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략 20년 전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당시 아버지는 외국계 회사로 자리를 옮기셨다. 시티폰 부스가 동네에 막 생기려던 시기에 회사에서 제공한 ‘애니콜’을 들고, ‘빨콩’ 키보드가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는 IBM 씽크패드 노트북을 들고 다니셨다. 일주일에도 몇 번씩 호텔에서 컨퍼런스 발표나 식사를 하고 오시고, 간간히 신문에 칼럼도 연재하던 아버지의 ‘리즈’시절이었다. (적어도 내 기억으로는)
그 당시 아버지는 퇴근하고도 집에서 노트북으로 뭔가를 계속 작업하셨다. 당시 삼성 매직스테이션 ‘펜티엄’ 데스크탑을 사용하면서 컴퓨터를 즐겨하던 나는 아버지가 행복할 것이라 여겼다. 회사에서 공짜로 준 최신식 컴퓨터를 집에서도 만지작 거릴 수 있다는 건 크나큰 행복이지 않을까 생각했다. 한껏 부러운 목소리로 말하는 내게 아버지는 조금은 난처하고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그때는 그 표정의 의미를 정확히 알 수 없었다.
단숨에 써지지 않는 내년도 전략 문서를 붙잡고 있다가, 놓아두고 저녁을 먹으러 식탁에 앉았다. 옆에서 식사하시는 아버지를 보자 문득 20년 전 모습이 떠올랐다. 아버지 방문을 열면 노트북 화면을 앞에 두고 머리를 쥐어 싸매고 계시던 뒷모습이 있었다. 도저히 답이 안 떠오르는데, 당장 몇 시간 뒤까지 마무리해야 하는 문서에 괴로워하던 뒷모습이었으리라. 부전자전이라는 말이 맞나 보다. 그렇게 괴로워하던 아버지를 아들은 20년 후에 따라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