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 없는 질문을 바쁨으로 피하기

답이 없는 질문을 계속 던지고 있다. 답이 없다는건 생각을 정말정말 많이 해야하지만 답답하다는 뜻이다. 생각에 도움이 되는 정보나 조언을 찾겠다며 폰을 만지작거리지만, 정작 보고 있는건 예능 재방송이다.
이러고 있는 내가 가엾어진다. 그동안 미뤄왔던 공부를 해볼까 생각이 든다. 뭐라도 하게되면 성취감이 올라가고 찌질함이 내려가지 않을까.
시작 버튼을 누르려는 순간 친한 형이 해줬던 이야기가 떠오른다. 목적 없는 성실은 시간 낭비다였던가.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이런 뜻이었다. 지난 몇달을 목적 없는 성실로 채웠던 나이기에 뜨끔하다.
결국 시작 버튼을 누르지 못했다. 그리고 다시 의자에 털썩 앉는다. 고민부터 해결하자며.

[책] 구글의 아침은 자유가 시작된다

요즘 업무와 관련해서 조직의 프로세스에 대해 관심이 많아졌다. 프로세스라고 하면 사뭇 딱딱하게 들리지만, 어떻게 하면 조직 구성원이 잘 협업하고 효과적으로 일할 수 있을까라는 것이다. 한마디로 무엇인가를 하는 공통의 규칙이다. 조직의 문화와 가치관에 기반해 규칙이 정해지고, 문화와 가치관이 변할 때마다 규칙은 변하게 된다. 전에 다니던 회사는 프로세스를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고, 정립하는걸 좋아하는 걸로 유명했다. 그런 만큼 안에 있는 나로서는 답답하고 움츠러들 때가 많았다. 자그마한 걸 하나 하려고 할 때도 프로세스를 지켜야 했기에, 다른 부서를 설득하고 예산을 승인받아야 했다.

작은 회사로 옮기면서 품었던 몇 가지 기대 중에는 답답한 프로세스 없이 자유롭게 일할 수 있겠다는 것도 있었다. 하지만 이게 웬걸. 프로세스가 없다 보니 생기는 문제점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프로세스가 없다는 건, 사람들 사이의 공통적인 규칙이 없다는 뜻이다. 규칙이 없기 때문에 같은 목표를 가진 사람들 사이에서도 혼란이 생겼고, 혼란이 생기다 보니 일이 진척이 안된다. 게다가 점점 사람이 늘어나면서 이 혼란은 더 가중되고 있다. 그리고 이 문제의 저변에는 문화와 가치관이 명확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결론에 점점 다다르고 있다.

구글의 최고 인사 담당자가 이야기하는 그들의 인사제도와 바탕에 깔린 철학을 접하면서 이 회사는 정말로 다르다는 느낌을 받았다. 일단 굉장히 분석적이면서 과학적으로 접근하고, 적은 인원을 대상으로 프로토타이핑을 해본다. 구글은 모든 것을 수치로 측정한다고 알고 있었는데, 인사관리마저도 그렇게 하고 있었다. 그리고는 자신 있게 이야기한다. 이렇게 공개된 자신들의 노하우를 다른 회사들이 베끼는 것이 아무렇지 않다고. 갖고 싶으면 가져가라는 자신만만한 태도는 아마도 껍데기만 벗겨서는 절대 성공 못할 것이라는 자신감에서 비롯된다.

우리나라에서 인사관리로 가장 유명한 회사의 신입사원 채용 인적성 문제를 출제하기 위해 합숙하던 때, 사실 굉장한 실망감에 빠졌었다. 이 문제를 하나 더 푼다고 그 사람이 더 뛰어나 다는걸 어떻게 알 수 있을까라는 실망감이었다. 나 역시도 동일한 문제를 풀어낸 덕분에 입사했겠지만, 좀 더 근사한 무엇인가가 근간에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 그리고 경력 20년이 넘는 인사 담당자의 인터뷰도 정말 실망스럽기 그지없었다. 면접장 들어오는 걸음걸이만 봐도 안다니! 책에도 나온다. 착각 중에 그런 착각도 없다고 말이다.

한동안 경영이나 기업 관련 책을 의식적으로 멀리하다 읽은 책이라 그런지 재미있는 부분이 많았다. “문화는 아침으로 전략을 먹는다”라는 번역은 무슨 뜻인지 잘 이해 안 되지만.

찌질함을 깨닫다

이제 한 두달 정도 되었을거다. 고민하고 준비할 시간이 필요하다며 자신에게 면죄부를 준지 말이다. 처음에는 그 시간을 참 알뜰하게 썼었다. 치열하게 고민하고 깊이 파고들어 생각했다.
가까운 한달은 그렇지 않다. 그 시간을 핑계 삼아 참 못나진 나를 위해 변명한다. 늦게 일어날 때도, 스스로 보기에도 한심한 행동을 할 때에도, 더이상 참기 힘들었던 부모님이 슬몃 옆구리를 찌를 때에도.
오늘도 그러고 있다가 깨달았다. 내 찌질함을. 찌질한 나를 인정하고 싶지는 않았지만 마주 볼 수 밖에 없었다. 잘났다고 한때 생각했던 적도 있지만, 지금은 저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방안이 참 고요하다. 마음도 고요하다.

마구 질문하기에는 어려운 사람

모르는걸 마구 물어보기에는, 내가 너무 어렵게 느껴진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질문에 답해줄 때 사근사근하게 답해주는 나인데 왜일까.
이야기를 듣고 다른 누군가가 이야기해줬다. 이 사람이 나보다 똑똑해서, 물어보는 중에 드러나는 무지함이 두렵기때문에 그런게 아니겠냐고. 왜냐하면 다른 사람의 무지함을 알아챌만한 사람이기 때문이란다.
듣고 보니 그럴싸하다. 자신이 무엇을 물어보는지도 모르면서 물어보는 사람들 때문에 속에서 터진 짜증을 누른 적이 꽤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걱정된다. 내가 너무 교만한 것이 아닐까 말이다. 변변치않은 주제에 다른 사람을 평가하는건 아닐까 말이다.
좀 더 겸손해져야겠다.

피난처의 구실

쉽게 풀리지 않는 복잡한 문제가 앞에 놓여있다. 그럴 때면 차라리 단순하고 무식하게 도전하면 되는 일이 더 손에 잘 잡힌다. 정작 해결해야할 문제는 잠깐 뒤로 밀어두는 형국이랄까.
지금 내 처지가 딱 그러하다. 풀어야할 문제는  문제만 알고, 답은 못 내고 있다. 의욕이 넘쳤던 시기도 조금씩 지나가고, 새로운 관심사에 나를 일부러 몰입시킨다.
이래도 괜찮은걸까. 잘 모르겠다.

큰 질문 작은 질문

큰 질문에 대한 답이 나와야, 이어지는 작은 질문에 대한 답도 나올 수 있다.
하지만 큰 질문에 대한 답은 내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작은 질문부터 답을 하게 된다. 상대적으로 쉬우니까.
그렇게 작은 질문들에 대해 답을 내고 나면, 다시 큰 질문에 대한 답을 낼 차례이다. 하지만 그 답이 작은 질문을 무의미하게 만드는 경우도 있다.
나는 큰 질문을 챙기고 있는가.

답 못한 질문

당연히 답할 수 있을거라 생각했던 질문을 읽자 숨이 턱 막혔다. 그리고 뭐라 대답을 시작해야할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너는 왜? 하필 왜?

듣고 싶은 말과 듣기 싫은 말

듣고 싶은 말을 해주는 사람에게는 왠지 마음이 간다. 내가 하려던 말이 그 사람 입에서 나오는 순간, 천군만마를 얻은 느낌이다. 암 역시 나는 틀리지 않았고말고
듣기 싫은 말을 해주는 사람에게는 왠지 앙심이 간다. 피하고 싶었던 말이 그 사람 입에서 나오는 순간, 그 사람의 본의가 의심간다. 제대로 알고서 하는 이야기일까
하지만 더 귀를 쫑긋 열어야할 대상은 듣기 싫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