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했던 사람과 자주 들렀던 식당이 있다. 잡은 손에서 느껴지는 온기처럼 따뜻하고, 밝고 포근한 색으로 가득한 공간이었다. 그러다 그 사람과 더이상 함께 할 수 없게 되자 모든 것이 달라진다. 식당을 지날 때면 마음이 쇠잔하고, 어느 순간부터는 쳐다보기 싫어 그쪽으로 향하는 눈길을 돌리려 애를 썼다. 그 곳의 색과 온도도 달라진다. 어느 순간 짙고 어두운 공간에서 차가움이 느껴진다.
사실 식당 그 자체는 예전 그대로이다. 달라진 건 특별했던 사람과의 변화된 관계와 시간. 그로 인해 감정이 바뀌고, 식당에 대한 기억을 해석하는 방식이 달라졌다. 이런 청승맞은 사례 말고도, 그때와 지금이 다른 경우는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재앙과 같았던 첫 만남에 대한 기억이 아름다운 결말에서는 근사한 시작으로 변하기도 하고, 죽을 듯이 힘들었던 시절이 돌아보면 보약이었던 경우도 있다.
이렇게 보면 기억은 얼음처럼 딱딱하게 모양이 정해져 있지 않은 것 같다. 또 기억은 증발하지 않는다. 사라진줄 알았지만 다시 눈에 들어온다. 결국 그때그때 기억을 담은 감정이라는 컵의 온도와 색에 따라 변하는 것 같다. 본래의 색과 온도보다 뜨겁게 혹은 차갑게, 밝게 또는 어둡게 변한다. 그렇다고 그 기억의 본질이 변한 건 없다. 그걸 해석하는 내가 달라졌을뿐. 어쩌면 기억은 기록이라기 보다는 감정의 해석이니까.
하나의 기억 조각은 부분적으로 서로 다른 색과 온도를 가질 수 있다. 기뻤지만 슬프고, 화가 났지만 위로가 되었던 그런 기억도 있는 법. 하루 한해 세월이 지날 수록 이렇게 복합적인 기억들이 점점 많아진다. 선과 악 두가지로 무 자르듯 구분되는 세상이 아니듯, 기억의 색과 온도 역시도 모 아니면 도로 변하지 않는다.
잿빛 기억은 어떻게든 밝고 따듯한 컵에 담으려고 노력해야하는 것일까. 아니라고 생각한다. 필요한건 그 기억을 끌어안을 수 있는 용기와 침착함으로 가능한 오래 꼭 안아주는 거다. 그 기억 조각들을 오래오래 끌어안고 있으면, 밝고 따뜻하게 변한 조각의 부분을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그런 과정을 통해 조금이나마 더 성숙해지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