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상 옆 책꽂이에는 수첩 몇 권이 꽂혀있다. 일기를 쓰겠다고, 읽은 책에 대해 기록하겠다고 구입한 것도 있고, 어디선가 받아서 연습장처럼 사용하는 수첩도 있다. 그 중 몇 개를 꺼내 새로운 용도를 모색하던 중, 2년 전 몽골 여행 중 썼던 글을 보게 되었다.
그렇다 그때 나는 몽골에 갔었다. 어떻게 하다가 행선지를 몽골로 정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그 여행이 참 인상적이었던 건 아직도 기억난다. 머리 속에 남아있던 기억과 수첩 속에서 묘사된 기억들을 버무려 아주 뒤늦은 몽골 후기를 적어보려고 한다.
정말 “말도 안 되는” 여행이었다. 아무런 계획 없이(혹은 계획을 세울 수 없이) 울란바토르의 게스트하우스를 찾아가, 항공편 일정에 맞는 투어 프로그램을 고른다. 몇 박 몇 일 고비 사막, 몇 박 몇 일 초원, 몇 박 몇 일 테를지 공원 등의 프로그램에 대해 설명을 듣고, 게스트하우스에 있거나 들른 사람들끼리 팀을 짠다. 내가 고른 프로그램은 한국인 2명, 일본인 2명, 태국인 1명으로 보기 드물게 아시아인끼리 뭉쳤는데, 심지어 나머지 한국인 1명은 고등학교 선배였다.
투어 가이드와 운전기사가 90년도에 나온 현대 봉고를 몰고 숙소 앞에서 기다린다. 울란바토르를 벗어나서 하루에 8시간씩 비포장 도로를 달리다가, 가이드가 만들어준 음식으로 끼니를 때우고 몽골 전통 천막인 게르에서 매일 밤을 보낸다. 네비게이션은 물론 지도조차 없는 상황에서 머리 속 길을 냅다 달리는 운전기사를 보면서 경이로움을 여러 차례 느꼈다.
초원과 지평선이 끝도 없이 펼쳐지는, 주변에 그 누구도 살고 있지 않는 곳이라 화장실도 없다. 그냥 적당한 곳에 가서 적당한 방법으로 볼일을 처리하면 되는 법. 볼일을 보고 있으면, 우주의 모든 기운이 나에게 모이는 느낌이다. 샤워 시설과 물도 없어서 물티슈로 몇 일 동안 물티슈로 얼굴과 머리를 닦다보니 찝찝한 게 흠이다.
은하수가 가로지르는 밤하늘에는 별이 쏟아질 것처럼 많이 떠있다. 별똥별은 5분마다 하나씩 떨어지고, 너무 많은 별들 사이에서 북두칠성을 찾는 것도 쉽지가 않다. 별이 가득한 밤하늘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기 위해 광량을 높이려 휴대폰을 들고 몇차례 주위를 뛰어다니던 형 덕분에 위에 있는 멋진 사진이 탄생했다.
한국 돈으로 5천원 정도를 내면 말을 타고 초원을 달릴 수 있다. 용기를 내어 말의 속도를 올리면 어느 순간 말의 네다리가 공중에 떠있는 순간과 마주하는데, 정말로 하늘을 나는 것 같은 짜릿한 기분이다.
한 가지 조심해야할 점은 몽골 사람은 술을 정말 잘 마신다. 한국 사람 술 잘 마신다면서 보드카를 계속해서 들이마시다가, 다음 날 한 8번은 토한 기억이 있다. 속에 들은 게 없으니 마지막에는 계속 초록물이 나오더라. 그 상태로 누워 봉고차로 8시간 동안 꼼짝 못하고 있었다.
죽도록 고생했지만, 죽을 때까지 기억날 것 같은 그 곳 몽골. 떠있는 별을 손가락으로도 샐 수 있을 것 같은 서울의 밤하늘을 보고 있자니 더욱 그리워진다. 경이롭고 비현실적인 느낌들.
난 8년전에 다녀왔는데 아직까지 그리워-. 우주의 기운이 모이는 화장실, 별, 하늘과 땅밖에 없는 지평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