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시 30분쯤이었을까. 부엌에서 물을 뜨고 있는데 아버지가 저녁에 김치찌개나 부대찌개를 먹자고 말을 거신다. 집 앞에 아주 잘 하는 식당이 있는데 포장해와서 먹곤 했었다. 그러다가 이야기는 비가 많이 온다, 비 오는 날은 막걸리인데, 막걸리 대신에 찌개랑 소주 어떠냐 로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아버지가 찌개를 사 오는 길에 편의점에서 소주 1병을 사 오셨다. 태어나서 술을 직접 처음 사봤다며 멋쩍어하는 아버지. 그렇게 해서 저녁에 부대찌개를 먹으며 온 가족이 소주를 한 병 나눠마셨다. 심지어 다 마시지도 않았지만. 더 어릴 때는 초록병 소주를 도대체 왜 마시는지 이해가 안 되었었다. 지금도 그렇게 맛있다고는 생각 안 한다. 그러나 가끔씩 그 특유의 맛이 생각날 때가 있다.
몇 달 만에 술을 마시는 아버지는 기분이 좋아 보였다. 동생은 무슨 안 좋은 일이 있어서 먹는 거냐고 물어본다. 나는 그냥 술을 따라 마셨다. 어머니는 한잔 다 마셨다며 뿌듯해하신다. 그렇게 소주 삼분지 이 병을 우리 가족은 나눠마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