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프레소에게는 뭔가 특별한 느낌이 있었다. 맛은 없었다. 쓰디쓴 맛만 입안에 가득했다. 하지만 그냥 멋있었다. espresso라는 알파벳의 느낌마저 멋졌다. 연속으로 붙어있는 s가 주는 강렬한 느낌이 좋았다. 그러면서도 직선이 드물고, 곡선으로 이뤄진 알파벳 단어들에서는 부드러움이 느껴졌다.
나만 에스프레소를 특별하게 여기는건 아니라고 생각된다. 노래 가사에 들어가있는 커피 용어는 에스프레소가 대부분이다. 물론 십센치는 아메리카노가 좋다고 노래를 부르긴했다. 늘 여유가 넘쳤던 군대 선임은 카페 테라스에서 에스프레소 한잔을 마시며 책을 읽는 남자가 진정 멋진 남자라고 말했다. 그래 본 적도 없으면서 옆에서 고개를 끄덕였다. 예전 회사에서 알고 지내던 이탈리아 사람 스테파노는 에스프레소를 아주 멋드러지게 마셨다. 스타벅스에서 스탠딩 테이블에 반쯤 기대 한입에 톡 털어넣던 그를 보고 내가 말했다. 커피 마시는 모습을 보니 진짜 이탈리아 사람 맞구나.
오늘 나는 바리스타가 되었다. 유럽 바리스타 자격증 시험을 통과했다. 커피를 좋아하고, 매일 마시지만 정작 커피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르는 게 못마땅하던 차에, 먼저 자격증을 딴 친구의 이야기를 듣고 시작했다. 8차례 수업을 듣고 시험을 보면 되는 간단한 과정이었다.
수업을 들으면서 마주친 에스프레소라는 녀석은 내 생각보다 더 특별한 녀석이다. 세상에서 접할 수 있는 여러 가지 커피 음료의 대부분을 만드는데 필요하다. 커피의 정수인셈이다. 그리고 굉장히 섬세하다. 사용하는 커피 원두의 양이 얼마인지, 얼마나 굵게 갈았는지, 수평을 맞췄는지 아닌지에 따라서 에스프레소의 맛이 많이 달라진다.
가장 중요한 사실은 제대로 뽑은 에스프레소는 맛이 특별하다는 거다. 쓰면서도 달콤하다. 풍부하면서도 빠르게 끝으로 다가간다. 양은 얼마 안되지만 온몸에 빠르게 독약처럼 스며든다. 참 모순인 녀석이다. 겉만 번쩍번쩍하고 속은 비어있는 줄 알았는데, 알고보니 속도 깊은 친구랄까. 자격증을 준비하면서 에스프레소의 매력에 흠뻑 빠졌다.
내일 점심을 먹고서 좋은 카페로 가야겠다. 일행에게 이런 에스프레소의 매력에 대해 알려주고 싶다. 날씨는 덥지만 커피는 뜨겁게 먹는게 정석이라고. 쓴 맛 때문에 에스프레소를 피하는거라면, 여기는 맛있으니까 마셔보라고. 그리고 옆에서 열심히 수업 시간에 배운 커피에 대한 이야기를 해줘야겠다. 시원한 아이스 아메리카노로 목을 축이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