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 전화영어 선생님이 서울에 놀러 왔다. 작년에는 홍대에서 막걸리와 파전을 먹었고, 이번에는 을지로에서 감자탕과 순대를 사줬다. 몇 가지 인상적인 기억을 적어본다.
- 하얀 피부를 정말 정말 부러워한다. 내가 한국 사람 중에서도 하얀 편이긴 하지만, 내 피부색이 정말 부럽다는 이야기를 몇 번 했다. 베트남이나 캄보디아에서도 비슷한 이야기를 들었고, 미백 화장품이 동남아에서 엄청난 인기를 끈다는 사실을 봤을 때 하얀색 피부에 대한 동경이 강한 듯 싶다.
- 식사량이 적다. 감자탕과 순대를 맛보게 해 주겠다며 1인당 감자탕 한 뚝배기, 그리고 나눠먹을 순대 한 접시를 시켰는데 양을 보고 깜짝 놀라 했다. 한 사람이 한 개씩 먹는 거냐며, 필리핀에서는 2~3명이 나눠먹을 양이라고 했다. 옆 테이블에 할머니 두 분이 한 뚝배기씩 뚝딱 드시는 걸 보고도 경악.
- 식민지 시절에 대한 인식이 다르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대체로 일제 식민지 시절을 수치스러운 역사로 생각하고, 이 때문에 일본에 반감을 가진 사람도 적지 않다. 하지만 이들은 미국의 식민지였었다는 걸 오히려 행운이라 여기고, 영어를 구사할 수 있는 것에 감사하는 눈치였다. 나아가 계속 미국의 지배 아래 있었으면 미국 시민권을 얻을 수 있었을 거라며 아쉬워했다.
- 낙엽 떨어지는 장면에 환호한다. 연신 휴대폰으로 영상을 촬영하고, 큰 낙엽을 기념으로 들고 가겠다고 했다. 그 나라에는 가을이 없으니 그러는 게 이해가 간다.
- 가톨릭이 보편적인 사회이지만, 여호와의 증인 신자도 많고, 동성애자 커밍아웃도 한국보다 자유로운 듯했다. 다만 병역 의무에 대해 여호와의 증인 신자들이 고통받는 것도 비슷했다.
- 내 나이를 물어보길래 맞춰보라고 했다. 27살 아니냐고 하더라. 후훗.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자기들이 살고 있는 다바오로 놀러 오라고 했다. 계획을 짜 봐야겠다.