굳은 심지, 주변의 압박, 그리고 얇은 귀

좋은 아이디어가 널리 수용되는 이유는 장점이 분명하기 때문일까? 팟캐스트 “Revisionist History”를 듣다 보니 아닐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말콤 글래드웰은 이 명제에 반론을 제기한다. 주변의 압박 때문에 분명한 장점이 있는 좋은 아이디어가 수용되지 않는 사례를 파고든다.

NBA(미국 프로농구)의 전설적인 선수인 릭 베리(Rick Barry)는 아래에서 위로 던지는 자유투로 유명했다. 이 슛 자세로 94%가 넘는 높은 성공률을 기록했지만, 그 말고 그렇게 던지는 선수는 없었다. 심지어 윌트 체임벌린의 경우 아래에서 위로 던지며 높은 성공률을 기록했지만, 이내 예전 자세로 돌아왔다. “바보 같고” “계집애 같은” 자세라는 이유로 말이다. 남자 선수만 그런 게 아니다. 여자 선수들도 이 자세를 꺼려했다. 그러면서도 자유투 성공률이 높아진다는 장점은 인정했다.

rickbar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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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학자 마크 그라노베터(영어 발음이 멋지다. 그롸노베러~)는 이렇게 설명한다. 흔히 우리는 어떤 행동을 이끄는 건 그 사람의 신념과 믿음이라고 여긴다. 하지만 실제로는 주변에서 얼마나 그 행동을 수용하는지가 굉장히 큰 영향을 미친다고 한다. 신념과 배치되더라도 주변의 행동을 수용하는 경우도 많다. 교통법규를 철저히 지키던 사람도 친구들을 태우고 밤에 운전할 때 150km으로 달릴 수 있다. 학교 다닐 때 약한 친구를 괴롭히는 게 옳다고 믿으면서 괴롭힌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싶다.

결국 내적 요소인 신념과 외적 요소인 주변의 수용도가 결합되어서 행동을 이끌어낸다. 또 하나의 요소는 주변 사람을 얼마나 신경 쓰는지이다. 자신의 신념을 강하게 추구하는 사람은 곧 죽어도 자신의 길을 추구할 가능성이 높다. 이들에게 주변에서 하는 말들은 큰 의미가 없다. 그리고 이들 중에 혁신가나 세상을 바꾸는 사람이 많이 나온다. 하지만 얇지 않은 귀 때문에 사랑을 받기는 쉽지 않다. 다른 사람의 말을 듣는다는 건 결국 사회적인 행위이기 때문이다.

릭 베리의 자서전을 읽어보면 굉장히 이상하다. 친지들이 그를 비판하는 글이 자서전에 실려있다. 한 예로 그의 어머니는 “릭은 돈 많이 벌고 유명하다. 그게 무슨 상관이람? 또 다른 아들 데니스의 삶이 더 훌륭하다”라고 적었다. 나라면 자서전에 그런 내용 못 실을 거다. 하지만 그만큼 릭 베리는 주변 사람들이 뭐라고 하든 신경 쓰지 않았다. 그에게 중요한 건 자유투 성공률을 높이는 거였고, 주변에서 비웃더라도 신경 쓰지 않았다.

문득 신념에 위배되지만 사회적 맥락에 따라서 행동했던 몇몇 순간들이 떠올랐다. 눈 감고 넘어갈 수 있는 순간도 있고, 후회가 되는 순간도 있다. 굳은 심지, 주변의 압박, 그리고 적당히 얇은 귀. 이 세 개를 어떻게 조화시킬지 고민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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