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렴풋이 느끼고는 있었지만, 깊이 생각해보지 않았던 질문이 며칠 전부터 갑자기 나를 지배하기 시작했다. 과연 커리어를 제외하면 내 삶에는 무엇이 남는 걸까? 나는 과연 어떤 사람일까? 쉽게 답하기 어려운 거대한 질문에 정신과 육체 모두 급속도로 가라앉았다. 심지어는 밥맛이 없어진 탓에 점심을 제끼려고 했었다. 다행히도 꾸역꾸역 따라가서 먹은 물회의 새콤달콤함이 기분을 좀 풀어주긴 했지만.
그리하여 지난 며칠간 자신에 대해 몇 가지 질문을 던져보았고, 적어도 몇 가지에 대해서는 확신할 수 있게 되었다. 먼저 나는 커리어에 관해 굉장히 많은 에너지를 쏟고 있었다. 어제보다 더 나은 사람이 되겠다는 미명 아래, 여러 가지를 하고 있는데 그 중심에는 커리어에 대한 걱정이 있었다. 혹여나 멍한 상태로 시간을 보내기라도 하면, 불쑥불쑥 커리어에 대한 고민과 질문이 나를 휘감았다. 인생 전체로 놓고 본다면, 커리어는 두개 내지 세 개 정도의 큰 축에 불과할 텐데, 그것만을 생각하며 지내고 있다는 게 서글프다.
또 생각보다 나를 중심에 놓고 살고 있었다. 일상에서 지키고 싶은 반복적인 부분을 정해두고, 다른 사람이 그 영역을 침범하는 걸 허락하지 않았다. 게다가 가깝고 소중한 사람에게 오히려 더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는 경향이 있다. 그러다보니 소중한 사람을 바깥으로 스스로 밀어내는 것처럼 느껴진 적이 몇 번 있다. 하지만 어이없게도 지키려고 한 걸 항상 지키는 것도 아니다. 경우에 따라서 온갖 예외를 들이대며 스스로를 변호한다. 종합해보면 내 일상을 오롯이 내가 통제하고 싶어 하는 경향이 강한 걸로 보이는데, 이게 맞는 건지는 헷갈리는 경우가 많다.
마지막으로는 주변 시선을 많이 신경 쓰는 경향이 있었다. 가능하면 좋은 모습만 보이려고 하고, 궁상맞음과 찌질함은 안으로 숨기고 싶어 한다. 잘 하는 건 열심히 드러내놓고 하지만, 잘 못 하는 건 가급적이면 안 하려고 한다. 영화를 좋아하면서, 특히나 다양성 영화를 더 높이 평가하고, 챙겨보는 이유 중에는 꽤나 으스대며 다른 사람에게 이야기하고 싶어 한다는 걸 부인할 수 없다. 하소연을 가장한 교묘한 자랑, 또는 “내가 이렇게 정말 너무 힘들단다” 류의 페이스북 포스팅에 거부 반응을 보이면서도, 나 역시 글을 쓰거나 사진을 올렸을 때 얼마나 반응이 일어날까 궁금해 하며 들락날락한다. 기대만큼 반응이 일어나지 않은 때에는 괜스레 상심하기도 한다. 어쩌면 지금 쓰고 있는 이 글도 위안을 받으려는 몸부림일 수도 있다.
“다른 사람의 인생이 아닌, 자신의 인생”을 살자는 이야기는 쉬우면서도 어려운 이야기이다. 어느 날 갑자기 그렇게 중요하게 생각하는 커리어가, 명함이 사라진다면, 내가 이야기할 수 있는 “나만의 삶”이란 어떤 것일까. 스스로를 중심으로 놓고 다른 사람을 막으면서, 한편으로는 주변 사람에게 좋은 모습을 보여주려고 하는 모순적인 기질은 어떻게 끌고 갈 것인가.
평생 고민해도 답을 찾을 수 있을지 의문인 질문에 답을 하고 있자니 달달한 게 땡긴다. 귤이나 한 접시 까먹어야겠다. 손톱 밑이 노래지도록 까먹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