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란 참 특별한 소재이다. 다른 사람에게 시시콜콜한 이야기 다 하는 사람조차도 정치적인 이야기를 할 때는 조금은 주변을 살피곤 한다. 부모님과 이야기 중 감정싸움으로 번지는 주제가 바로 정치이기도 하다. 갈등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보니, 아예 이야기 자체를 꺼내지 않는 게 일종의 미덕이기도 하다. 이렇게 민감한 주제라는 게, 그만큼 정치가 우리 삶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는 반증이기도 하겠다.
최근 몇 주 동안 지금과 많이 다른 미래에는 어떤 모습으로 살고 있을지, 그리고 어떻게 살아야 할지 고민해봤다. 말은 거창하지만 실상은 자율주행 자동차가 등장하면 출퇴근 시간이 긴 게 큰 문제는 안 되겠구나, 혹은 기본소득 시대가 온다면 나는 뭘 하고 싶을까 등의 별거 아닌 고민들이었다. 그러다가 마지막에는 턱 하고 숨이 막혔다. 상상도 못 한 일이 벌어지는 우리나라에서 그런 고민이 의미가 있을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그래서 오늘 광화문 광장에서 시간을 보내고 왔다. 수많은 사람이 모여서 누군가 혹은 무엇인가를 규탄하는 자리에 참석해본 건 처음이었다. 평화롭고 차분한 분위기 속에서 행사가 진행되었다. 온 가족이 다 나온 경우도 많았고, 연인들, 중고등학생들, 심지어 할아버지 할머니들도 적잖이 눈에 띄었다. 세월호 유가족, 대학생, 종교계 등 중간중간 여러 의견을 가진 사람들이 마이크를 잡고 열변을 토했다. 각기 각색의 사연이 그 자리에 모인 모든 사람에게 환영받은 건 아니었지만, 가장 핵심적인 구호만큼은 모두들 열광적으로 외쳤다.
한 연사가 외쳤다. 영화 ‘브이 포 벤데타’에 나오는 가이 포크스가 국회의사당 폭파 거사일로 정한 게 바로 11월 5일 오늘이라고. 어떤 결말이 날지는 모르겠지만, 오늘은 이따금씩 기억나는 날일 것 같다. 그리고 그냥 기억나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자랑스러운 날로 남게 되길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