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지 못해서 쓰는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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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쓰고 싶었다. 지하철을 타고 집에 오는 길에 계속 그 생각뿐이었다. 오늘은 꼭 글을 쓰고 마리라. 일주일에 적어도 두 편은 쓰자는 나 자신과의 약속이 약간의 압박을 주기는 했다. 하지만 그보다는 지끈지끈거리며 흠뻑 물기를 빨아들인 스펀지처럼 답답하게 축 쳐진 머리를 산뜻하게 바꾸고 싶었다. 글을 쏟아낸다면 조금은 괜찮아지지 않을까 기대하면서 말이다.

그렇지만 어떤 글을 써야할지 생각이 정리되지 않았다. 하고 싶은 말들이 작은 팔다리를 흔들어대지만, 그 팔다리를 잡아 끌어주는 사람이 없다. 몇 년 전부터 시작된 단어가 혀 끝에서 뻗어나오지 못하고 맴도는 놀라운 느낌이, 요즘은 머리 속에서도 나오지 못하는 느낌으로 진화하고 있다. 이렇게 보면 진화가 항상 좋은 방향으로만 향하는 건 아닌가보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메모장을 열어본다. 평소에 불쑥불쑥 떠오르는 생각이나 느낌들을 모아두는 공간을 살펴보면 괜찮은 글감이 나올 수도 있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몇 개를 살펴보니 의욕이 생기지 않는다. 필경 그때는 괜찮다고 생각해서 끄적였을 텐데, 어떻게 이어나가야할지 잘 모르겠다. 머리가 더 지끈지끈 아파온다.

이쯤에서 인정해야겠다. 오늘은 쓰지 못해서 쓰는 글과 만나는 날이었음을. 막상 읽어보니 그리 나쁘지는 않다. 발악하지 않고 담담하게 정리된 느낌이 좋다. 내 자신과 똑바로 마주서서 오롯이 서로를 바라보고 있다. 쓰지 못해서 쓰는 글에서 “쓴맛”이 아니라 약간은 구수한 맛이 느껴진다면 오해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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