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는 1993년 갑자기 돌아가셨다. 내가 국민학교 2학년이었을 때이다. 집에 걸려온 전화를 받은 어머니가 가까스로 그 소식을 전해줬을 때, 나는 안방 침대에서 엉엉 울었었다. 9살짜리 꼬마가 사람이 죽는다는 게 무엇인지 잘 이해하고 그랬었던 건 아니고, 충격을 받은 어머니의 표정과 반응을 보며 울었던 것 같다. 그다음은 시신을 운구하던 차 안에서 뭐라 표현할 수 없는 슬픈 표정을 짓고 있던 아버지 옆에서 울었던 장면이 기억난다.
할아버지 기일을 맞아 금요일에 제사를 지냈다. 벌써 26년째 지내고 있는 제사여서 그럴까, 해가 지나면 지날수록 추모는 사라지고, 살아있는 자들의 근황을 확인하고 잡담하는 자리가 되었다. 그러면서 제사에 준비할 것들도 예전보다 훨씬 간소해졌다. 하지만 제사라는 게 누군가가 음식을 준비해 차리는 부담스러운 자리인 게 본질이 아니고, 다 같이 모여 고인을 추모하고 기억하는 자리여야 한다는 평소 생각에 비추어봤을 때, 할아버지에 대한 이야기가 오가지 않는 게 가장 마음에 들지 않았다
다 같이 모여 앉아 밥을 먹기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 지난주 할머니께 들은 이야기를 꺼냈다. 내가 태어나고 할머니가 용한 곳을 찾아 이름을 지어왔을 때, 할아버지가 외국인이 발음하기 어려운 이름이라고 하셨다 했다는 이야기를 말이다. 내가 태어난 1985년에 예순 언저리였을 할아버지가 그 사실을 알고 계셨다는 게 너무 신기했었다. 이 이야기를 기점으로 작은아버지가 비상한 기억력을 발휘해 예전에 할아버지와 있었던 이야기를 여러 가지 풀어놓았다. 그러면서 내가 전혀 몰랐던 우리 가족들의 옛날이야기와 그 당시 우리나라의 모습들에 대해서도 알 수 있었다.
돌아가신 이후부터 할아버지는 마치 영정 사진이나 묘소에 존재하는 멀찌감치 떨어진 사람처럼 느껴졌었다. 그러나 사실은 지금의 삶에도 함께하고 계셨었다. 외국인이 부자연스러운 입모양으로 발음하는 내 이름, 고등학교 때 러시아어 공부하면서 사용했던 할아버지의 러시아어 사전, 그리고 지난 금요일까지… 늘 함께하고 계심을 기억해야겠다.
저는 할머니/할아버지가 더 어릴 때 돌아가셔서 기억이 많지 않아요. 그래서 할머니/할아버지에 대한 글을 읽을때마다 뭔가 부럽기도 하고 생각이 많아지기도 합니다. 집에서 독립해 나오면서 언제가 부터 할아버지 할머니 제사에도 자연스레 참석하지 않게 됐는데 , 이렇게 글을 읽고 나니 다시금 참석해서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드네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저는 얼마 전 사랑하는 할아버지를 먼 길 배웅해드리고 왔어서 인지, 더욱더 와 닿네요. 장손이라 영정사진을 들고 터벅터벅 걸으면서.. 어디선가 할아버지 만의 방식으로 불러주시는 제 이름이 들리는 거 같기도 했어요.
저는 아직 할아버지가 주신 옥편을 가지고 있고, 할아버지가 한자로 써주신 용돈봉투도 잘 챙겨두고 있어요. 문득.. 할아버지가 더욱 더 생각나는 밤이네요 ㅎㅎ
따뜻한 글 감사드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