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습관으로 만들기 위해 의식적으로 노력하는 것들이 몇 가지 있는데, 하나가 바로 집 근처 공원을 30분 정도 걷기이다. 이때 걷기는 이동수단으로서의 걷기라기보다, 나 자신과의 대화수단으로서의 걷기이다. 배에 힘을 똬 주고, 가슴을 쫙 펴고 한 걸음 한 걸음 음미하면서 앞으로 나아간다. 이걸 시작한 계기는 걸으면 스트레스 지수가 내려가는 등 전반적인 컨디션이 좋아진다는 다큐멘터리를 보고 나서 부터다. 그 즈음에 여러 생각들이 똬리를 튼 뱀처럼 머리에 자리 잡고 있었고, 그래서인지 몸이 점점 안 좋아진다는 걸 느끼고 있던 차였다. 뭐라도 해보자라는 심정으로 다큐멘터리를 보자마자 밖으로 나섰고, 그 이후 일주일에 두 번 이상은 꼭 실천하려고 한다.
걷는 중이면 여러 가지 생각들이 머리를 들락날락한다. 그 중 하나가 바로 공원과의 추억이었다. 어느덧 10년 넘게 살고 있는 집으로부터 5분 정도로 가까운 위치지만, 자주 들르지는 않았다. 가장 열심히 들렀던 때는 바로 군대 해결할까였다. 대한민국 남자 대부분이 그러하듯, 어떻게 하면 조금이라도 편한 곳에서 군 생활을 할 수 있을까 알아봤다. 육군이나 해군에 있던 친구들로부터 들은 군대 이야기는 지옥이 있다면 바로 그곳일까 싶은 그런 곳이었다. 카투사는 이미 추첨에서 탈락했고, 꼼짝할 도리가 없구나 절망하던 중 아는 형이 의무소방이라는 걸 알려줬다. 서울 안에 있는 소방서에서 좀 더 편하게 군 생활을 보낼 수 있겠다는 생각에 끌렸다.
의무소방은 필기시험과 체력 시험으로 이뤄졌는데, 내 걱정은 사실 하나였었다. 체력 시험 과목 중 오래달리기를 어떻게 통과할 것인가. 필기시험은 당연히 통과할거라는 믿음이 있었다. 문제는 초중고 다니면서 오래달리기는 늘 꼴찌에서 세는 게 빨랐던 나였다. 그래서 매일 공원을 몇 바퀴씩 뛰기 시작했다. 전속력으로 달리다 걷다를 반복하면 더 효과가 좋다는 이야기를 어디서 들었는지 모르겠지만, 그렇게 열심히 연습했다. 덕분에 체력 시험은 통과했지만, 오히려 필기시험에서 떨어졌다. 이를 악물고 한 번 더 지원한 의무소방 시험에서 불합격 통지를 확인한 그날, 나는 부끄럽게도 친구 앞에서 울었다. 이렇게까지 노력했는데도 안 되는구나. 이제 나를 기다리는 건 지옥 같은 군 생활이구나. 세상이 끝난 것 같은 기분에 사로잡혀 그렇게 울었다.
지옥일까 걱정했던 군 생활이 시작되었다. 훈련소가 끝나고 부대 배치 받던 날에도, 아무런 근거 없이 서울로 배치 받지 않을까 기대했지만 결과는 서울이 아니었다. 사실 그때 기분은 절망적이었다. 그 다음부터는 사실 괜찮았다. 부대 환경도 좋고, 사람들도 나름 괜찮은, 곧 전역하는 선임들이 많은 부대에 배정되었다. 2년을 꾹 참고 견디다보니 어느덧 전역할 때가 되었다. 그리고 이제는 안다. 그렇게 호들갑 떨었던 군 생활에 대한 걱정은, 사실 별거 아닌 것에 대한 걱정이었다는 걸. 물론 다시 하라고 하면 절대 안 하겠지만 말이다.
공원을 걷는 도중 10년 전 헉헉대며 뛰어다니던 모습을 떠오르면 큭큭 웃음이 나온다. 그때는 세상이 끝날 것 같은 걱정에 사로잡혀 열심히 달렸었다. 결국 원하는 대로 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세상은 끝나지 않았다. 이제는 머리가 복잡할 때면, 스스로에게 알려주곤 한다. 지금 고민들이 어떻게 풀지 알 수 없는 것들이지만, 적어도 확실한건 세상을 끝장내는 고민들은 아니라고 말이다. 설사 명쾌한 답을 구하지 못할지라도, 인생은 계속될 거라고 스스로를 다독인다. 그런 생각들과 함께 오늘도 나는 공원으로 향할 준비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