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에 순실이 있다

친구 결혼식에 갔다가 친구의 동생을 아주 오랜만에 만났다. 그의 근황이 내심 궁금했었다. 나는 주변 부대에 먹을 것, 입을 것 등의 물품을 보급해주는 부대에서 군생활을 했다. 친구 동생이 같은 사단 신병교육부대에 훈련병 조교로 오게 되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조교 물품 보급을 담당하던 후임에게 그를 특별히 챙겨주라고 일러두었고, 따로 만나서 간식을 사주기도 했다. 그게 벌써 10년도 더 된 이야기였다. 오랜만에 만난 그와 악수하고, 흐뭇하게 그때 기억을 떠올려보았다. 아름다운 이야기였다.

그때였다. 나는 세금으로 마련된 군대 물품을 사사로이 유용한 거였다는 걸 깨달은 게 말이다. 사실 고백하자면 더 큰 일들이 있었다. 간식이나 과일을 다른 부대에 나눠줄 때, 조금씩 빼돌려 후임들과 나눠먹은 적도 꽤 많았다. 양말 빨래가 귀찮아 창고에서 새 양말을 꺼내오거나 간부용 전투화를 하나씩 챙겨 휴가 갈 때 신곤 했다. 그래서인지 우리 부대 사람들은 물질적인 것만큼은 굉장히 풍요로웠다. 가끔씩 다른 부대 사람을 만나면, 어떻게 저렇게 지내나 싶을 정도로 말이다.

당시에는 아무런 문제의식이나 죄책감이 없었다. 나는 군대에서 착취당하고 있고, 우리 부대는 물품을 담당하는 부서이니까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면서도 간부들이 납품업체에 일종의 상납을 받는 광경을 목격할 때면, 그들을 욕하기 바빴다. 그러나 이제 와서 생각해보니 내 행동들도 큰 틀에서 보면 그들과 다를 바가 없었다. 사사로운 관계를 챙기려 부조리를 지시하고, 편하게 지내려고 세금으로 마련된 물품을 유용했다.

물론 군대라는 특수성을 감안해볼 때, 이 사실에 대해 손가락질하며 크게 욕할 사람은 많지 않으리라 본다. 젊음과 노동력을 착취하는 군대에 대한 나름의 통쾌한 복수였다고 여길 수도 있다. 하지만 내가 그토록 싫어하는 부정부패를 저지른 공무원, 정치인, 기업인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금액과 규모가 차이 나긴 하지만 말이다.

내 안에 순실이 있다. 손가락질하며 욕하던 사람처럼 되지 않으려면 항상 조심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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