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하고 집으로 향하던 중 지하철 역에서 내렸다. 이제 10분 좀 안되게 걸어가면 집이다. 가벼운 발걸음을 내딛는데, 귀에 꼽은 이어폰에서는 다음 팟캐스트가 재생되기 시작했다. 영어 공부를 핑계로 대부분 영어 팟캐스트인 재생목록 중 2개밖에 없는 한국어 팟캐스트. 얼마 전 화재가 난 원룸에서 사람들을 깨우고 다니다 정작 자신은 숨을 거둔 안치범 씨의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했다. 새롭거나 유용한 정보가 아닌지라 곧바로 넘기려 하다가, 이내 눈이 촉촉해졌다.
다른 사람은 살리고 정작 자신은 숨을 거뒀다는 사연이 슬픈 것도 있었지만 중간에 소개된 일화가 압권이었다. 생전에 안씨와 TV 뉴스를 보던 그의 부모님은 “저런 일이 생기면 다른 사람을 돕기보다는 너 자신부터 챙기라고” 말했다 한다. 부모 된 마음으로 자식이 걱정되어 꺼낸 이야기에 안씨는 이렇게 답했다고 한다. “도와주면서 살아야지, 그렇게 살면 안 된다”. 이 대목에 이르자 눈이 더 촉촉해졌다. 작은 외삼촌 가족과 왕래가 있던 집 아들이라는 것도 더 가슴 아프게 다가왔다.
몇 주 전 퇴근 후 무거운 몸을 이끌고 지하철을 타러 걸어갈 때였다. 옆을 보니 한 남자분이 바닥에 쓰러져있었다. 언뜻 보기에는 술을 많이 마신 듯 보였지만, 어디가 아파서 그러는 것 같기도 했다. 찰나의 순간 동안 고민에 휩싸였다. 저 사람을 도와줄까. 이내 마음을 바꿨다. 저 사람을 도와주다 보면 집에 도착하는 시간이 늦게 될 것 같았다. 그리고는 계속 머리 속으로 되뇌었다. 아픈 게 아니라 술을 마셔서 그러는 걸 거라고. 그러나 집에 오는 길이 편하지 않았다. 만약 아픈 사람이었는데, 내가 그냥 지나쳐서 더 곤경에 빠진 거면 어떡하지 라는 걱정에.
요즘 너무 나만 챙기며 살았던 건 아닐까 다시 살펴본다. 고인의 명복을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