굳럭!

한국에 아이폰이 출시된 그다음 해 2월, 연수 마지막 날 무선사업부 배치 통지를 받았다. 1 지망 부서는 아니었기에, 약간은 실망했었다. 세부 부서까지 정해지고, 배정된 자리에 앉아 시키는 일 열심히 하고, 어리버리한 모습 보여주며 2개월 정도 있다가 구미로 제조현장 체험을 가게 되었다. 3주간 머무는 동안 했던 일 중 하나는 막 생산되고 있던 폰에 최신 소프트웨어를 설치하거나, 보호필름을 붙이는 일이었다. 나와 동기들의 손을 거친 제품은 신화의 시작이었다. 갤럭시 S 시리즈.

퇴사한 지 어느덧 2년이 넘었지만, 여전히 나는 갤럭시, 그리고 삼성전자를 좋아하고 응원한다. 퇴사를 결심했던 여러 가지 이유 중 하나는 회사의 성장세가 정점을 찍었고, 앞으로는 내려갈 일만 남았을 거라는 개인적인 전망이었다. 역사상 가장 높은 시가총액의 경쟁자 애플, 무섭게 따라붙는 중국기업, 그리고 무엇보다도 더 이상 큰 변화가 있기 힘든 산업 구조 자체를 살펴보면 더 이상 좋아질 이유는 없어 보였다. 위기는 바로 앞에 있다 생각했다.

하지만 배터리가 폭발해 위기에 처할 것이라고 생각해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굉장히 빡빡한 품질관리 기준을 충족시키기 위해 애를 쓰는 회사였기에 상상도 할 수 없었다. 실물을 만져보면서 감탄사가 절로 나왔던 노트7은 악몽 같은 제품으로 남았다. 그 이후 사용 중인 S7이 폭발하지는 않을까 염려스러운 마음이 불쑥 튀어 오를 때면, 노트7이 엄청난 타격을 준 게 맞는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잠시 후 새벽, 갤럭시 S8 공개행사가 열린다. 이미 제품 영상, 사진, 사양, 관련 행사할 거 없이 전부 유출된지라 깜짝 놀랄만한 요소는 없을 거다. 하지만 S8는 갤럭시 시리즈의 운명을 짊어지고 있다. 판매야 많이 될 거라 믿지만, 노트7과 비슷한 제품 안전 문제가 발생한다면 돌이킬 수 없는 상황으로 치달을 수밖에 없다. 이런 압박감 속에서 몇 개월을 노력했을 이전 동료들에게 큰 박수를 보내고 싶다. 할 수 있는 게 많지 않음에도, 많이 해야 한다는 압박에 시달렸을 거라 짐작된다.

갤럭시 S8을 응원한다. 그리고 삼성전자를 응원하다. 소중한 국민연금을 망가뜨리고, 추악한 면모를 드러낸 경영진은 싫고 참담하기 짝이 없다. 그렇지만 커리어의 시작점, 훌륭하고 좋은 사람들과 인연을 맺어줬던 그곳, 20대 젊은 날의 절반을 보냈던 그곳을 즐겁게 추억한다. 그래서 뜨겁게 행운을 빈다.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