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가 하루도 빠짐없이 통화하던 친구분이 몇 주 전부터 전화를 받지 않았다고 한다. 그럼에도 매일같이 전화했던 할머니는 며칠 전 전화번호가 사라졌다는 메시지를 들으셨단다. 불길한 예감. 정확히 확인할 길은 없지만, 아마도 친구분이 돌아가셨을 거라 할머니는 짐작하고 계신다. 매일 이야기 나누던 친구의 운명을 그렇게 어림짐작으로 가늠하고 계신다.
황망하고 애절할 할머니를 생각하며 가슴이 아파왔다. 그러다 생각해보니. 초등학생 시절, 집 거실에는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내 주변 연락처가 빼곡히 적힌 수첩이 있었다. 내가 지금까지 기억하는 아버지의 친구분, 어머니의 친구분 성함은 그 시절 수첩으로 빚어진 기억이다. 늦게까지 집에 들어오지 않을 때 걱정하지 말라고 적어놓은 내 친구네 집 번호까지 해서 수첩은 비상연락망 그 자체였다.
내일 출근길 갑자기 간다면, 가버린다면 내 친구들과 주변 사람들은 그 소식을 알 수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더 이상 수첩 같은 건 없는 요즘, 소중한 그리고 가까운 사람이 누구인지 그리고 어떤 관계인지 알 수 있을까. 카카오톡 프로필을 바꿔놔야 사람들이 잘 알까, 아니면 페이스북에 그 소식을 올려야 하는 걸까. 그리고 정작 남은 사람들이 그렇게 할 수 있을까. 삶이란 참 단조롭다가도 극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