는 것보다는 나아지나 보다. 이제는 새로운 걱정이 생겼다. 이러다 18층까지 1분 만에 주파하면 어떡하지라는 걱정이.

기사도(記事道)

(아는 사람도 있고, 모르는 사람도 있겠지만) ‘기사’라는 걸 써서 다른 사람에게 보여준지 벌써 1년이 넘었다. 최신 동향을 놓치지 않을 수 있는 동력을 찾고, 개인 브랜딩도 할 겸 시작한 일이었다. 시기에 따라 조금씩 차이가 있지만, 1주일에 적어도 하나는 쓰려고 노력했다. 관심 분야에 대해 배우면서 얻은 정보를 다른 사람가 나눌 수 있는 기회가 있다는 건 참 좋다.

그 1년 동안 하나 확실하게 결론 내린 건 내가 인기 있는 기사를 예측하는데 잼병이라는 거다. 보통 페이스북 ‘좋아요’, ‘공유하기’ 수로 인기도를 파악한다. 몇 시간 혹은 며칠 동안 열정을 쏟고, 내용에도 자신 있고 큰 반향을 일으킬 거라 기대했던 기사가 소리 소문 없이 파묻힌다. 반면에 1시간 만에 뚝딱 완성해낸 기사가 여기저기 공유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팀원들이 잘 봤다며 알려준 글은 점심 약속 가기 전 급하게 쓴 실적 채우기용이라는 걸 고백한다.

그러다 보니 과연 잘 쓴 기사라는 게 무엇인지 손에 잘 잡히지 않는다. 만약 언론사에서 기자들의 성과를 측정하고 싶다면 어떻게 측정해야 할까? ‘XXX, 숨겨진 비밀, 알고 보니…’ 등 자극적인 제목과 사진을 걸면 조회수는 올라간다. 그렇다고 그게 잘 쓴 건 아닐 거다. 하지만 정성 들여 쓴 기사가 사람들 손에 익지 않을 때, 잘 쓴 거라고 말할 수 있는 걸까? 그것도 잘 모르겠다.

기사도(記事道)가 필요하다. 젝키만 기사도(騎士道)가 필요한 게 아니다. 내게도 기사도가 필요하다.

책과의 이별공식

책장에 틈 없이 빽빽해질 때면 중고로 팔 책을 고르게 된다. 내가 삼은 기준은 세 가지였다. 그 책만의 고유한 이야기가 있는지, 읽겠다고 꺼내더라도 부담이 덜한지, 그리고 다시 읽는 시점에 충분히 활용 가능한 내용인지이다. 어제서야 다 읽은 ‘사피엔스’를 예로 들어보자. 읽으면서 다음 장이 기다려졌을 만큼 흥미로웠고, 내공이 상당하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위 기준에 비춰보니 두 번째 기준을 통과하지 못했다. 어마 무시한 두께가 위압감을 자아냈기 때문이다.

‘인생학교: 일’의 경우는 나를 당황시켰다. 읽은 게 분명한데, 어떤 내용이 담겼었는지 전혀 기억나지 않았다. 몇 장 넘기다 보면 기억이 되살아날까 싶었지만, 그렇지 않았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첫 번째 기준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어디선가 본듯한 뻔하디 뻔한 내용이 책에 꾹꾹 눌러 담아져 있었다. 이후에 읽은 비슷한 내용을 담은 수많은 기사와 블로그 글들에 기억이 덮인 것일 수도 있지만 말이다.

그렇게 팔기로 결정한 책들을 상자에 들고 택배를 부치러 가는 중에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기억하지도 못할 내용이라면 그 책을 고른 게 잘못이었을까, 아니면 제대로 읽지 못한 내 잘못일까. 한편으로는 아쉬웠다. 방이 넓고, 책장이 넉넉했다면 이렇게 책과 이별하는 일이 없을 것을! 더 좋은 사람을 만나 행복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택배를 부쳤다.

다리 위

어머니는 책을 참 좋아하신다. 정확하게는 심리학 관련 책이나 자기계발 책을 좋아하신다. 그렇게 책을 많이 읽으면서 왜 바뀌는 건 없는 것 같냐며 어머니를 놀리곤 했다. 며칠 전에도 내 책상에 있던 ‘트리거’ 책을 가져가시고는 아직 돌려주지 않고 계신다.

아침을 먹으려 식탁에 앉았다. ‘초조하지 않게 사는 법’이라는 책이 식탁에 놓여있었다. ‘요즘 초조하시냐’라고 장난스레 여쭤봤더니, ‘금강경’ 내용을 담은 참 좋은 책이라며 대목 중 하나를 이야기해주셨다. 어떤 목적지로 가는 길 중간에 있는 다리에 해당하는 게 여러 개 있다. 예시로 생각해볼 수 있는 다리는 ‘돈’이다. 그러나 많은 경우에 우리는 목적지로 가던 길을 멈추고, 다리 위에 머물러 있으려 한다고 한다.

식탁에 앉아서 계속 곱씹어봤다. 나 역시도 원래 향하던 목적지를 잃고 다리 위에서만 왔다 갔다 하는 건 아닐까라는 고민해보았다. 결론은 아직 잘 모르겠다는 거였다. 사실 어디로 가고 싶은 건지도 그렇게 명료하지 않다. 나는 어디로 가고 싶은 걸까.

몸을 쓰든가, 만들어내든가 (You write, you make, you make)

며칠 전 구글은 딥러닝 기술을 적용해 번역 정확도를 높였다고 발표했다. 긴 문장을 입력하더라도 기대를 뛰어넘는 정확도를 보여준다는 게 주변 사람들의 평이다. 더욱 무서운 건 스스로 학습해나가며 점점 더 정확히 번역해낸다는 거다. 번역 기술이 발달할수록 외국어 능력이라는 건 승마나 라틴어처럼 고급스러운 취미로 변모할 것이라는 어떤 글이 떠올랐다.

흔히들 인공지능이 발달하더라도 인간의 창조적 활동 영역을 빼앗을 수는 없을 거라 말한다. 그러나 아래 그림을 살펴보면 그 또한 아리송하다. 마이크로소프트에서 인공지능에게 렘브란트 화풍을 학습시켜 만들어낸 그림이다. 전문 교육을 받은 이가 그렸다 해도 믿을만하고, 심지어 렘브란트의 작품이라고 해도 고개를 끄덕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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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도 비슷하다. 스스로 소리를 분석하는 알고리즘이 2000번째 시도 끝에 만들어낸 음악도 그럴싸하다. 만약 GD나 다프트 펑크의 음악을 계속 분석하게 하면 그들보다 더 뛰어난 음악이 탄생할 수 있다. 그것도 별다른 노력 없이 버튼만 띡하고 누르면 말이다.

좀 더 생각해보니 적극적으로 몸으로 때우는 예술이라면 당분간은 인간이 더 유리할 가능성이 크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곰팡이를 물감 삼아 그린 그림, 버려진 보트를 구입해 설치하는 예술 등 하나의 재료가 아니라 여러 개의 요소를 조합해내는 창조라면 더욱 그럴 것이다. 몸을 자유자재로 움직이며 곰팡이를 배양하고, 버려진 보트를 구하러 고물상을 찾아가 협상하고 가격을 지불하는 과정은 인공지능에게 꽤나 큰 어려움일 테니까 말이다.

그리고 이런 인공지능을 만들어낼 줄 아는 사람은 두려울 게 없고, 오히려 더 풍요로운 삶을 누릴 수 있을 것이다. 2009년 대학교 마지막 학기 들었던 특강에서 하버 디 디자인대학원장은 자동으로 건물을 설계해주는 프로그램을 보여줬다. 충격적인 시연 장면을 접하고 나서 내가 물었다, 그러면 이제 디자이너라는 사람은 무엇을 해야 하냐고. 그러자 그는 이런 프로그램을 디자인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답했다.

이 글의 제목은 구글 번역기의 도움을 받았다. 언뜻 봐도 번역이 이상하다. 그렇다 아직은 얕봐도 된다. 그러나 몸을 쓰든가, 만들어내지 않는 사람이라면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

 

[창극]트로이의 여인들

일요일마다 ‘중앙선데이’라는 주간지를 읽고 있다. 고백컨데 나는 아는 척하기 좋아하고, 으스대기 좋아하고, ‘있어빌리티’를 추구하는 사람이다. 그런 나에게 중앙선데이는 더할 나위 없이 소중하다. 누구를 만나더라도, 어디를 가더라도 슬쩍 이야기하기 좋은 이야기들이 가득해서 한 장 한 장 그냥 넘어갈 지면이 없다.

그런 중앙선데이에서 국립창극단의 ‘트로이의 여인들’의 관람권을 나눠준다는 기사를 접하고는 주저하지 않았다. 중앙선데이를 만난 이후로 인생이 얼마나 풍요로워졌는지를 구구절절 적어 내려 가며 꼭 관람권을 받았으면 좋겠다는 메일을 보냈다. 편집장님 이하 직원들의 노고에 깊은 감 사또 한 잊지 않고 적어서일까, 축하한다는 메일과 함께 관람권을 받게 되었다.

공연에 대해 알고 있는 사실을 딱 두 가지였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연출가 옹켕센의 손길이 닿았다는 것과 국악계의 아이돌인 김준수가 출연한다는 것.(동방신기 김준수가 아니다) 물론 옹켕센과 김준수에 대해서도 중앙선데이를 읽고 알게 되었다. 창극을 듣거나 보는 건 처음이었고, 김준수는 ‘이별가’로만 접했었다.

드디어 공연이 시작되었다. 숨 돌릴 틈 없이 이어지는 업무를 처리하고 나서 인지 몇십 번 하품했는지 셀 수도 없었다. 게다가 ‘아가멤논’, ‘헥토르’ 등 그리스 신화의 인물을 창으로 부르는 모습에 익숙해지는 게 쉽지 않았다.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몰입하게 되었다. 주요 인물의 성격이나 운명을 드러내는 악기가 다르고, 최고 미녀 ‘헬레네’로 여장한 김준수가 피아노 선율에 맞춰 가요를 부르는 듯 심경을 토로하다가도, 창을 하는 모습에 넋을 잃었다. 주인공인 왕비 ‘헤큐바’로 분한 김금미 씨가 작품 전체를 멱살 잡고 끌고 다니다 세트 맨 위에 올라 종반부를 진두지휘할 때는 머리가 주뼛주뼛 섰다.

흡사 종교의식을 보는 듯한 노래와 강렬한 연주, 멋진 연출이 잘 어우러진 작품이었다. 워낙 실험적인 작품이다 보니, 낯선 느낌을 떨쳐버릴 수 없었다는 게 아쉬움으로 남는다. 창극에 대한 아무런 사전 지식과 선입견이 없는 사람일수록 더 받아들이기 쉽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공연이 끝나고 보니 금발의 벽안 외국인들이 여러 명 와있던데, 어쩌면 그들이 나보다 더 만족해하지 않았을까.

비로소 창극, 옹켕센, 김준수에 대해 좀 더 떳떳이 이야기할 수 있게 되었다. 또 하나의 있어빌리티를 얻었다.

필리핀 영어샘과 감자탕 먹은 후기

필리핀 전화영어 선생님이 서울에 놀러 왔다. 작년에는 홍대에서 막걸리와 파전을 먹었고, 이번에는 을지로에서 감자탕과 순대를 사줬다. 몇 가지 인상적인 기억을 적어본다.

  1. 하얀 피부를 정말 정말 부러워한다. 내가 한국 사람 중에서도 하얀 편이긴 하지만, 내 피부색이 정말 부럽다는 이야기를 몇 번 했다. 베트남이나 캄보디아에서도 비슷한 이야기를 들었고, 미백 화장품이 동남아에서 엄청난 인기를 끈다는 사실을 봤을 때 하얀색 피부에 대한 동경이 강한 듯 싶다.
  2. 식사량이 적다. 감자탕과 순대를 맛보게 해 주겠다며 1인당 감자탕 한 뚝배기, 그리고 나눠먹을 순대 한 접시를 시켰는데 양을 보고 깜짝 놀라 했다. 한 사람이 한 개씩 먹는 거냐며, 필리핀에서는 2~3명이 나눠먹을 양이라고 했다. 옆 테이블에 할머니 두 분이 한 뚝배기씩 뚝딱 드시는 걸 보고도 경악.
  3. 식민지 시절에 대한 인식이 다르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대체로 일제 식민지 시절을 수치스러운 역사로 생각하고, 이 때문에 일본에 반감을 가진 사람도 적지 않다. 하지만 이들은 미국의 식민지였었다는 걸 오히려 행운이라 여기고, 영어를 구사할 수 있는 것에 감사하는 눈치였다. 나아가 계속 미국의 지배 아래 있었으면 미국 시민권을 얻을 수 있었을 거라며 아쉬워했다.
  4. 낙엽 떨어지는 장면에 환호한다. 연신 휴대폰으로 영상을 촬영하고, 큰 낙엽을 기념으로 들고 가겠다고 했다. 그 나라에는 가을이 없으니 그러는 게 이해가 간다.
  5. 가톨릭이 보편적인 사회이지만, 여호와의 증인 신자도 많고, 동성애자 커밍아웃도 한국보다 자유로운 듯했다. 다만 병역 의무에 대해 여호와의 증인 신자들이 고통받는 것도 비슷했다.
  6. 내 나이를 물어보길래 맞춰보라고 했다. 27살 아니냐고 하더라. 후훗.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자기들이 살고 있는 다바오로 놀러 오라고 했다. 계획을 짜 봐야겠다.

11월 5일

정치란 참 특별한 소재이다. 다른 사람에게 시시콜콜한 이야기 다 하는 사람조차도 정치적인 이야기를 할 때는 조금은 주변을 살피곤 한다. 부모님과 이야기 중 감정싸움으로 번지는 주제가 바로 정치이기도 하다. 갈등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보니, 아예 이야기 자체를 꺼내지 않는 게 일종의 미덕이기도 하다. 이렇게 민감한 주제라는 게, 그만큼 정치가 우리 삶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는 반증이기도 하겠다.

최근 몇 주 동안 지금과 많이 다른 미래에는 어떤 모습으로 살고 있을지, 그리고 어떻게 살아야 할지 고민해봤다. 말은 거창하지만 실상은 자율주행 자동차가 등장하면 출퇴근 시간이 긴 게 큰 문제는 안 되겠구나, 혹은 기본소득 시대가 온다면 나는 뭘 하고 싶을까 등의 별거 아닌 고민들이었다. 그러다가 마지막에는 턱 하고 숨이 막혔다. 상상도 못 한 일이 벌어지는 우리나라에서 그런 고민이 의미가 있을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그래서 오늘 광화문 광장에서 시간을 보내고 왔다. 수많은 사람이 모여서 누군가 혹은 무엇인가를 규탄하는 자리에 참석해본 건 처음이었다. 평화롭고 차분한 분위기 속에서 행사가 진행되었다. 온 가족이 다 나온 경우도 많았고, 연인들, 중고등학생들, 심지어 할아버지 할머니들도 적잖이 눈에 띄었다. 세월호 유가족, 대학생, 종교계 등 중간중간 여러 의견을 가진 사람들이 마이크를 잡고 열변을 토했다. 각기 각색의 사연이 그 자리에 모인 모든 사람에게 환영받은 건 아니었지만, 가장 핵심적인 구호만큼은 모두들 열광적으로 외쳤다.

한 연사가 외쳤다. 영화 ‘브이 포 벤데타’에 나오는 가이 포크스가 국회의사당 폭파 거사일로 정한 게 바로 11월 5일 오늘이라고. 어떤 결말이 날지는 모르겠지만, 오늘은 이따금씩 기억나는 날일 것 같다. 그리고 그냥 기억나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자랑스러운 날로 남게 되길 기원한다.

요즘 일상

피곤한 몸을 이끌고 후다닥 준비해 지하철역으로 향한다. 여의도역에서 갈아타는 열차는 그 유명한 9호선 급. 행. 서울시내 지하철 중 출근시간대 혼잡도가 가장 높은 노선 5개 모두가 9호선 급행이다. 이미 빽빽한 전동차를 보며, ‘오늘은 힘들겠구나’ 생각하지만, 뒤에서 밀치는 사람과 힘을 합치다 보면 어느새 안으로 들어와 있다. 그렇게 몸을 구겨 넣은 9호선이 나를 회사까지 데려다준다.

회사에서는 대부분의 시간을 회의로 보내고, 중간중간 짬나는 시간에 밀린 이메일 답장을 쓴다. 구내식당에서 테이크 아웃해온 김밥으로 간단히 점심을 때우고, 다시 회의와 회의. 회의실이 어찌나 건조한지, 얼굴이 찢어질 것 같은 느낌이다. 담당하는 제품에 문제가 발생했다는 연락을 받으면 정신이 아득해지다가도, 이내 마음을 다잡고 상황을 확인한다. 그러기를 반복하면 이미 얼굴에는 혼이 사라져 있다. 그러고 집에 들어와 저녁 먹으면 진이 빠져있다.

문득 생각해보았다. 회사 사람 이외의 소중한 사람들과는 몇십 분도 쓰지 못하는 하루하루. 참으로 길면서 짧은 게 인생이라는 걸 느끼는 요즘. 하루 중 얼마의 시간을 회사, 그리고 일과 떨어진 생각을 하는지.

내가 이러려고 회사 다니냐라는 생각에 자괴감이 들고 괴롭다.

*대통령 특집 글입니다. 힘들지만, 많이 배우고 즐겁게 잘 지내고 있어요*

도와주면서 살아야지,그렇게 살면 안된다

퇴근하고 집으로 향하던 중 지하철 역에서 내렸다. 이제 10분 좀 안되게 걸어가면 집이다. 가벼운 발걸음을 내딛는데, 귀에 꼽은 이어폰에서는 다음 팟캐스트가 재생되기 시작했다. 영어 공부를 핑계로 대부분 영어 팟캐스트인 재생목록 중 2개밖에 없는 한국어 팟캐스트. 얼마 전 화재가 난 원룸에서 사람들을 깨우고 다니다 정작 자신은 숨을 거둔 안치범 씨의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했다. 새롭거나 유용한 정보가 아닌지라 곧바로 넘기려 하다가, 이내 눈이 촉촉해졌다.

다른 사람은 살리고 정작 자신은 숨을 거뒀다는 사연이 슬픈 것도 있었지만 중간에 소개된 일화가 압권이었다. 생전에 안씨와 TV 뉴스를 보던 그의 부모님은 “저런 일이 생기면 다른 사람을 돕기보다는 너 자신부터 챙기라고” 말했다 한다. 부모 된 마음으로 자식이 걱정되어 꺼낸 이야기에 안씨는 이렇게 답했다고 한다. “도와주면서 살아야지, 그렇게 살면 안 된다”. 이 대목에 이르자 눈이 더 촉촉해졌다. 작은 외삼촌 가족과 왕래가 있던 집 아들이라는 것도 더 가슴 아프게 다가왔다.

몇 주 전 퇴근 후 무거운 몸을 이끌고 지하철을 타러 걸어갈 때였다. 옆을 보니 한 남자분이 바닥에 쓰러져있었다. 언뜻 보기에는 술을 많이 마신 듯 보였지만, 어디가 아파서 그러는 것 같기도 했다. 찰나의 순간 동안 고민에 휩싸였다. 저 사람을 도와줄까. 이내 마음을 바꿨다. 저 사람을 도와주다 보면 집에 도착하는 시간이 늦게 될 것 같았다. 그리고는 계속 머리 속으로 되뇌었다. 아픈 게 아니라 술을 마셔서 그러는 걸 거라고. 그러나 집에 오는 길이 편하지 않았다. 만약 아픈 사람이었는데, 내가 그냥 지나쳐서 더 곤경에 빠진 거면 어떡하지 라는 걱정에.

요즘 너무 나만 챙기며 살았던 건 아닐까 다시 살펴본다. 고인의 명복을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