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마을 친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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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섬마을 아이였다. 미국에서 돌아온 5살부터 나는 섬마을에 살았다. 섬마을은 강이나 바다에 있지 않고 서울 한복판에 있었다. 한쪽은 철길, 다른 한쪽은 서부간선도로로 막힌 구로1동은 섬마을이었다. 동네로 들어오는 입구와 출구가 하나씩 밖에 없었고, 동네를 지나가는 버스도 2대밖에 없었다.

섬마을 안에는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가 모두 있었다. 초등학교를 졸업한 열에 아홉은 옆에 있는 중학교로 모였고, 똑같은게 고등학교에서도 반복되었다. 나는 다른 고등학교를 갔는데, 거기에는 초등학교, 중학교 친구가 열명 남짓 있었다. 서로 이름은 몰랐어도 초등학교, 중학교를 다니면서 한번씩은 마주쳤던 적이 있었다.

우리는 똘똘 뭉쳐다녔다. 우리가 공부를 열심히 해야 섬마을의 인기가 올라가고, 집값이 올라갈 것이라는 말도 안되는 이야기를 하며 의지를 다졌다. 새벽마다 스쿨버스를 타고, 학교에서 마주치면 눈웃음을 나누고 각자 하루를 보내고, 돌아오는 스쿨버스에서는 왁자지껄 떠들며 스트레스를 풀었다. 어찌나 떠들었던지 고1때는 눈 붙이려던 고3 선배에게 혼나기도 했다.

고2 때 다른 동네로 이사가면서 더이상 같은 스쿨버스를 타지 않았다. 하지만 각자 대학교로 흩어지고도 우리는 만났다. 일년에 한번은 다같이 놀러가며 우애를 다지기도 했고, 무슨 일이 있어도 송년회나 신년회를 꼭 가졌다. 각자의 사정으로 한동안 볼 수 없었던 친구도 있었지만, 그래도 만남 자체는 계속 이어나갔다.

오늘은 유학 중인 친구가 한국에 잠깐 돌아왔기에 간만에 모였다. 이제는 예전처럼 모두 모이지도 않고, 섬마을에 모이지도 않는다. 대부분 섬마을을 떠나 다른 곳에서 생활하고 있다. 절반 정도는 결혼을 했고, 엄마나 아빠가 된 친구도 있다. 나이로 보나 동네로 보나 섬마을 아이는 아닌거다.

하지만 우리는 오늘도 섬마을 아이로 돌아가 이야기를 나눈다. 중학교 전교 등수를 비교하며 유치찬란함을 뽐내고, 서로의 과거 연애사를 들추고 놀리며 낄낄대며 웃는다. 스쿨버스에서 있었던 일, 다같이 놀러갔던 기억도 이야기에서 빠지지 않는다. 그렇게 몇시간 동안만이라도 그 시절로 돌아갔다.

2차를 마치고 술집을 나오는데 한명이 우리 되게 동안이라고 말하며 웃는다. 어이가 없는걸 알면서도 아무렴 우린 동안이지라며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우리는 안다. 그 시절 섬마을 아이들은 이제 어디에도 없다. 각자의 배를 몰고 바다를 가르며 나아가고 있는 몸뚱아리만 어른인 아이들이 남아있을뿐.

다음 번 만남을 기약하고 집에 오는 길에 많은 생각이 든다. 8살부터 시작된 소중한 인연들. 지금은 시간이 많이 늦었으니, 내일 아침에 마음을 담은 카톡을 보내야겠다.

“반가웠다 얘들아~ 오늘 먹은거 각자 얼마씩 돈 보내면 되냐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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